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긍정적 사고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바버라 에런라이크, 긍정의 배신 中>
몇 년 전 '시크릿'이란 자기개발서가 큰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다. "수 세기 동안 단 1%만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란 카피는 누구나 혹할 만한 것이었고, 긍정적 사고가 인생을 성공으로 이끈다는 주제는 독자의 공감을 샀다. 실제로 이 책을 잃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꾸고 행복을 찾았다고 호평하는 독자도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이 '성공'을 보장한다는 데 초점을 맞춰서 읽다 보면, 저자의 주장 상당수가 허구로 들리기 시작한다. 노력이나 행동에 대한 강조 없이 '긍정적 사고'만을 성공 비법으로 맹신하고 예찬하는 행위는 뉴에이지적, 혹은 종교적 수사와 다를 게 없으며, "노화는 생각의 작용일 뿐."등 허무맹랑한 이론을 주장하는 문단도 실소를 짓게 한다. 성공 사례로 서술한 인물들도 상위 1%와는 거리가 먼 자들이라 설득력이 없다. 정말 상위 1%였다면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를 예로 들어야겠지만 그들은 긍정적 사고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저서 '긍정의 배신'을 통해 시크릿의 허무맹랑함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물론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가 주는 이점을 부정한 건 아니었다. 그가 공격한 것은 긍정적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맹목적 믿음이었다. 가령 회사에서 잘린 노동자와 아직 버티고 있는 직원에게 필요한 건 "이 정도는 괜찮아, 아직 다 잃은 건 아니잖아."라는 긍정적 태도보단, 사회안전망 구축과 인간적 기업 정책을 요구하는 노력과 행동이란 거다.
☐ 기대 심리만으로도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곳, 주식 시장
하지만 기대감만으로 결과를 얻는 곳도 있다. 바로 주식 시장이다. 등락을 예측하기 위해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세계 경제 동향을 면밀히 분석하고, 투자자들은 그래프를 하나하나 찬찬히 뜯어본다. 현대 주식투자는 HTS(투자자 직접 거래 시스템, Home Trading System
)를 통해 개인 투자자도 온갖 정보를 습득할 수 있어 쉽게 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왜 그런 걸까?
1. 등락 여부에 작용하는 요소가 지나치게 많다.
당장 눈앞에 닥쳐있는 그리스 디폴트 위기를 예로 들어보자. 그리스 파산은 분명 길고 지독하게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지, 악영향을 미칠지, 영향을 준다면 직접적인 파급력은 얼마나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파산 후 그리스의 정치적 혼란이 어느 정도일지도 가늠이 안 잡히며, 정말로 유로존을 탈퇴할지, 탈퇴한다면 드라크마(유로존 가입 전 화폐) 체제로 복위할 것인지,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인접국이 도미노 현상을 일으켜 연달아 유로존을 탈퇴하진 않을지, 그렇다면 세계 2위 경제 규모인 EU도 붕괴하는 게 아닐지, 중국 증시는 한국이 받을 충격에 완충 작용을 할 것인지, 신흥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등등 고려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 세계 경제가 밀접한 관련을 갖게 되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건 오히려 더 어렵고 불확실해졌다.
2. 증시는 기대 심리로 움직인다.
증시는 단순한 확률 게임과는 다르다. 등락에 수많은 이해관계가 관여하기에 올라갈 확률이 아무리 높아도 투자자 기대 심리가 따르지 않으면 상승이 이뤄질 수 없는 탓이다. 예를 들어 이완구와 황교안은 모두 국무총리로 임명된 경험이 있지만, 이완구의 임명이 확정되었을 땐 그와 관련된 정치 테마주가 급상승했던 반면, 황교안이 임명됐을 땐 반응이 그저 그랬다. 국무총리 임명이란 작용은 동일했지만 관련 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감엔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가 등락 확률에 영향을 미칠 상황 분석은 가능하지만, 실제 투자자들이 갖는 기대 심리는 예측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 기대감은 주가 등락 여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가령 현 그리스 상황을 보고, 내수 경제가 취약한 데다 메르스로 인한 경기 침체까지 온 한국이 그리스 발 위기를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는 투자 세력이 있을 테고, 국가 부채가 적고 중국 증시가 완충 역할을 해 큰 피해가 없을 거라 생각하는 투자 세력도 있을 테다. 어느 한 쪽 기대 심리가 우세하다면 실제 한국이 입는 경제적 피해 정도 이상으로 등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투자자 시각에선 그리스 위기나 국내 경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 심리 만으로 등락 여부에 영향을 미친 거다. 강렬한 염원으로 타인에까지 영향을 줬다는 점은 '시크릿'이 주장하는 바와 매우 유사하다.

☐ 맹목적 사랑은 팬클럽에서나 하는 것... '긍정의 배신 조심해야'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을 주식으로,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언행을 상황으로, 대구 동구 을 주민을 투자자로 설정하면 구도가 묘해진다.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배신의 정치'를 운운한 뒤, 유 의원은 지역구에서마저 찬밥 신세가 됐다. 주민들로부터 "대통령 지지율 깎아 먹고, 종북 좌파 돕는 유승민은 사퇴하라."라는 원색적 비난을 듣고 있는 그는 무려 3선 국회의원이다. 18대 총선에선 84.4%, 19대 총선에선 67.4%로 득표율도 상당했다. 그의 굳건한 지지기반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지역구 주민이 들고 있는 피켓에서 그들이 선택한 건 유 의원이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민이 바라는 건 박 대통령 지지율이 상승해 굳건히 정권을 장악하는 것이며, 유 의원의 당선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주민이 유승민에게 바란 건 야당 공세로부터 대통령을 보호하는 든든한 방어막 같은 것이었을 거다. 하지만 상황은 주민의 뜻과는 무관하게 움직여 오히려 대통령을 저격한 꼴이 되었다. 기껏 뽑아놓은 지역구 의원이 돌아서다니, '긍정의 배신'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주민들은 유승민이란 상황에 대한 기대 심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증시와 다르다. 기대감과 믿음 만으로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시크릿이 말하는 '맹목적 긍정'은 한순간 반짝였을 뿐 허무맹랑한 동화가 된지 오래다. 어두운 침체의 터널에 들어선지 오래된 상황에서 현실을 부정하며 "아직 임기 2년 반이 남았잖아 이제 능력을 보여주시겠지.", "세월호나 메르스 때문에 안타까워, 대통령님 탓이 아니야."라고 긍정의 힘을 발휘하는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 정권이 국정 수행에서 미흡했던게 무엇인지, 고칠 방법은 뭐가 있는지, 여당은 위기 극복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자정 작용은 있는지 관심갖고 지켜보는게 지지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노력일 거다.
무턱대고 칭찬하고 감싸주고 사랑하는 건 아이돌 팬클럽이나 할 일이다. '배신의 정치'를 말하기 전에 '긍정의 배신'이 더 가까이 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자. 주식처럼 예측할 수 없는 도박판에 국가를 맡길게 아니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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