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장모집 방화살인’ 공소유지 문제없나

검찰이 22일 연쇄살인범 강호순(39)의 장모 집화재를 강이 저지른 방화살인으로 결론내리고 현주건조물방화치사 및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함에 따라 이 사건 공소 유지 가능성이 주목된다.

이 사건은 간접증거만 제시됐을 뿐 혐의를 입증할 직접증거가 나오지 않아 수사단계에서 범행을 부인하는 강이 법정에서도 같은 진술을 유지하며 반론을 펼칠 경우 검찰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화재는 2005년 10월 30일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강의 장모 집에서 발생했다. 이 불로 안방에 있던 네 번째 부인(당시 28세)과 장모(당시 60세)가 숨지고 건넌방에 있던 강과 그의 아들은 밖으로 탈출해 목숨을 건졌다.

강은 화재 1~2년 전과 1~2주 전 부인 명의로 보험 4건에 가입했고 화재 5일 전 동거 3년 만에 뒤늦게 혼인신고를 해 보험금 4억8천만원을 받았다.

검찰은 경찰이 내사종결한 이 사건을 3년 이상 지난 시점에 재수사해 화재원인을 '유류와 같은 인화성 물질에 의한 방화'로 결론지었다.

이 과정에서 화재진압 소방관과 현장감식 경찰관은 물론 이웃 주민, 주변 인물 등 참고인 진술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방재시험연구원 등 화재전문가와 법의학 교수들의 의견, 화재현장 사진 및 방송사 영상자료를 확보해 종합 분석했다.

검찰은 방화로 단정한 이유로 화재 발생 직후 경찰이 촬영한 현장사진과 3일 뒤 국과수가 찍은 현장감식 사진을 대조한 결과 플라스틱 용기의 잔해가 없어진 사실을 들었다.

검찰은 강이 이 플라스틱 용기에 인화성이 강한 유류를 담아 방화한 것으로 추정하고 강이 범행을 은폐하려고 현장을 훼손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화재 현장에 있던 모기향은 강이 치밀한 범행계획 아래 실화로 보이게 하려는 의도로 연출했다고 봤다.

또 화재현장 보존조치 이후 방범창을 통해 몰래 현장에 들어간 사실이 증거 훼손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탈출과정에 대한 강의 진술이 일관성이 없고 방범창 사진에 나타난 방범창의 상태도 진술과 모순된다"고도 했다.

또 화재 현장에서 탈출하기 전 그을음(매)을 들이마시고 5분 가량 기절했다가 일어나 빠져나왔다고 진술했지만 일단 그을음을 들이마시고 기절하면 다시 일어날 수 없다는 게 법의학자들의 의견이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강호순의 탈출 경위를 비롯한 여러가지 진술이 허위임을 이처럼 법정에서 밝혀 범죄 혐의를 부각시키겠다는 판단이다.

이와 관련, 법조계 안팎에서는 피의자가 자백하지 않을 경우 공소 유지가 쉽지 않아 범죄의 신빙성을 높이는 보강증거를 충분히 확보해 재판부를 설득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유류와 용기 등 범행도구 구입처, 범행 전후 행적 등을 조사해 범행의 신빙성을 보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판결경항을 볼 때 '범죄사실을 인정하려면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로 증명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의 '증거재판주의' 원칙을 엄격히 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모친을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지른 혐의로 기소된 조모(24) 씨 사건에서 '방화 가능성이 높다'는 소방관의 증언에도 불구, 1심 법원은 방화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한국판 OJ심슨 사건'으로 불렸던 치과의사 모녀 방화살인 사건도 사망시간과 관련된 여러 간접증거들이 제시됐으나 국내외 법의학자들이 증언대에 서는 8년간 법정 공방 끝에 2003년 무죄로 결론이 났다.

'희대의 살인마' 유영철이 1심 첫 공판에서 자백했다가 이후 진술을 번복한 서울 이문동 살인사건의 경우 2005년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따라 무죄가 확정됐다.

이에 대해 검찰은 유사한 사건에서 정황증거만으로 법원으로부터 유죄를 확정받은 사례가 있었다며 공소 유지에 자신감을 보였다.

그 하나는 30대 가장이 자녀 명의로 4건의 보험에 가입한 뒤 자녀와 조카 등 4명이 탄 승용차를 저수지에 추락시켜 익사시킨 사건.

대법원은 2001년 11월 "사고 2-5일전 보험에 가입한 사실과 사고현장 상황과 사고 경위 등을 종합할 때 범행은폐 목적으로 피해자들을 승용차에 태운 후 고의로 저수지에 추락시킨 것으로 살인의 범의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또 하나는 음식점에 불을 질러 보험금을 타내려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으로, 대법원은 2002년 "유죄를 인정할 만한 증명력을 가진 직접증거는 없지만 여러 간접증거 및 정황증거에 의해 경제적 곤란을 해결하기 위해 보험사고를 가장해 방화한 혐의가 인정된다"고 방화 혐의를 유죄로 확정했다.

수원지검 안산지청 박종기 차장검사는 "방화살인 사건은 통상 증거가 제대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간접증거를 종합해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이 사건의 경우 범행 수법과 동기, 범행 당일 및 화재 이후 행적 등을 종합하면 방화살인 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재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