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재경컬럼]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된 한국인 김용 총장

[재경일보 이규현 기자] ◇ 김용 다트머스대학 총장 세계은행 총재 지명… "세계은행 총재=미국인 관행 깨져"

한국인 최초로 아이비리그 총장으로 임명돼 화제가 됐던 김용(미국명 Jim Yong Kim, 51) 미국 다트머스대학 총장이 이번에는 한국계로 최초로 세계은행(WB) 총재에 선임될 것으로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차기 세계은행 총재에 김용 다트머스대학 총장을 지명했다. 전 세계 언론들은 한국인인 김 총재가 미국이 지명하는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최종 결정되자 "예상치 못한 결과"라며 '서프라이징(surprising)'이라 표현했다. 세계은행은 지난 1968년 설립된 이래 지금까지 미국인이 계속 총재를 맡아왔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은 국제통화기금(IMF)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금융질서를 떠받쳐온 브레턴우즈체제의 양대 축으로, 국제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은 그동안 IMF 총재는 유럽인,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인으로 배정하는데 암묵적으로 동의를 하고 이러한 관행을 지금까지 계속해서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오는 6월 퇴임하는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현 총재의 뒤를 이을 차기 총재 후보에도 모두 미국인이 거론됐으며, 이 가운데서 전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국가경제위원회(NEC)를 역임한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왔었다. 이 밖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존 케리 상원의원 등 쟁쟁한 미국 정계 거물들이 후보로 거론되어 왔다.

하지만 지난해 IMF 총재 선출 때부터 '미국과 유럽의 자리 나눠 먹기'에 반발해온 아프리카, 중남미, 중국 등 제3세계 국가들은 이번 세계은행 총재 선출을 놓고서도 반발, 아프리카 국가들은 나이지리아 재무장관인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를, 남미 국가들은 콜롬비아 국적의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인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를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내세우며 미국을 압박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불문율처럼 여겨지던 '세계은행 총재=미국인'이라는 관행을 깨고 아무도 예상치 못한 한국계 미국인인 김 총장 카드를 빼내 들었다. 김 총장 역시 국적으로는 미국인이라는 점에서 관행이 완전히 깨진 것은 아니지만, 세계은행이 설립 이후 처음으로 사실상 '비미국인 총재 체재'로 가게 된 것은 큰 변화의 시발점이라는 평가다.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은행 등의 원조를 받았던 국가인 한국 출신이어서 제3세계 국가들의 반발을 무마할 수 있을 뿐 아니라 5세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이후 사실상 미국인으로 살아와 세계은행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김 총장을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하는 '절묘한 카드'를 내놓는 수완을 보였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이 차기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김용 미국 다트머스대 총장을 지명하자 세계 각국에서 지지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24일(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에 대해 “고무적”이라며 “오바마의 결정은 세계은행 내에서 역할이 커져야 한다는 개발도상국의 요구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프리카 르완다 폴 카가메 대통령도 “김 총장은 아프리카의 진정한 친구”라며 “가난 퇴치에 앞장설 적임자”라고 환영했다.

워싱턴 포스트(WP)도 김 총장의 세계은행 총재 지명을 1면 주요 기사로 다룬 데 이어 사설에서도 “한국 태생으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여겨 온 김 총장의 후보 지명은 그동안 백인 남성이 이끌어 온 세계은행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의미가 있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김 총장은 이 같은 정치적인 포석을 넘어 아이비리그 대학인 다트머스대학 총장으로 재직하며 보여준 뛰어난 경영 및 행정 능력에다 의학 분야의 전문성, 봉사의 리더십 등으로 인해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적절한 카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식적으로 총재직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도 “김 총장은 최고의 후보”라며 치켜세웠다.

한편, 김 총장의 총재 지명을 가장 강력하게 추천한 이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가이트너 재무장관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특히 오바마가 세계은행 총재 인선으로 고민하자 클린턴은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통해 김 총장을 오바마에게 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김 총장을 만나 처음으로 세계은행 총재직을 제안한 사람은 클린턴 장관”이라며 “클린턴 장관과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김 총장 안을 강력하게 지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가이트너는 다트머스대 출신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김용 총재의 세계은행 총재 지명에 대해 “짐 킴(미국명)은 내 친구인 파머와 함께 아이티에서 페루·말라위까지 보건의료와 희망을 배달한 인물”이라며 “오바마는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아프리카 출신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남아메리카 출신의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와 총재 자리를 놓고 경쟁하게 됐지만 긍정적인 평가가 압도적이어서 무난하게 총재직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 한국, 3대 국제기구 중 2개 기구 수장 배출

오바마 대통령은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하기 전 차기 세계은행 총재 후보로 김 총장을 추천함으로서 한국인들에게 큰 선물을 선사했다. 이미 오바마 대통령은 주요 연설 때마다 한국을 언급하며 호감을 보여왔었다. 한국에 대한 그의 우호적인 자세가 김 총장의 세계은행 총재 지명에도 어느 정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임은 자명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이어 김 총장이 세계은행 총재로 공식 선임되게 되면, 우리나라는 유엔(UN),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3개의 국제기구 중 2개 기구를 한국계 인사가 이끄는 쾌거를 맛보게 된다.

