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은 좋은 놈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와 삼성도 만만치 않다.
엘리엇, 까면 깔수록 놀라운 기업이다. 이들의 투자행태는 잔인하고 비열하며 영악한데다 효과적이다. 엘리엇이 촘촘히 계산한 수(棋) 안에서 아르헨티나가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고, 페루 대통령이 전용기를 압류당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GM과 크라이슬러가 멸망 위기에 직전까지 갔다. 국가와 세계적 대기업을 상대로 거액을 뜯어내는 앨리엇 해지펀드, 과연 비결이 뭘까?

☐ 아르헨티나, 크라이슬러, GM을 위기로 몰고간 엘리엇의 실력
엘리엇의 주된 수법은 국가나 기업 경제의 허점을 파고들어가 투자자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거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2001년 이미 950억 달러 규모의 국가 부도를 겪은 적이 있다. 엘리엇은 이때 액면가 6억 3,000만 달러의 국채를 불과 4,800만 달러에 구입했다. 국가가 정상화된 후 국채를 팔면 무려 5억 8,200만 달러의 차익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아르헨티나 정부는 자국 국채를 매입한 해외 투자자와 국제 협상을 벌여 채무의 70%를 탕감받았다. 대다수 국가엔 채무자가 빛을 도저히 갚을 수 없을 경우 일부 금액을 탕감해주는 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엇은 아르헨티나에 '전액 상환'을 요구했다. 해지펀드엔 아르헨티나의 빛을 탕감할 의무가 없었기에 미국 대법원도 엘리엇의 손을 들어줬다. 채무 조정을 약속했던 채권자들도 엘리엇을 따라 원가 상황을 요구하며 국채 액면가를 받아냈고, 결국 아르헨티나는 2014년 또다시 국가 부도를 경험하게 됐다.
회사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정이 악화된 기업은 회사채 액면가도 낮아지는데, 엘리엇은 GM과 크라이슬러에 부품 대다수를 납품하는 '델파이'란 기업 회사채를 20% 가격에 사들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 위기에 몰리자 미국 정부는 대출금을 지원했고, 채권자로서 델파이 경영진을 장악하고 있던 엘리엇은 자동차 산업을 인질로 수억 달러에 이르는 공공자금을 요구했다. 델파이가 파산할 경우 미국 자동차 산업도 회생할 가능성이 없었기에 미국은 경제 정상화에 투입할 돈을 엉뚱하게 엘리엇의 주머니에 넣어줘야 했다.

☐ 삼성, 순환출자 고리 깨질 위험에 처했다.
삼성의 경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 1:0.35이 문제가 됐다. 재일모직 주주는 합병 후에도 신생 합병회사의 주식을 동일하게 받을 수 있지만, 삼성물산 주주는 손해를 보게 된다. 가령 삼성물산 주식을 100주 갖고 있어도 합병 후엔 35주로 보유량이 줄어드는 거다. 비대칭적 주식 배분이 용인될 수 있는 근거는 '자본시장 통합법'에 있다. 이 법은 상장기업이 합병할 경우 직전 한 달 평균 주가를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데, 제일모직은 주당 약 16만 원, 삼성물산은 약 6만 원으로 차이가 크다.
삼성물산 지분 7.12%를 매입한 앨리엇은 이 합병 비율을 두고 삼성물산 주주가 손해를 보는 부당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이들이 합병 조건으로 요구한 건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 전자 등 계열사 주식과 현물배당, 정관 개정인데 이를 수용하면 삼성 지배력의 순환고리가 끊어져 사실상 삼성그룹이 해체하게 된다. 합병의 목적이 기업 가치 상승이 아닌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보에 있기에 투자자들도 삼성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동안 정부와 국민의 갖은 도움으로 위기를 넘겨온 삼성이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엘리엇의 난도질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고, 삼성은 기업의 역할에서 벗어났다.
엘리엇의 공격은 외부에서 삼성 체제에 칼을 들이댄 희귀한 사례하는 데 시사점이 있다. 사실 삼성을 비롯한 재벌 기업의 순환 출자는 가족이 소량의 주식을 갖고 있음에도 수많은 계열사를 컨트롤할 지위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비정상적이다. 하지만 역대 정부는 국내 순생산의 20%를 차지하는 기업을 제재하는데 부담을 느껴 삼성을 제지하는 걸 포기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삼성이 갖는 지위는 '초법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삼성 일가의 편법 상송과 비자금 조성, 담합 조사 방해 혐의는 '국가 이익을 위한 대통령 특별 사면'이란 이유로 온당히 처벌받지 않았고, 대한민국은 국가를 대표하는 제 1 기업이 부패의 온상이 된다는 점에서 '삼성공화국', '부패공화국'이란 오명을 씻을 수 없게 됐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특별한 지위에 올라 있는 삼성이 스스로 옥좌에서 내려올 리 없다.
엘리엇의 투자 행위는 비도덕적이긴 했지만 위법은 아니었다. 만약 정부가 삼성의 불공정 행위를 막고 처벌했다면 지금 엘리엇이 당당하게 순환출자 구조를 인질 삼아 삼성을 위협할 일도, 삼성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될 일도 없었을 거다. 하지만 정부는 정부의 역할인 공정한 감독과 규제, 처벌을 하지 않았고, 삼성은 기업으로서 따라야 할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 초월적 제왕인 것처럼 행동했다. 부패와 비리가 정리되지 않자 그 틈에 허점이 드러났고 엘리엇은 이것을 덥석 물었다. 어쩌면 진작에 정부가 해야 할 자정작용을 엘리엇이 대신 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논어 (論語)에서 공자는 제나라 경공이 정치하는 법을 묻자 君君 臣臣 父父 子子(군군 신신 부부 자자)라고 답했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하는 게 올바른 국가 운영의 시작이란 말이다. 정부와 삼성이 정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동안 엘리엇이란 엉뚱한 적이 나타나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한국 국민으로써 삼성이 손해 없이 위기를 넘기길 바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정부와 삼성이 올바른 길을 걷고 있는지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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