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시중자금 초단기화··화근 키운다

은행들 대출대신 단기로 자금운용

시중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이 경기침체를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려면 시중에 풀린 돈이 가계와 기업 등 실물경제로 흘러들어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경기전망이 갈수록 악화하고 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등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시중자금이 떼일 염려가 없고 조금이라도 높은 수익률을 좇아 단기금융 상품 주변을 맴돌고 있다.

여기에 은행들마저 본연의 업무인 금융중개 대신 위험 관리에 치중하면서 단기 부동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 부동자금 눈덩이..500조 원
5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단기금융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설정액과 증권사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단기채권형 펀드, 은행의 실세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식예금(MMDA),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표지어음 잔액 등을 합한 시중의 단기 유동성은 약 539조 원으로 추정됐다.

금융권에서는 일부 금액이 겹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동자금은 500조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운용사의 MMF 설정액은 지난 2일 현재 108조5천453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19조5천420억원(22.0%) 급증했다. 2007년 말(46조7천390억원)보다는 2배 이상으로 늘어난 규모다.

증권사의 CMA 잔액은 지난달 말 현재 34조1천51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3조3천901억원(11.0%) 늘었다. 단기채권형 펀드 잔액도 2일 기준 26조8천865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2조9천200억원(12.2%) 증가했다.

은행권의 실세요구불예금과 MMDA 잔액은 작년 말 기준 각각 63조6천70억원과 180조925억원이며 양도성예금증서(CD)와 환매조건부채권(RP), 표지어음 등 시장성 수신 잔액은 125조4천975억원에 이른다.

◇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
부동자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유는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자산 회피 현상이 커졌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의 방향이 불확실하고 경기가 악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주식, 채권, 부동산 등 투자처를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어느 기업이 망할지 모르는 데 주식이든, 펀드든 장기로 투자할 수 있겠느냐"며 "일부 투자자들이 부동산, 주식 등의 가격이 더 내려가기를 기다리면서 단기 대기성 상품에 돈을 넣어두고 투자 기회를 기다리는 것도 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모 연구기관의 연구원은 "지난해 11월부터 `구조조정'이라는 화두가 시장에 나왔는데, 정부는 그동안 구조조정을 민간 자율에 떠넘기면서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워 자금의 부동화 현상을 부추긴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중에 풀린 자금은 은행을 통해 필요한 곳에 `수혈'이 이뤄져야 하는데, 은행들도 안전 자산에 돈을 넣기에 바쁘다. 은행들은 한국은행 등으로부터 저리로 공급받은 자금을 대출로 운용하는 대신 MMF와 같은 단기금융 상품에 넣어두고 이자수익을 챙기고 있다.

실제로 은행을 포함한 법인의 MMF 설정액은 2일 기준 73조2천725억 원으로 2007년 말 15조4천952억 원보다 무려 4.7배나 증가했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연구위원은 이런 현상에 대해 "결국 모두 불안하기 때문"이라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대기업 등은 투자할 생각이 없고 돈이 필요한 한계기업에는 은행이 선뜻 내줄 수가 없다 보니 자금이 돌지 않는다"고 말했다.

◇ "불확실성 제거 못하면 큰 화근"
자금의 단기부동화 현상은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고 나중에 부동산, 주식 등으로 일거에 쏠릴 경우, 금융시장의 안정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하나금융연구소의 김완중 연구위원은 "자금이 중장기적으로 공급돼야 투자, 소비의 선순환 구조가 일어날 수 있다"며 "단기부동화 현상은 경기 회복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위원은 "무엇보다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한다"며 "부동산 시장 안정과 함께 부실기업은 과감히 퇴출시켜 주식시장에 자금이 유입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금융연구실장은 "정책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결국 실물경기가 바닥에 이르렀다는 신호가 나와야 돈이 돌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감독당국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돈을 풀었음에도 자금이 기업이나 증권시장 등의 투자시장으로 가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자금이 기업과 투자시장으로 흘러갈 수 있는 묘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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