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폭풍의 전조?… 카드빚 못 갚아 경매 넘어간 아파트 급증
몇 백 만원 카드빚 못 갚아 11억 아파트 경매에 넘어가기도
'주택담보대출 부실→금융기관 부실' 스페인식 위기 현실화되나
A씨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지난 2008년 5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의 '탑마을 대우아파트'(전용 164㎡)를 매입하기 위해 한 저축은행에서 시세의 90% 상당인 10억7500만원을 대출받았다. 당시 아파트 시세(KB국민은행 통계 기준)는 11억9500만원이었다. A씨는 여기에서 가격이 더 올라간다면 수억원은 거뜬히 차익으로 남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매달 엄청난 이자가 붙을 수 밖에 없는 수십억원의 돈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2008년 말 금융위기가 터지고 부동산시장이 꽁꽁 얼어 붙으면서 아파트 값이 하락하자 이자와 생활비 감당이 어려워져 카드빚을 낸 뒤 여러 장의 카드로 다른 카드빚을 갚는 이른바 '카드 돌려막기'에 나섰고, 결국 연체로 인한 카드빚이 2200만원까지 불어나자 카드사에서 아파트를 경매에 내놓았다. 주택담보대출→주택경기악화에 따른 담보가치하락→이자 부담에 따른 카드돌려막기→경매 신청의 악순환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해당 아파트는 경매에서도 잘 처분되지 않고 있고,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6억500만원에 팔린 뒤 거래가 끊긴 상태라 설령 경매에서 낙찰되더라도 빚은 절반 이상 고스란히 남을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불패에 대한 믿음으로 대출을 잘못 받았다가 순식간에 4~5억원 이상의 빚더미에 안게 된 것이다.
경기도 성남시 정자동 전용면적 129.7㎡ 우성아파트의 경우 집주인이 2001년 소유권을 취득한 뒤 주택담보대출로 은행에서 6억6500만원을 빌렸다가 역시 아파트 시세 하락으로 인해 어려움이 가중되자 카드값 1400여만원을 갚지 못해 카드사가 집을 강제경매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감정가 11억원인 서울 목동 목동신시가지 아파트 전용면적 98㎡의 경우에는 집주인의 카드 빚이 불과 880만원에 불과했지만 악화된 가계 사정으로 인해 이것조차도 갚지 못해 11억원 짜리 아파트가 경매 매물로 나오게 됐다.
이처럼 아파트 가격 폭락으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집주인들이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가 빚을 갚지 못해 집까지 경매에 넘어가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이자와 빚이 수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를 집어삼킨 것이다.
부동산 경기 악화에 따른 가계담보대출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 같은 아파트 경매 매물의 급증이 앞으로 닥쳐올 거대한 폭풍의 전조가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부동산경매전문업체 지지옥션이 2009년부터 현재까지 수도권(서울·경기·인천) 부동산경매시장에 나온 매물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카드사의 경매신청 건수는 지난 2009년 486건에서 2010년 522건, 2011년 553건으로 증가했으며, 올해에는 상반기에 벌써 328건을 기록하는 등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 아파트 경매로 처분해도 본전도 못 찾아
또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 주거시설의 경매 낙찰가가 은행 등 금융사의 채권청구액보다 낮은 경우가 전체 낙찰건수의 47.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사가 부실화한 주택담보대출을 회수하기 위해 대출자에게서 담보로 잡은 주택을 경매에 부쳐도 원금을 회수하는 경우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절반 이상은 본전도 못찾고 쪽박을 차게 된 것이다.
지지옥션이 수도권 아파트를 담보로 잡은 채권자들이 법원 경매를 통해 회수하지 못한 채권 금액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지난 6월 경매와 낙찰건수는 각각 2천115건과 714건으로 낙찰률 33.8%를 기록해 지난해 6월 39.4%(경매 1천798건, 낙찰 708건)에 비해 큰 차이가 없었지만 미회수금액은 623억7천만원으로 18개월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6월 293억2천만원에 비해 1년만에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올해 상반기 미회수금액도 총 2126억2천만원으로 지난해 상반기의 1736억8천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장기화되고 있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호황기 주택시장에 끼었던 거품이 꺼져 집값이 대출원금 이하로 폭락하면서 부동산 경매시장의 낙찰가격까지도 떨어져 경매로 집을 팔아도 은행빚을 갚지 못하는 '깡통아파트'를 소유한 하우스푸어(집 가진 가난한 사람)가 급증하고 있는 셈.
◇ 역풍 맞고 있는 강남3구 등 버블세븐
이 같은 상황은 주로 강남3구를 포함한 버블세븐에서 일어나고 있다. 부동산 거품의 주범인 이 지역이 부동산 거품 붕괴로 인한 타격도 가장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7월 현재 9억4천535만원으로 올해 들어서만 10.6% 떨어졌다. 강남3구에 양천구와 경기 분당·평촌·용인을 더한 '버블세븐' 아파트 매매가는 작년 말 7억7천87만원에서 6억7천151만원으로 12.9% 빠져 하락폭이 더 컸다.
지난 2000년대 중반 수도권 아파트의 상승세를 주도했던 이 지역의 가격은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어 앞으로 이 지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경매 매물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거래 당시 해당 아파트의 담보 가치를 지나치게 부풀렸던 채권·채무자들은 이제 고스란히 그 역풍을 얻어 맞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 담보 가치 하락에 중복 경매신청으로 금융기관도 위기
주택담보 가치 하락에 집주인들도 난리가 났지만 단기이익을 노리고 경쟁식으로 대출을 늘렸던 금융기관들도 혼란에 빠졌다. 가치가 하락한 것도 문제지만 카드사뿐만 아니라 은행과 저축은행 등에 의해 중복 경매신청되는 매물이 크게 늘어나 회수가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카드사가 경매 신청한 물건의 경우에는 채권자가 경매를 통해 회수하고자 하는 금액이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으로 얼마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이미 다른 금융권에 의해 중복 경매가 신청된 물건이 대다수라 이것조차도 회수하기가 쉽지 않는 상황이다.
지지옥션은 올해 카드사 경매신청 물건 328건 중 152건이 은행과 저축은행 등 중복으로 경매를 신청한 건이라고 밝혔다.
지지옥션 하유정 연구원은 "무리한 대출을 받은 집주인이 이자와 생활비 부담으로 카드빚을 지고 아파트를 경매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집을 처분해도 빚은 다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금융위기 전에 높은 감정가를 받았던 아파트가 이제 팔아봐야 빚도 못 건질 '깡통 아파트'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또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금융기관이 경매에 내놓은 물건들이 많아졌지만 낙찰률은 오히려 떨어지면서 낙찰가가 하락하고 있다”면서 “금융사로서는 돌려받을 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손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지는 ‘스페인식 위기’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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