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남북회담파행..개성공단 앞날은>(종합)

北, '5억달러'집착..대화 조기재개안되면 다시 위기

북한이 2일 3차 개성공단 실무회담에서 토지임대료를 5억달러로 올려달라는 요구를 사실상의 '선결과제'로 제시, 회담이 파행함에 따라 4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개성공단 관련 남북대화가 기로에 섰다.

북측은 이날 회의에서 토지임대료 관련 요구를 고수하면서 억류 근로자 유모씨 문제를 포함한 다른 현안에 대해서는 일체의 논의를 거부했다. 우리 측도 토지임대료 인상 등 기존 계약을 변경해야하는 문제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 양측은 논의의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에 따라 남북이 조기에 차기 대화 일정을 잡지 못할 경우 이미 한계상황에 처한 기업들의 '철수러시'와 함께 개성공단이 다시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남북 입장차 못좁혀 = 이번 회담을 앞두고 정부는 토지임대료 등 합의하기 어려운 문제들은 뒤로 미루고 개성공단 숙소.탁아소 건설 등 인프라 구축과 통행제한 해제 등 상대적으로 쉬운 의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세웠다.

100일 가까이 억류된 현대아산 유 모씨의 석방은 계속 촉구하되 공단 발전을 위한 실무적 문제들은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유연한 입장을 갖고 회담에 임했던 것이다.

특히 지난달 19일 열린 제2차 개성회담에서 북측이 작년 12월부터 취해온 개성공단 통행 제한을 해제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을 밝힘에 따라 생산적인 논의가 가능하리라는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북측이 이번 회담에서 5억달러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다른 의제는 협의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임에 따라 개성공단의 기상도는 다시 '흐림'으로 바뀐 양상이다.

정부는 북측의 '5억달러' 요구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 북측이 기존 요구를 고수하는 한 의견 절충의 여지가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측은 협상시한을 못박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5억달러'에 대한 우리 측 입장에 변화가 없을 경우 북은 향후 언제든 '데드라인'을 제시하며 정부와 입주기업들을 압박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남북이 대화 종결을 선언한 것은 아닌데다, 양측 다 공단 유지에 대한 의지는 누차 피력한 바 있어 이번 회담을 계기로 공단이 폐쇄 국면으로 들어갈 것으로 단정하긴 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남북 당국간 대화에 진전이 없을 경우 개성공단은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현 상황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동국대 김용현 교수는 "차기 회담은 남북 둘 중에 하나가 제기해야 할텐데 둘다 개성공단의 폐쇄 책임을 뒤집어 쓰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차기 회담날짜가 잡힐 수 있으리라 본다"며 "그러나 회담의 성과는 굉장히 더딜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공단의 정상화에 한가닥 기대를 걸었던 개성공단 업체들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이미 첫 철수업체가 나오고 전면 또는 부분 휴업을 하는 업체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성공단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퇴로'를 열어달라는 기업들의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개성공단기업협회 유창근 부회장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회담에서 출입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고, 숙소 건설 등 현안들이 잘 될 줄 알았기에 유감스럽다"며 "정부에서 우리한테 입장 표명이 있을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좀 기다려보겠지만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북 '5억달러'에 집착하는 배경은 = 회담 관측통들은 북측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1,2차 회담때 '우선 협의사항' 정도로 제기하는 듯 했던 '토지임대료 5억달러'를 '선결과제'로 삼는 입장을 굳혔다고 보고 있다.

이 문제가 심각한 것은 액수의 크고 적음의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북한이 이를 남측 당국의 정책 전환 또는 대규모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카드로 삼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은 지난 달 19일 2차 실무회담 후 언론 보도를 통해 '남측 당국이 6.15 선언(제1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을 부정했기 때문에 6.15 정신에 따라 제공한 개성공단의 혜택을 박탈할 수 밖에 없다' 논리를 분명히 밝혔다.

다시 말해 '6.15를 부정한 당사자인 남측 정부가 6.15를 존중함으로써 개성공단을 살리거나, 5억달러를 부담하라'는 논리로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5억달러를 요구하는 북한의 속내는 6.15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환시키려는 것일수도, 남측으로부터 5억달러 상당의 현금 또는 현물 지원을 받아 내겠다는 것일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한의 의도가 둘 중 어떤 것일지라도 결국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국제사회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대북정책을 전환하기도, 대규모 지원에 나서기도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이 개성공단과 6.15를 연계하며 5억달러 요구를 지속하는 한 개성공단이 경색된 남북관계와는 별개로 독자적 생명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비관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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