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서은영의 스타일> 잔인한 아름다움

'유행'이란 사람을 멋지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기도 하지만 도를 넘어설 때 그것은 최악의 순간으로 다가올 수가 있다.

얼마 전 열렸던 밀라노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서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잇달아 일어났다. 백조처럼 우아하게 무대를 걸어야 할 모델들이 하나같이 오리처럼 뒤뚱거리다 쓰러지더니 급기야 신발을 벗어버렸다.

이유는 너무 높은 하이힐 때문이었다. 최고의 디자이너 컬렉션이기에 모델도 세계 최상급이었건만 그들도 에펠탑처럼 높은 하이힐에는 대책이 없었나 보다.

하이힐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신을 수 있는 높이가 3㎝이다. 일반인들이 가장 무난하게 선호하는 높이가 5㎝ 정도이고, 매우 세련되거나 혹은 섹시한 스타일을 선호하는 여자들이 즐겨 신는 높이는 9-10㎝, 패션쇼에 사용되는 높이가 12㎝ 다.

그런데 최근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서 등장한 하이힐의 높이는 14㎝에서 17-20㎝ 정도까지 높아졌다. 그처럼 높아진 힐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굽의 두께도 덩달아 두꺼워졌다.

그래서인지 무기로도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이 하이힐에 붙여진 이름이 바로 '킬힐(Kill Heel)'이다.

패션쇼 무대에 등장할 때만 해도 킬힐은 패션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만 화제가 되었지만 최근 축구선수 베컴의 아내 빅토리아가 이 킬힐을 신자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다.

그녀의 멋있는 패션 감각을 한층 돋보이게 해준 킬힐에 관심이 집중됐고,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이 점차 킬힐을 신게 되었다.

하지만 발등이 완전히 튀어나올 정도로 높은 굽은 건강에도 해롭고, 자칫 발목이 손상될 수 있는 위험도 있기에 해외에서는 킬힐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꽤 오래전 앞뒤로 굽이 높은 플랫폼 슈즈가 유행할 때, 일본에서는 플랫폼 슈즈를 즐겨 신던 한 여인이 사고로 신발에서 떨어져 사망했다는 믿지 못할 일도 있었다.

플랫폼 슈즈는 뒷굽의 높이를 받쳐줄 앞굽이라도 있지만 지금 등장하는 킬힐은 뒷굽만을 높게 세워 거의 까치발로 서 있어야 한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 유행이라는 것 때문에 나 또한 킬힐을 신어 본 적이 있다. 브랜드 론칭 파티에 초대받은 나는 돋보이고 싶은 마음에 킬힐에 도전했다. 높은 굽에 올라서자 나의 눈높이도 높아졌고, 모든 사람이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난쟁이 호빗이 된 것 같았다.

최신 유행의 킬힐을 신고 들떠 있던 나는 파티를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발끝으로 몸을 지탱하다 보니 종아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결국 쥐까지 났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파티에 참석했다가 멋진 남자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나는 결국 유행을 좇다 망가진 모습만 보여주고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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