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유럽, 단결의 물밑에선 ‘사분오열’

금융위기 속 동유럽 파벌화 움직임

유럽 주요국들이 22일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대비해 국제금융시장의 규율 강화를 골자로 하는 공동입장에 합의하는 등 외견상 단합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물밑에서는 동유럽 위기, 보호주의 등의 문제를 놓고 첨예한 갈등이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에 뒤늦게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이 '내부 블럭화'를 통해 서유럽 강국들에 집단적으로 맞설 태세이고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강대국들 간 분열도 노출되는 등 유럽이 금융위기를 맞아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사분오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EU 순회의장국인 체코의 미렉 토폴라넥 총리는 이날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주요국 회의를 마친 뒤 귀국행 비행기 기내에서 기자들에게 "좋게 얘기해서 (유럽 강대국들 간의) 의견차이가 굉장히 컸다"면서 특히 "G20에서 EU를 대표하는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4개국이 많은 사안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게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를 비롯한 유럽 주요국 지도자들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공동성명을 통해 국제금융시장에 대한 규율을 강화하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며 특히 헤지펀드와 신용평가사들에 대한 감독, 조세피난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토폴라넥 총리는 "EU의 단결을 모색하는 것이 (의장국으로서) 우리의 책무이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동유럽 국가들이 내달 1일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특별정상회의에 앞서 당일 별도 회의를 열어 공동입장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EU내의 파벌화 움직임도 가시화하고 있다.

폴란드의 제안으로 열리는 동유럽 '미니 정상회의'는 2004년 이후 EU에 가입한 9개국이 참석해 부자 회원국들의 보호주의를 비판하고 동유럽에 대한 적극적 지원을 촉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토폴라넥 총리는 중.동 유럽 국가들이 유럽중앙은행(ECB) 자금에 대한 접근 등의 문제에서 '차별'을 우려해 이번 회의를 열게 됐다면서 "구 EU 회원국들과 유로존 국가들이 중.동 유럽에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서유럽 은행들은 최근 어려움에 빠진 동유럽 은행들에 대한 신용공여를 제한함으로써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23일자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과 인터뷰에서 동유럽 은행의 자본 확충을 위해 1천200억유로(한화 약 228조원)가 필요하지만 외부의 지원이 없을 경우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또 폴란드의 미콜라이 다브길레비츠 유럽담당장관은 "우리는 공동시장 보호를 옹호하는 EU의 입장을 지지하며 보호주의에 반대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호주의에 대한 우려는 이날 베를린 회의에서도 일부 논의됐고 공동성명에도 "경쟁의 왜곡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언급이 있었으나 본격적인 논의는 내달 1일 EU 특별정상회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후 공동 기자회견에서는 최근 프랑스가 자동차산업 지원계획과 관련해 유럽 대륙의 양대 축인 독일과 프랑스가 '보호주의' 문제로 짧게 신경전을 벌이는 정도로 마무리됐다.

메르켈 총리는 유럽의 자동차업체들은 세계 다른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공정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면서 그러나 "이것은 비단 미국 업체들과의 경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해 프랑스의 자동차산업 지원책을 우회적으로 겨냥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이달 초 자국 내에 생산공장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자동차 회사들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일례로 체코에서 자동차를 생산해 프랑스에서 판매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었다.

메르켈 총리는 이 문제가 내달 1일 열리는 EU 특별 정상회의에서 논의될 것이라면서 "우리는 공동의 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각국 정부의 자동차산업 구제안으로부터 발생하는 불공정 경쟁의 문제는 EU 집행위 차원의 논의대상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르코지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메르켈 총리의 발언에 동의하며 이 문제가 EU 정상회의에서 논의될 것"이라고만 짧게 말했다.

전체 경제에서 자동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독일에서는 폴크스바겐, 다임러, BMW 등 주요 업체들이 판매감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미국 제너럴 모터스(GM)의 독일 자회사인 오펠의 경우 공장폐쇄 또는 파산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2만6천명이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체코와 슬로바키아도 프랑스가 보호무역주의를 취하고 있다고 강력히 비난하고 있으며 넬리 크뢰스 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자동차 업체에 자국산 부품 구매를 요청하는 것은 '바이 프랑스'(Buy France) 정책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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