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공연리뷰] 체홉의 ‘갈매기’ 인생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

동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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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사실주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안톤 체홉의 희극 '갈매기'가 극단 여백을 통해 대학로 아름다운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체홉의 '갈매기'는 수없이 공연된 연극이지만 이번에는 출연 인물을 13명에서 7명으로 압축하고 배우들의 등·퇴장이 따로 없이 무대로 새롭게 단장했다. 특히 극 중 '유령의 인물' 마샤는 인물들의 유랑적 삶을 암시하는 집시풍 음악을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며 극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성공한 여배우이자 어머니인 아르카지나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싶고 각별한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아들 코스차. 그는 사랑하는 시골 처녀 니나를 출연시켜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공연하지만 돌아온건 아르카지나의 비난 뿐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가 사랑하는 니나마저 그의 공연을 알아주지 않고, 명성을 갖춘 여배우를 꿈꾸며 아르카지나의 애인이자 유명한 소설가인 트리고린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

코스차가 사랑한 두 여인 어머니와 니나, 두 여인은 모두 코스차를 외면한 채 트리고린을 사랑한다. 코스차는 갈매기를 죽여 니나 앞에 던지며 분노와 질투를 발산하고 자살을 암시하지만 니나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 코스차는 트리고린에게 결투를 선언함에도, 어머니 아르카지나와 트리고린은 시골마을을 떠나고, 니나마저 배우를 꿈꾸며 트리고린을 따라 나선다.

시간은 흘러 2년 후, 니나와 트리고린은 한 때 사랑에 빠져 아이도 있었지만, 아이는 죽고 니나는 트리고린의 버림을 받는다. 니나는 3류배우로 지방공연을 전전하다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아버지와 새 어머니는 거부한다.

그동안 유명한 작가가 되었고 명성도 인기도 얻은 코스차는 여전히 돈도 명예도 아닌 어머니와 니나의 사랑만을 원한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니나는 자신을 버린 트리고린을 사랑한다고 호소하고, 어머니 아르카지나 역시 훌륭한 작가로 변모한 아들의 작품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결국 코스차는 무대 뒤에서 자살로 목숨을 끊고 노환인 외삼촌 소린도 죽음을 맞이한다.

극을 보고 나니 참으로 난해하다는 느낌이었다. 깊은 연륜이 묻어나는 백발의 할머니가 "참 철학적이란 말이야"라며 함께 동행한 남편(외 여러 명)에게 말을 건넸다. 나로서는 아직 이해가 잘 안되는 공연, 일상이 아닌 아주 극단적인 인간의 면면을 폭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어머니와 니나를 향한 코스차의 사랑은 병에 가까운 집착으로 보인다. 그는 그들의 시선을 끌고 사랑을 되돌리고자 자신의 죽음으로 협박(?)하며 어리광 부리는 모습을 보인다. 어머니 아르카지나 역시 모성애를 지닌 어머니이기에 앞서 천재 소설가를 사랑하는 한 평범한 여인이다.

극 중 갈등의 주인공인 소설가 트리고린도 재미있는 캐릭터다. 그는 자신의 명성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명한 소설가가 되기까지 노력하면서 보낸 세월 속에 잃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한이 맺힌 사람으로, 작품을 통해 많은 이들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만 정작 본인은 그 작품에 만족하지 못한다.

작품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하루하루 긴장하게 보내며 그래서 더욱더 평온한 향촌의 삶을 동경하는 불쌍한 존재이며, 순수하고 밝고 명랑한 시골처녀의 존경과 애모에서 짜릿한 첫사랑의 인기척을 느끼며 애인 아르카지나에게 "이런 느낌 처음이야, 날 좀 봐주라, 날 좀 도와주라"며 애걸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니나와의 사랑은 얼마 못 가고 니나에게 "그는 아직 자기 색깔을 못 찾았어"라고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극 중 농장관리인 사므라예프도 재미있는 캐릭터다. 그는 농장일에 충실하기보다는 기회만 있으면 똑같은 이야기를 곱씹으며 자신의 가창력을 뽐내려 한다. 가수를 꿈꾸는 그는 소설가 트리고린에게 접근하며 기회를 엿보는 자기중심적인 인물.

가장 정상에 가까운 인물은 외삼촌 소린이 아닌가 싶다. 코스차의 자존심에 대해, 그의 일상과 의상 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코스차에 대한 이해와 동정 등이 드러난다.

극 중 가장 난해한 인물은 마샤로, 그녀는 공연 중간중간 등장해 한 마디 대사를 던지곤 무대 뒤로 사라져 아코디언 음악을 연주한다. 마샤는 코스차를 사랑하지만 멀리서 그를 바라만 봐야 하기에 코스차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좀 더 냉정하게 이들의 세계를 꿰뚫어 보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죽음을 생각할 때 더욱 지혜로워진다고 한다. 체홉의 '갈매기'도 코스차의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젊은 나이에 스스로 생을 끝낸 코스차, 저승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니,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기 전 그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머니 아르카지나와 니나의 죄책 아니면 동정?

하나 밖에 없는 젊은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 아르카지나는 그 사실을 알고 어떤 반응일까? 이들은 각자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서 이전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찌보면 코스차도, 니나도 아르카지나도, 트리고린이나 소린, 사므라예프, 마샤까지 모두 다 우리 맘 속에 우리 영혼 속에 살아숨쉬는 하나하나의 모습들이 아닌가 싶다. 아니면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일지도 모른다. 정답이 없는 인생, '갈매기' 역시 인생의 정답보다는 질문을 던져 깊은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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