|2026.03.03 (월)

재경일보

공적자금 ‘범람’..관리대책 필요

1997년 말에 불거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사용했던 '낫과 망치'가 10년 만에 모두 부활했다.

1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도를 넘기 위해 정부는 채권시장안정펀드와 은행자본확충펀드, 구조조정기금, 금융안정기금 등을 조성했거나 조성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최근 조성 계획을 발표한 구조조정기금과 금융안정기금은 정부 보증 채권을 발행해 재원을 조달하고 금융회사 건전성 제고가 목적이라는 점에서 외환위기 때의 공적자금과 닮은꼴이다.

 

그러나 과거 공적자금과 달리 정부가 지원 대상인 금융회사의 경영권 간섭을 최소화하겠다는 원칙을 제시한데다 관리.감독 체계도 미흡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신종 공적자금 쏟아진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로 채권시장이 꽁꽁 얼어붙자 정부는 작년 11월 총 10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를 조성해 회사채와 금융채를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금융회사들이 출자하는 형식의 채권펀드는 조성 자금의 절반을 한국은행이 빌려주고 산업은행이 2조 원을 출자하는 신종 공적자금 1호였다. 16일 현재 이 펀드는 2조7천억 원을 들여 회사채(9천억 원), 은행채(5천억 원), 여전채(4천억 원), 프라이머리 CBO(채권담보부증권. 9천억 원) 등을 사들였다.

 

작년 12월에는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해 불안감이 가중되자 정부는 총 20조 원 규모의 은행자본확충펀드를 조성해 은행에 자본을 수혈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펀드는 한국은행 10조 원, 산업은행 2조원, 기관 투자가와 일반 투자자 8조 원 등으로 조성되며 이달 중에 1차로 12조 원이 투입된다.

 

정부는 채권펀드와 은행자본확충펀드만으로는 금융시장의 불안감과 금융회사의 건전성 우려가 해소되지 않자 추가 대책을 내놓았다.

 

총 40조 원 규모의 구조조정기금을 조성해 금융권의 부실채권과 구조조정 기업의 자산을 사들이고 아직 규모와 투입 시기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금융안정기금을 만들어 전 금융권의 자본 확충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자금을 관리.감독할 장치가 없는 데다 정부가 금융회사의 경영권 간섭을 최소화하겠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어 방만하게 운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낳고 있다.

 

특히 금융회사가 부실화되기 전에 자본 확충을 해주기 위해 조성되는 금융안정기금을 산업은행의 위탁관리를 받게 될 정책금융공사에 설치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은 행정 편의주의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예금보험공사가 아닌 산업은행에서 분리되는 정책금융공사를 활용키로 한 것은 공적자금관리특별법에 규정된 최소비용 원칙과 공평한 손실부담의 원칙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정책금융공사법에는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관련 규정도 없다"고 지적했다.

◇ "공적자금 통합관리 해야"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부실 금융기관 처리에 노하우를 갖고 있는 예금보험공사를 금융회사 공적자금 투입에 활용하지 않는 것은 경영권 간섭을 최소화하겠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금융안정기금이 정상적인 금융기관의 자본 확충이 목적인 만큼 강제 투입이 아닌 금융회사의 신청을 받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은 공적자금을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 부실채권정리기금, 공공자금관리기금 등 6개로 명시하고 있으며 은행자본확충펀드와 금융안정기금, 구조조정기금 등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현행법상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금융회사는 경영정상화 계획을 제출하고 자기자본비율과 자산대비 수익률, 부실채권비율 등 정부가 정한 목표를 달성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기 위해 구조조정 계획도 내놓아야 한다. 또 감사원의 감사를 받아야 하고 정부는 국회에 공적자금의 사용과 회수 실적을 분기별로 보고해야 한다.

 

정부는 은행자본확충펀드나 금융안정기금의 지원을 받는 금융회사에는 중소기업 대출 확대 등 실물경제 지원 책임 정도만 부여할 계획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아직 부실화되지 않은 금융회사를 지원하면서 지나치게 경영권에 간섭할 경우 해당 금융회사가 지원을 받지 않으려고 할 것이고 기존 주주들과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런 방침은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양대 하준경 교수는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그만큼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것인데 거기에 상응하는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며 "은행들 입장에서는 경영권 간섭을 싫어하겠지만 그럼에도 은행들이 자금을 지원받고 정부에 협조하도록 하는 정부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실채권정리기금이나 예금보험기금 등 과거 환란 때 조성된 공적자금을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적자금관리위원회에서 운용.관리했듯이 신종 공적자금의 관리 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김상조 교수는 "구조조정기금과 금융안정기금 등 유사 공적자금을 통합 관리하는 근거법과 기구를 만들어서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특히 최소 비용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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