한국은 전쟁 폐허로 인해 국제 사회의 원조를 받는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변신한 기적과 같은 성공 신화로 인해 선진국은 물론 제3세계와 신흥국으로부터 모두 지지를 얻고 있는 데다 우수한 인재 배출 등으로 국제기구에서 점점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 세계은행 지원받던 나라가 총재 배출

국제 금융기구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 데 하나는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악몽과 같은 IMF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은행이다.

IMF는 세계의 중앙은행, 우리나라의 한국은행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이에 반해 세계은행은 세계 2차대전 이후 복구와 개발을 위해 설립된 은행으로, 개발도상국의 공업화와 도로, 항만, 학교, 병원 등 인프라 구축, 가난을 퇴치하는 프로젝트 등 저개발국의 중요한 프로젝트에 매년 500~600달러(60~70조원) 규모로 돈을 저리로 빌려주는 은행이다. 우리나라의 산업은행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개도국의 도로·항만 건설 등 경제개발에 세계은행으로부터 차관을 지원받았던 대표적인 세계은행의 수혜국이다. 영동고속도로, 경주 보문단지, 제주 중문단지 등이 1970년대 세계은행 차관으로 건설됐고, 이 밖에 서울·부산·대구 지하철, 부산·묵호항 등도 세계은행 차관으로 건설했다.

우리나라는 세계은행 차관 덕에 선진국의 대열에까지 올라선 유일한 국가인데, 이번에는 이제 세계은행 총재까지 배출하게 됐다.

◇ 세계은행, 경제개발 차관 지원서 최빈국 질병·가난 퇴치로 역할 변화?

아울러 이번 김 총장의 총재 지명으로 세계은행 역할의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과거 세계은행은 주로 개발도상국의 도로·항만 건설 등 경제 개발에 차관을 지원하는 것을 주 역할로 했지만 최근에는 아프리카·중남미 최빈국의 질병·가난 퇴치로 무게중심이 옮겨 가고 있다.

또 지난 20여 년 동안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에서 에이즈와 결핵 퇴치에 매진해 온 김 총장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고 있다. AP통신은 오바마가 김 총장의 이 같은 전문성을 높이 평가해 지명한 것으로 평가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23일 김 총장을 지명하면서 “세계은행은 개도국의 빈곤·질병, 삶의 질 향상과 싸우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며 “20년 이상 빈곤국의 질병와 환경 개선을 위해 헌신해온 김 총장만큼 그 (세계은행 수장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인물이 없다”고 말했다.

또 “김 총장은 세계적 경험을 갖췄다”며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그리고 미국에 걸쳐 세계 각 국가에서 몸담아왔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페루 등 지원이 어려운 국가들에 결핵약을 보급하는 프로그램을 고안하는 등 제3국의 질병 해결에 앞장서 왔으며, 세계보건기구(WHO)의 프로그램을 에이즈 퇴치약을 보급하는 것으로 확대하는 데도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악성 결핵이 창궐했을 당시 하버드대 의대 교수였던 그는 치료제가 너무 비싸 WHO도 사태 해결에 어려움을 겪자 복제약 도입을 제안해 결핵을 퇴치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었다. 당시 WHO는 자칫 결핵균의 내성만 키울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지만, 그는 오리지널 치료제보다 95% 싼 복제약을 대량으로 들여와 결핵을 퇴치했다.

또 2004년 WHO 에이즈국장에 취임한 그는 2005년까지 300만 명의 아프리카 빈민 환자에게 에이즈 치료제를 공급한다는 ‘3-5 계획’을 발표했으며, ‘비현실적 탁상공론’이라는 주변의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강행해 현재 그의 프로그램에 따라 700만 명의 아프리카 에이즈 환자가 치료받고 있다.

◇ 김 총장은 누구?

김 총장은 한국 서울에서 태어나 5세 때 부모를 따라 미국의 아이오와주로 이주한 한인 1.5세다. 브라운대학을 나와 하버드대에서 의학박사와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여년 간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며 비영리 의료단체인 ‘파트너스 인 헬스(Partners in Health)’를 공동 설립해 빈민 결핵퇴치와 국제 의료구호활동 전문가로 활약해왔다.

2004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 에이즈국장을 역임했으며, 2009년에는 4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다트머스대 제17대 총장으로 선출돼 ‘아이비 리그'의 첫 한국인 총장으로 뽑혀 화제가 된 바 있다. 김 총장의 세계은행 총재 지명이 한국인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크게 자리잡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한국 젊은이들의 포부가 더욱 세계로 뻗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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