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성공한 청년들 빅뱅이 일으키는 '루저' 공감. 이 세대 청년들이 공유하는 정서는 시대에 대한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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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의 신곡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빅뱅의 신곡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빅뱅의 신곡 뮤직비디오 중 한 장면

한때 '루저'(Loser)란 단어가 논란을 일어켰던 적이 있다.

본래 '범죄자', '전과자', '실패자' 등을 뜻하는 모욕적인 말이지만,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쓰는 단어는 아니었다. 낸시랭이 "나에게 악플 다는 사람은 전부 백수에 루저들"이란 발언을 한 뒤에야 이 단어의 숨겨진 뜻이 조금씩 알려졌고,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한 여성이 한 "키가 180이 되지 않는 남자는 모두 루저"라는 발언을 하는 통에 대중에 널리 퍼졌다. 남성의 컴플랙스 중 하나인 '키'에 관련되었을 뿐 아니라, 단어 자체의 뜻도 매우 심한 욕설이었던 탓에 이 발언을 한 여성은 사회적 매장을 당할정도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루저는 영미권에서도 20~30대 사이에서 많이 쓰는 욕이다. 위 사례에서처럼 남을 욕하는 말로 쓰기보단,  스스로를 '루저'라고 칭하는 등 자조적?자기비하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한 젊은층의 실패와 불안함, 콤플렉스를 담은 언어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많이쓰인다고 남을 함부로 루저라고 부르는건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다. 흑인들이 스스로를 '니거(Nigger)'라며 자조하지만, 남이 이 단어를 쓰면 불같이 화를 내는것과 마찬가지다.

 

쓰레기가 된거처럼 쓰러져 있지만 빅뱅 멤버들은 성공한 청년이다.

쓰레기와  함께 쓰러져 있지만 빅뱅 멤버들은 성공한 연예인이다.

그래서 빅뱅이 스스로를 '루저'로 칭하는 건 다소 우스워보이기도 했다. 빅뱅 멤버들은 외톨이도, 센 척하는 겁쟁이도, 양아치도, 더러운 쓰레기도 아닌 성공한 청년들이니까. 그런데도 '루저'는 발표하자마자 각종 음악차트를 올킬하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다소 아이러니한 결과지만, 이 노래가 '청년의 불안함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켰기에 리스너들의 마음을 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청년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시대도 없을거다.  

 

? 팍팍했던 20세기 미국과 영국... 불안한 청년의 마음을 달랜 음악들

1970년대, 영국은 10년 넘게 영국병이라 불리는 경제침체에 시달리고 있었다. 만성적인 노동파업과 저생산성, 과도한 복지가 문제였는데, 정부의 재정부담을 늘렸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권리의욕을 약화시켜 자발적 실업이 증가했다. 거리엔 일자리를 거부하는 마약에 찌든 청년들이 쓰러져 있었고, 실업수당에 의지해 무기력하게 살아갔다. 정부가 이들을 대신할 노동력으로 서인도 제도의 흑인과 파키스탄인 등 외국인 노동자를 데려오자 인종갈등까지 불거졌다. 일부 극우 정당이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 일자리를 빼앗았다."라며 청년들을 선동하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섹스피스톨즈 (좌) 와 커트 코베인 (우)

섹스피스톨즈 (좌) 와 커트 코베인 (우)

당시 활동했던 펑크밴드 '섹스피스톨즈'의 음악은 기성 음악과 매우 달랐다. 단순하고 선동적인 면이 강했으며 연주실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누구나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대중에 심어줬으며, 이는 곧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정신으로 번졌다. 무정부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노랫말은 매우 과격했으나, 대중 역시 극단에 치달아 있었고, 대중은 함부로 말할 수 없던 생각을 대신 부르짖는 그들에게 열광했다. 공감을 통해 대중적 성공을 얻은 거다.

1990년대 미국은 루저문화가 탄생한 시기였다. 90년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집권 후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래 등 흉흉한 사건이 연달아 이어졌으며, 2000년 초반까지 이어진 경제침체는 청년층을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젊은 층은 새로운 거대 보수 집단인 '네오콘'에 저항할 의지마저 갖지 못했다. 이 역시 한국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다.

그덕에 그런지의 아이콘이었던 '커트 코베인'의 인기는 그의 사후에도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슬럼가 출신의 래퍼 투팍, 백인 래퍼 에미넴은 공권력에 대한 욕설과 경찰 비판, 자조적인 독설로 '빛나는 위너'가 아닌 '패배했지만 매력있는 루저'의 대변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하얀 백인 쓰레기 (Whire trash)'라며 비관하는 에미넴의 가사는 답답한 구세대에 밀려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청년들의 마음을 위로해줬다. 현대에 와서 '그런지'라 불리는 문화 코드가 대중문화에 깊숙히 스며들기도 했다.   

 

? 빅뱅의 신곡, 이번엔 전혀 다른 컨셉으로 차트 올킬

침체된 사회에서 청년이 주도권을 잡기란 쉽기 않다. 젊은이가 느끼는 소외와 열등감은 필연적인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인 빅뱅은 진짜 노동자였던 커트코베인이나 섹스피스톨즈와는 다르다. 이번에 빅뱅이 발표한 신곡 '뱅뱅뱅'과 'We like 2 party'는 루저와는 전혀 다른 파티 EDM(Electronic Dance Music)이다. 한 달 전만 해도 스스로를 패배자라 부르던 아이들은 이번엔 누구라도 유혹할 수 있을것처럼 자신감에 가득 차서 돌아왔다. 죽을때까지 소외와 고독을 노래했던 커트코베인, 사회에 대한 신랄한 분노를 표출했던 섹스피스톨즈와는 전혀 다르다.

빅뱅의 신곡은 이번에도 나란히 음원 차트의 1,2위를 차지했다. 청년들이 이 곡에 열광하는 이유가 공감인 건지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빅뱅이 그들의 우상이며 이상향인것은 확실하다. 다소 섣부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우리 젊은이들이 아직 성공의 희망을 갖고 있다는 징조가 아닐까 싶다. 팍팍하고 견디기 힘든 현실이지만 완전히 포기할 정도로 나가떨어지진 않았다는 거다. 아직은 모두가 잘 살 수 있다 믿고 있으며, 또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제일 잘나가."란 우스운 정도로 낮간지러운 가사가 히트를 친다. 패배자가 아닌 성공한 자를 롤모델로 삼는, 그걸 희망이라 보는 건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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