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흥분과 설렘으로 밤잠을 설치게 한 월드컵의 열기나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점철된 비극의 천안함 사건도 시간이 지날수록 아득하게 느껴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지 모르겠다. 다시 먹고 사는 경제 문제로 회귀하면서 과연 mb 정부는 일을 제대로 추진하고 있기는 한 지 우려와 염려를 갖게 된다.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로 인하여 중요하고 시급한 국책사업들이 표류되고 결단성 있는 국정 운영에 브레이크 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물론 선거로 표출된 민심의 징후를 소통을 최우선으로 해소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위기에 대한 책임소재를 자극하고 , 상황에 대응하는 리더십의 발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미래를 보면서 현재의 일을 처리하는 리더십이 요청된다.
“ 99퍼센트의 인간은 현재를 보면서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고,1퍼센트의 인간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지금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한다.물론 후자에 속하는 1 퍼센트의 인간만이 성공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1퍼센트의 인간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간다 마사노리)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부결된 세종시 수정 법안의 향방이 어떻게 될 것인가? 국운과 국가 미래가 걸린 사안으로서 하루속히 국민적 합의와 올바른 선택이 필요하다. 아메리카를 처음 발견한 콜럼버스는 죽을 때까지 스스로가 발견한 대륙이 아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지만 불굴의 도전 정신은 높이 살 만 하다 "잘못된 결정을 내렸으면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을 통해서 일을 바르게 돌려 놓아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얻고 방향을 올바르게 하기 위한 최고의 현안 대처법으로 국민투표를 제안한다.
삼국지연의에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이요 사람의 마음을 잃는 자는 천하를 잃는 것이다‘ 향후 머리 좋은 정치인들의 백가쟁명식의 방안이 나오겠지만 더 이상의 찬반 토론이나 국론 분할을 원하는 국민들과 기업들은 없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국민투표의 합의 사항을 따르면 될 것이다.
넉 놓고 세종시의 해결안이 나오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가나 개인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성과관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정부는 일을 통해 국가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야 하는 데 시급한 일을 미루는 것은 죄악의 일종이다. 일의 성과를 탁월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힘들고 지겨워도 올바른 뜻으로 실행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늘 상 부르짖는 정치인들의 국민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통해 엿보고자 한다.
현대인들은 이념이나 체제 대신 사랑과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행복하지 못하는 것은 사랑의 기술을 알지 못하고 자신만의 일방적인 생각의 틀에 갇혀버려 학습을 게을리 하기 때문이다.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꽃에 물주기를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누가 이런 사람들을 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믿을 수 있겠는가?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 관심과 실천력에 달려 있다. 유태인 독일계 미국인 사회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 의 베스트 셀러 ‘사랑의 기술’ 에서 분석한다. 사랑도 일종의 기술로써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지식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력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인간이 사랑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저지르기 쉬운 오류를 3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기가 아닌 사랑 받기의 문제로 여긴다는 것이다. 유아적인 사랑은 ‘나는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한다.’ 라고 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나는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 받는다’ 라는 원칙에 따른다.
둘째, 사랑은 대상의 문제이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견해이다. 미성숙한 사람은 ‘나는 네가 필요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 라고 말하지만 성숙한 사람은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필요하다’라고 한다.
셋째, 사랑에 빠진다는 최초의 경험 속에 머무는 경향이 있다. 서로에게 미쳐있다는 것은 사랑의 강도를 나타내는 증거이지만 그들이 서로 사랑하기 전에 얼마나 고독했는가를 기억했으면 한다. 어쨌든 세종시 문제도 국민 사랑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사랑의 대상과 능력 상황에 어긋나지 않는 해결책도 사랑의 기술에서 나왔으면 한다. 국민들은 세종시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 받는 다는 것이다.
세종시를 처음 사랑할 때 순간의 강렬한 감정만이 아니라 국민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모두 참여하고 이해하고 존경하며 책임지겠다는 희생이 뒷받침 되는 길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세상에서 사랑을 사랑받지 못한다는 자체가 슬프다. 그러나 사랑할 줄 모르는 것은 더욱 슬프다. 세종시 해결에 정부의 보다 분명한 플랜과 결단성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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