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박병채의 법률카페]남편이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었는데, 이혼할 수 있나요?

박병채 변호사(법률사무소 '선')

이혼상담을 하다보면 다양한 사례를 많이 접하게 된다. 그 중에는 우리들 주변에서 볼 수 있는(물론 다소 그 정도가 심하긴 하겠지만) 부부간 다툼 혹은 시댁과의 마찰로 이혼을 하려 하는 경우가 많지만, 희귀하고 독특한 사례들도 가끔 상담을 하게 된다. 필자가 최근에 접한 특이한 사례를 한 가지 소개하겠다.

A씨는 현재 23살이고 13살 연상의 남편과 2년 전에 만나 결혼하여 현재 슬하에 딸을 두고 있다. A씨는 중국교포로서 남편보다 나이가 많이 어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시댁에서 결혼을 반대하였고, 결혼 후에도 냉랭한 대우를 받으며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혼 후 1년쯤 되었을 때 남편이 일하던 직장에서 사고를 당해 의식이 전혀 없는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버렸다. 담당주치의 말에 의하면 의식이 회복될 가능성이 거의 제로라고 한다. 남편이 식물인간이 되자 A씨는 남편이 깨어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열심히 보살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이 회생을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A씨는 남편의 보상문제로 남편이 근무하던 회사 및 보험사와 수차례 접촉하는 과정에서 시댁식구들이 보상금을 탐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로 인해 A씨와 시댁식구간의 갈등은 더욱 증폭되었다. 시댁과의 갈등은 안겪어 본 사람이야 모르겠지만, A씨와 같은 젊은 아가씨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웠고, 게다가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던 남편이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으니 이 모든 것을 A씨 혼자서 감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A씨는 남편에게는 비록 미안한 마음이 크지만 이혼을 결심하게 되고, 소송을 통해 이혼가능한지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하였다.

재판상 이혼에 관한 법정책에는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의 두 가지가 있다. 유책주의란 부부 중 어느 일방에게 법에 정한 귀책사유가 있을 경우 상대방이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귀책사유가 있는 배우자를 유책배우자라고 하며, 유책배우자는 먼저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 즉, 재판상 이혼을 하려면 상대방에게 귀책사유가 있어야 하고 이혼을 청구하는 쪽에는 귀책사유가 없어야 한다. 유책주의에 대응하는 개념이 파탄주의인데, 파탄주의란 귀책사유의 유무를 불문하고 혼인을 사실상 계속하기 어려운 경우에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파탄주의하에서는 유책배우자도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우리나라 현행법은 유책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어, 재판상 이혼을 하려면 상대방에게 귀책사유가 있어야 하고, 유책배우자는 이혼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우리법은 유책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한편,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를 이혼사유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규정의 해석과 관련하여 우리 대법원은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할 혼인의 본질에 상응하는 부부공동생활관계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고 그 혼인생활의 계속을 강제하는 것이 일방배우자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라고 하여 부부관계의 회복가능성과 고통이 참을 수 없는 정도인지 여부 등을 기준으로 파탄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파탄상태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파탄의 원인이 재판상 이혼을 청구한 유책배우자에게 있다면 그러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원칙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그러면 이 사건으로 되돌아가서 A씨가 이혼을 청구할 수 있을까? 식물인간이 된 남편에게는 특별한 귀책사유가 없어서 유책주의 하에서는 이혼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파탄주의적 입장에서는 남편의 현상태가 혼인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것이다. 이와 관련된 유사한 대법원 판례를 소개하면, “부부 중 일방이 불치의 정신병에 이환되었고, 그 질환이 단순히 애정과 정성으로 간호되거나 예후가 예측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가정의 구성원 전체에게 끊임없는 정신적·육체적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며, 경제적 형편에 비추어 많은 재정적 지출을 요하고 그로 인한 다른 가족들의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온 가족이 헤어날 수 없는 고통을 받더라도 타방 배우자는 배우자 간의 애정에 터잡은 의무에 따라 한정 없이 참고 살아가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이러한 경우는 민법 제840조 제6호 소정의 재판상 이혼사유에 해당한다.”

위 사례의 경우, 이 씨는 식물인간상태로 최종 진단 받아 이미 6개월이 흐른 상태로, 대략 1~3개월 이상 식물인간상태가 지속되면 이를 지속식물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라고 하는데 이 씨의 경우는 의식이 회복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식물인간상태에 놓인 환자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욕창을 방지하기 위하여 일정한 시간마다 간병인이 자세를 바꾸어 주어야 한다. 또한 흡인성 폐렴, 요로감염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기 쉽기 때문에 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부인이 그것도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여성이 어린아이를 돌보며 회복가능성이 거의 없는 식물인간의 남편을 간호하며 언제까지일지 알 수 없는 기간동안 참고 살아야한다는 것이 부인에게 너무 가혹한 측면이 있으므로 위 대법원 판례에 따를 때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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