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컬럼] 동방무례지국된 대한민국
이렇게 자란 아이들은 장차 자신을 병들게 하고, 다른 사람을 병들게 하고, 사회를 병들게 하고, 세계를 병들게 할 것이다. 우리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겁다.
어떤 이들은 피해자들이 폭력을 당할만하니 당한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리고 아이들은 왜 대화로 문제를 풀 수는 없게 됐을까?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인가?
따지고 보면, 어른들의 문제가 크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과 감정대로 대할 경우가 많다. 비인격적으로 때리기도 하고,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모멸감을 주는 언행을 하기도 한다. 대화를 하려고 하기 보다는 명령하고 위협하고 윽박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약한 아이들로서는 부모들의 모든 것을 그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게 부모에게 배운대로 자녀들은 학교에서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대하게 된다.
또 아이들에게 비쳐지고 있는 어른들의 모습도 아이들에게 크게 모범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최근 엘리트 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한 판사가 '꼼수면'이니 '가카새끼짬뽕', '가카의 빅엿' 같은 글을 올렸다. 또 국민들을 보호한다는 한 경찰관은 대통령이 보낸 문자 메시지에 '심판하겠다'는 내용의 답신을 보냈다.
물론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지만, 그래서 분노를 표현할 수도 있지만,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이런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무엇을 배우겠는가? 감각적이고 기지가 번뜩이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아무런 감동도 없고 품격도 없다.
이것은 단지 대통령에게 대한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의 예의 없는 악성 댓글은 이미 여러 명을 자살로 이끌고 갔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감히 상상하기도 힘든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인들의 심성이 어쩌다 이렇게까지 황폐하게 되었는 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물론 지금 한국 사회 내에 수많은 문제들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더한 수많은 전쟁을 겪었고, 불합리와 부조리를 겪었고, 가난을 겪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지금처럼 병들지는 않았었다.
결국, 지금의 문제는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많은 문제들이 국민들의 의식과 교육의 수준이 높아지며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사회 속에서 모든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오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좀더 품위 있게, 고상하고 아름답게 표출되어야 한다. 심각한 흑백 인종차별로 분열을 겪던 미국와 남아프리카를 크게 변화시켰던 마틴 루터 킹, 넬슨 만델라와 같은 모습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 사회 속에 이런 저런 형태의 강자가 약자에게 행사하는 폭력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서민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권력자들이 비권력자들에게 횡포를 부린다. 부모들도 자녀들을 진정한 사랑으로 대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진정으로 약자들을 섬기는 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국민들의 대표들이 모여 있다고 하는 국회도 폭력국회가 된 지 오래다. 대화보다는 힘으로, 폭력으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킨다. 집과 학교에서부터 명령과 순종만이 존재하다보니 대화와 토론이라는 문화는 실종된 지 오래고, 그게 국회라는 권력투구의 장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사람들의 상하고 병든 마음, 극한 증오와 분노를 누그러뜨리고 치유할만한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지도자들, 그리고 모든 이들이 본받고 따를만한 품위 있는 지도자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지도자, 경제지도자, 종교지도자, 선생님, 부모할 것 없이 모두 욕을 먹고 있다. 모두가 화가 나고 분노를 표할만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은 중요한 것이다. 말과 행동은 바로 자신의 존재, 자신의 내면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타락했다고 욕하다 자신마저 타락하면 똑같은 존재가 될 뿐이다. 내면이 병들면 말과 행동이 거칠어지게 되고 무례하게 되고, 금수와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된다. 경제가 발전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며, 사람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니다. 너와 나가 서로 존중받고 배려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비록 내가 비록 그러한 대우를 받지 못했더라도, 금수와 같은 자들에 의해 무례한 대우를 받았더라도,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부터 결단을 해야 한다. 그것이 나를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우리의 자녀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가장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 기사

임금체계와 조직 문화의 갈등
우리나라의 임금체계에 대해 논의하면서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은 임금의 연공성이다. 우리나라의 임금체계에서 연령이나 근속연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OECD 국가 중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 상승률이 가장 높은국가에 속한다.

'태평양 쓰레기 섬'이라는 환상, 과학이 가리키는 진짜 범인은
해양쓰레기 이슈에서 ‘거대 태평양 쓰레기 섬(Great Pacific Garbage Patch, 이하 GPGP)’은 가장 유명하지만, 그 실체는 오해로 가득하다. ‘Patch’는 ‘섬(Island)’이 아님에도, 대부분 발을 딛고 설 수 있거나 배가 못 지날 만큼 빽빽한 섬으로 착각한다. GPGP가 한반도의 16배 크기라는 이야기도 통용되지만, 실제로는 배를 타고 지나가도 보이지 않으며 인공위성으로도 식별이 불가능하다.

한국 기업문화와 노사관계의 기원
조직문화와 노사관계는 단순한 기업 운영의 요소의 수준을 넘어 한 국가의 경제적 역동성과 사회적 안정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심 요인들이다. 특히 한국은 급속한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글로벌화의 과정을 거치며 독특한 조직문화와 노사관계를 형성해 오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기업의 생산성과 혁신 역량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삶의 질 그리고 사회적 갈등 수준에도 깊은 영향을 미쳐 오고 있다.

바다 뒤덮은 ‘하얀 재앙’, 스티로폼 부표 전부 교체해야
"여름철인데 바닷가에 하얀 눈이 내렸더라."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이 한마디는 우리 바다가 처한 비극적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여름 해변을 뒤덮은 '하얀 눈'의 정체는 다름 아닌 스티로폼 양식장 부표 쓰레기다. 이들은 햇볕과 거친 파도에 쉽게 부서지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한다.



![[금융진단] 미 증시, 지정학 완화·빅테크 반등에 상승](https://images.jkn.co.kr/data/images/full/982892/image.jpg?w=288&h=168&l=50&t=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