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총선을 한 달 남짓 앞두고 각 정당들의 공천 작업이 한창이다. 정당들은 한국정치의 혁명적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에 부응하는 개혁공천을 하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은 개혁공천을 통해 재창당을 뛰어넘는 쇄신을 구현하겠다고 약속했고,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은 가치 중심, 국민 중심의 공천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당초의 약속이나 선언과는 거리가 꽤 멀어 보인다.
새누리당은 어느새 쇄신보다는 화합을 앞세우기 시작했는가 하면, 민주통합당은 도덕성보다 정체성을 중시한다면서 정치자금문제로 기소된 전직 의원을 공천했다. 어디에서도 쇄신이나 가치 중심, 국민 중심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변화에서 일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의 교체다. 가치와 제도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결국 이를 실현해 내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 대표나 공무 담당자를 선출하는 선거는 국정에 실패한 사람이나 세력을 일정한 기간을 두고 교체하기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사람의 교체가 반드시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새 사람 역시 권력욕과 사적 이익에 함몰된 정치꾼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요 정당은 총선 때마다 대폭 물갈이를 단행했다. 40%에 달하는 큰 폭의 물갈이를 한 때도 있었다. 그 결과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는 5·16 쿠데타 직후의 61.7%를 상회하는 63%가 초선으로 충원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우리의 정당 정치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 왜 그럴까? 비슷한 사람이 충원되었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차례로 집권한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까지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방식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했다.
특히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이끌어갈 인물을 발탁, 기용하기보다는 지역주의, 당선 제일주의, 파벌주의에 입각한 구시대적 인사를 되풀이했다. 시대적 환경은 민주주의로 변화하였고 얼굴 또한 대부분 바뀌었지만, 정치권은 가치관과 행동양식에서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들로 채워져 왔기 때문에 시대에 걸맞은 질적 변화를 기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새누리당이 야당 할 때나, 민주통합당이 여당을 할 때나 한국 정치는 늘 같은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국민으로부터 극도의 불신과 경멸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번 공천에서도 주요 정당들은 경쟁하듯 물갈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물갈이를 통해 새 시대를 이끌어갈 정치세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정보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극심한 양극화로 인해 혼란과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를 민주적으로 통합하여 국가발전을 이끌어가는 시대적 과제를 짊어질 국정 주도세력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기에는 주요 정당들이 보여주는 모습들이 너무 실망스럽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오로지 국민만 보고 가면서 정치의 변화, 쇄신 그리고 과거와의 단절을 이룩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또한 향후 10년 대한민국을 이끌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그러나 여야 공히 이와는 달리 고질적인 계파 간 갈등, 당 지도부의 공천개입 논란 그리고 자살까지 부른 모바일 선거인단 동원 문제 등 구시대적 작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상대방의 실수에 적당히 편승해서 기득권을 편하게 나누어 갖는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제 공은 유권자에게 넘어오고 있다. 우리는 이번 총선거를 통해 민주공화국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공공적 가치관과 능력으로 국가를 이끌어 가는 새로운 세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주요 정당들이 당초 약속한 대로 개혁 공천을 하였는지 엄정하게 심판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권이 스스로 바뀌지 않는다면 유권자 손으로라도 정치개혁을 이끌어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민이 주요 정당의 볼모가 아니라 심판자라는 사실을 똑똑히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이 주권자로서의 의무이자 책임이기도 하다. 국민의 현명하고 냉정한 판단을 기대한다.
출처 : 경향신문 3월 5일자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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