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돈 안돈다’ 통화유통속도 사상 최저

올해 1분기에 통화유통속도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정부와 통화당국이 경제를 살리려고 막대한 돈을 퍼부었는데도 정작 실물 부문에는 돈이 제대로 돌지 않고 있는 것이다.

◇통화유통속도 갈수록 뒷걸음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통화유통속도는 올해 1분기에 0.687까지 추락했다. 이 수치가 0.6대까지 내려온 것은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통화유통속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광의통화(M2)로 나눈 것으로, 시중에 돈이 얼마나 빠르게 유통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분기별 통화유통속도는 2000년대 들어 0.8대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2007년 말 0.807에서 2008년 1분기 0.778로 하락한 뒤 2분기 0.769, 3분기 0.748, 4분기 0.703에 이어 올해 1분기에는 0.6대로 주저앉았다.

또 다른 지표인 통화승수도 떨어지고 있다.

통화량을 본원통화로 나눈 통화승수는 지난해 10월 26.5에서 11월 26.3, 12월 24.2, 올해 1월 22.5로 가파르게 떨어졌다가 2월에는 23.1로 소폭 상승했으나 3월에 다시 22.4로 하락했다.

통화승수는 은행들의 신용창출 과정을 통해 얼마만큼의 통화를 창출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이 수치가 하락했다는 것은 돈이 그만큼 돌지 않는다는 의미다.

통화유통속도가 떨어진 것은 실물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데 반해 통화량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2년 미만 정기예금, 적금 상품 등을 포함하는 광의통화(M2.평잔)는 정부의 유동성 확대 정책에 힘입어 작년 말 1천436조3천억 원에서 올해 3월 1천470조4천억 원으로 34조1천억 원 가량 늘었다.

M2의 전년 동기 대비 월별 증가율은 올해 1월 12.0%, 2월 11.4%, 3월 11.1%로 둔화하고 있다.

반면 단기자금으로만 구성된 협의통화(M1) 증가율은 1월 8.3%에서 2월 9.8%에 이어 3월에는 14.3%로 급증해 2005년 8월(14.4%) 이후 최대 증가율을 나타냈다. 한은이나 정부가 푼 막대한 자금이 실물로 흘러들어 가지 않고 단기자금 시장에만 맴돌고 있다는 뜻이다.

◇"대출 조이고, 투자 안해"

은행들이 대출을 조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은행들은 정부 정책에 따라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고 있지만, 예년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은행권의 기업대출 증가율은 지난 4월 3조2천억 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의 10조9천억 원의 3분의 1 수준을 기록했다.

한은 관계자는 "은행들이 대출을 통해 실물부분에 자금을 공급해야 통화가 창출되는데 이러한 과정이 아직 원활하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투자를 꺼리는 것도 원인이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자산총액 10대 그룹 상장 계열사들의 올해 3월말 기준 유보율은 945.54%로 1년 전보다 60.80%포인트 상승했다.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비율인 유보율은 영업활동 혹은 자본거래를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얼마나 사내에 쌓아두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이 비율이 높으면 통상 재무구조가 탄탄하다는 의미이지만 반대로 투자 등 생산적 부문으로 돈이 흘러가지 않고 고여 있다는 부정적 의미도 된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1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국내 총투자율은 1분기에 26.5%로, 1998년 4분기의 26.0%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은 "통화유통속도의 개선은 금융의 중개기능이 얼마나 정상화에 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며 "기업 구조조정 등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빨리 진행돼 신용경색이 풀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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