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연재/필리핀 마킬링 식물원

서범석 기자
 연재/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24>


필리핀 마킬링 식물원 안의 이우시과 열매와 잎의 기념비.
필리핀 마킬링 식물원 안의 이우시과 열매와 잎의 기념비.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는 필리핀에서 가장 큰 섬인 루손섬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차를 타고서 시내중심을 빠져나오는데는 교통정체 때문에 1시간이 족히 걸려야 남쪽으로 달리는 고속화 도로에 오를 수 있다. 이 도로를 따라서 1시간 이상을 달리면 로스바뇨스(Los Banos)라는 도시가 나온다. 마닐라 중심에서 로스바뇨스까지는 직선 거리가 50km 이지만 교통체증과 도로 사정으로 인하여 2시간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차를 달리다보면 왼쪽에 거대한 호수가 나타난다. 이 호수는 필리핀에서 가장 큰 라구나데배이(Laguna de Bay) 호수로서 크기가 922㎢에 이른다.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화산활동이 심하여 좋은 온천이 많으므로 도시에 들어서면 현지인들이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한글로 식당 간판과 온천, 목욕탕 간판을 걸어 놓은 것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스페인어로 로스바뇨스라는 것은 목욕탕이란 의미이다.
로스바뇨스에는 쌀에 대해 세계적인 권위를 가지고 연구하는 국제 미작 (米作) 연구소(International Rice Research Institute)가 있어 여러나라에서 온 연구원들이 이곳에서 소출량이 좋고 병충해 또는 기후에 강한 새로운 품종의 벼를 연구하고 있다. 또한 필리핀에서 가장 좋다는 평판을 받고 있는 국립 필리핀 대학의 농과대학이 이곳에 있다. 농과대학 안에는 임학부분이 순수임학과 임산가공분야로 나누어져 있고 자체 임학 도서관이 있을 정도로 임학 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학교 안에는 임학 박물관도 있고, 필리핀을 대표하는 수목인 이우시과(二羽枾科; Dipterocarpaceae)에 속한 여러 속(屬)의 나무들이 여기저기 많이 심어져있다. Shorea, Parashorea, Pentacme 속을 포함하여 현지에서 라왕(Lauan)이라고 부르는 이우시과의 대표적인 수목들이다. 수령으로보아 100년 이상 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대학교에 임학 박물관을 갖고 있는 것은 필리핀 국립대학이 전세계에서 유일하다고 생각된다(필자의 생각임). 그 만큼 필리핀에서는 임학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박물관 안에는 삼림생태계와 이와 관련된 환경보호 문제 그리고 필리핀에서 생육하는 각종 수목 표본도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앞 광장 중앙에는 시멘트로 만든 거대한 이우시과의 잎과 열매가 있다. 이우시과는 동남아시아 열대우림 지역 삼림에서 가장 중요한 과(科)로서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등 국가 삼림 자원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한편, 이우시과는 우리나라의 목재산업 진흥에도 크게 관련되어 있다. 1960년에는 라왕을 중심으로 한 필리핀의 이우시과가 수입되어 우리나라 목재산업(특히 합판공업)이 시작될 수 있었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메란티(Meranti; 필리핀의 라왕과 동일 수종)와 카푸르(Kapur; 이 역시 이우시과에 속함)가 당시 우리나라를 세계최대의 합판 수출국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가운데 필리핀의 경우는 라왕이 전체 산림을 대표한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우시과의 나라이다.


필리핀 농과대학의 뒤편에는 높이 1,144m의 마킬링(Makiling)산이 있다. 이 산은 휴화산이므로 언제 다시 폭발할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 산 기슭에 필리핀 정부는 식물원을 만들었다. 이 마킬링 식물원(Makiling Botanic Gardens)은 마치 국립공원처럼 거대하며, 또 다른 곳에서 수목을 가져와서 심은 일반 식물원과 달리 자생하고 있는 수목들을 잘 관리하고 있다.

 

식물원 안에 있는 산길(마치 등산로 같다)을 따라 걷다보면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크루엔(Kruen)이라고 부르는 아피통(Apitong; Dipterocarpaceae Dipterocarpus spp)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우시과의 수목, 그리고 콩과(Leguminosae) 수목들이 하늘을 찌를듯이 높이 서있다. 장대한 열대 정글의 수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서 시야를 가리므로  대낮인데도 주위는 어둡다.


필자는 이 대학 임학과 학생들의 안내를 받으며 산길을 따라서 마킬링 산을 걸어 올라 가던중 정상까지 하루안에는 도저히 갔다오지 못할 것을 알게 되어 도중에 포기하고 다음 기회에 이틀에 걸쳐 정상까지 천천히 걸어가면서 온갖 수목을 관찰하려고 하였으나 아직 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마킬링 식물원을 다시 제대로 방문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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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

나무신문 imwood@imwoo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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