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연재] 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38> - 볼리비아 라파즈 식물원

서범석 기자

고산도시 라파즈의 서민주택지를 마주하고 있는 라파즈 식물원.
고산도시 라파즈의 서민주택지를 마주하고 있는 라파즈 식물원.

 

오전 6시15분, 찬 공기를 마시면서 페루쪽 티티카카 호수(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거대한 호수)에 면해있는 안데스 산맥의 고산(高山) 도시인 뿌노(Puno)를 출발한 버스는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에서 출입국 수속을 하고 계속 안데스 산맥을 넘어 낮 12시30분에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La Paz)에 도착하였다. 1548년, 스페인인들이 세운 라파즈는 해발 3,636m에 위치한 고산 도시로서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도(首都)이다.


페루와 마주하고 있는 볼리비아의 국경 마을 데사구아데로(Desaguadero)에서 라파즈까지 가는 길은 초목이 거의 보이지 않는 황량한 들판이다. 라파즈에 가까이 오자 주변에 가옥이 보이고 마을이 나타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라파즈 교외에 진입할 때 보니 눈에 들어오는 도로변 건물의 90% 이상이 창문이 없거나 철근이 튀어 나오는 등 마지막 마무리가 안 된 상태이다. 아마 완공하면 세금을 과도하게 납부해야 하는 지….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추측이다). 현지인을 보니 페루보다 인디오(남미 원주민)의 비율이 훨씬 높다. 시내에 들어와 버스가 달리는 도로 옆은 평지이므로 라파즈는 이렇게 고원 모양의 평지인줄 알았으나 잠시 뒤 필자의 추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평지 시내 도로를 한참 달리는데 오른쪽 공군 부대 건물이 나타나며 정문 앞에는 노란색으로 칠한, 미국제 T6 프로펠러 훈련기가 전시되어있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몇 달 전에(1950년 초) 우리나라 공군이 국민의 성금으로 캐나다에서 구입한 건국기(10대)와 같은 모델의 항공기이다.

 

그 비행기에 눈길을 주고 있는 사이에 버스는 조금 더 달려 어느 지점에 도착하자 거기서부터는 구비치는 내리막길이다. 그 밑에 대도시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본격적인 라파즈이다. 언덕을 내려가는 굽은 길 위에는 유칼립투스의 거대한 삼림이 보인다. 즉, 라파즈는 유칼립투스 수목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언덕을 다 내려와 뒤를 돌아보니 방금 내려온 산 능선을 중심으로 고지에 집들이 총총히 들어서 있다. 이렇게 필자에게 라파즈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을 것 같은, 이층 구조의 특이한 도시로 다가왔다. 아! 여행은 재미있구나.


라파즈는 스페인어로 ‘평화’의 의미이다. 라파즈 식물원은 시내에 있는데 라파즈를 닮아서인지 2층 구조로 되어있다. 이런 2층 구조의 식물원도 필자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다. 니카라과 가(街)에 면해있는 식물원은 정문이 있는 윗층이 1ha(가로100m x 세로 100m), 아래층이 2ha(가로 200m x 세로 100m)로서 3 ha(약 1만평)의 면적을 갖고 있는데 아주 관리가 잘 되어있는 식물원이다. 원래 이곳은 70년전에 일본 대사관 부지였으나 일본 대사관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이 토지를 라파즈 시(市)에 기증한 것이다. 그 뒤, 라파즈 시청은 이곳을 식물원으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700여종의 국내외 수목과 1,500여종의 화초를 식재하여 놓았고 오늘날도 시청에서 식물원을 관리하고 있다.


정문 입구를 들어가면 현지에서 시프레스(Cipres)라고 부르는 높은 수목(Cupresaceae Cupressus macrocarpa) 이 바람에 가지를 흔들리며 흥겨이 방문객을 맞는다. 윗층에는 가장자리에 식물원 사무실과 도서실도 있고 온실도 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조그만 분수를 중심으로, 현지명 Cipres Columnar(Cupresaceae Cupressus sempervirens), 야자나무(현지명 Palmera Canaria; 학명 Arecaceae Phoenix canariensis), 남미 소나무(현지명 Cedro; 학명 Pinaceae Cedrus deodora), 포플러(현지명 Alamo Blanco; 학명 Saliaceae Populus alba, Saliaceae Sauce lloron) 도입 소나무(현지명 Pino; 학명 Pinaceae Pinus radiata) 등 여러 종의 수목과 화초들이 생장공간을 넉넉히 잡고서 자라고 있다. 계단을 따라서 아래 층으로 내려가면 경사지에 거대한 나무들이 앞을 막는다. 현지에서 유칼립토 블랑코(Eucalipto Blanco; Myrtaceae Eucalyptus globules) 라고 부르는 높이 30m, 흉고직경 1m에 이르는 거목들이다. 가구에 사용되는 느릅나무(현지명 Olmo; 학명 Ulmaceae Ulmus campestris)도 수간을 비스듬히 하고 나름대로 폼을 잡고 서있다.


이 나무는 아마도 미국에서 도입한 것으로 추측된다. 말이 아래층이지 기본적으로 식물원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아래층에서 그 아래로 보이는 계곡을 건너서 맞은편 언덕에는 중산층의 집들이 많이 보인다. 서민집들이지만 전혀 혼잡스러워 보이지 않고 뒷산을 배경으로 들어차있는 집들 조차도 운치있게 보인다.


식물원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사무실에 들어가보니 (사무실은 과거 일본 대사관저이다) 식물원 관리자 두 명이 반갑게 필자를 맞아 준다. 멀리 한국에서 와서 이곳을 방문한 사람은 필자가 처음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필자가 시간이 있다면 라파즈에서 수십 km 떨어진 곳에 있는 삼림지대에 안내를 해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필자의 빠듯한 일정 때문에 그들의 호의를 받아주지 못하고 필자는 이 나라 제2의 도시인 산타크루즈를 향해 신발끈을 다시 조이고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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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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