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독수리는 먹이가 숨이 끊어질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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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긴 삼성은 상처투성이, 엘리엇은 잃은것 없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안이 통과됐다. 의결권을 가진 주식 참석률은 83.57%, 최종 찬성률은 69.53%다. 특수 관계인 계열사와 KCC, 국민연금, 그 외 국내 기관 등 대형 주주 대부분이 합병에 찬성했고 소액 주주의 찬성표도 적지 않았다. 반대표는 엘리엇과 메이슨 캐피털을 포함한 외국인 및 일부 소액주주로 25.82%에 불과했다.

비록 삼성물산의 주식가치가 자산가치에 비해 저평가하는 공정성 문제가 있지만, '뉴 삼성물산'이 사실상 삼성 그룹의 지주 회사란 점에서 향후 주가가 대폭 상승할 거란 기대감이 크게 작용해 주주 이탈이 높지 않았다. 합병회사는 2020년까지 매출 60조 원, 세전이익 4조 원을 목표로 세웠으며, 특히 51.2% 지분을 보유한 바이오사업에서 2조 원 이상 시너지효과를 낼거라 주장하고 있다.

겉보기엔 삼성의 승리로 끝난 해피엔딩인것 같지만 왠지 모르게 뒷맛이 씁쓸하다. '엘리엇 사태'부터 국내 경영 환경에서 흔히 경험할 수 없는 일이 계속되었으며, 그 와중에 삼성이 가진 문제점이 다시 한 번 드러났기 때문이다.

1. 생각지 못한 위협, 별거 아니었나?

'벌쳐 펀드'란 5월 26일 전만 해도 국내에선 생소한 명칭이었다. 주식 투자가 투기에 가깝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기업 '사냥'을 위해 자금을 모은 펀드가 있다는 사실은 먼 나라 우화에서나 들었던 막연한 개념이었다. 엘리엇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삼성물산 합병이 이토록 긴장감 있게 진행되지 않았을 거다.

5월 26일 합병 결의가 발표된 이후 삼성물산 주가는 30%나 급증하며 2주 만에 최고가를 갱신했으나, 6월 11일 엘리엇이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 금지 가처분을 신청하자 급락하며 이후 주춤한 반응을 보였다. 주주들에게 엘리엇의 등장은 일종의 위기로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엘리엇이 삼성에 승리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비대칭적 주식 배분은 '자본시장 통합법'에 의거한 합법적 절차였고, 대주주인 국민연금이나 국내 기관이 검은 속내가 뻔히 보이는 외투자 엘리엇의 손을 들어줄리 없었다. 지분 7.12%와 일부 소액주주의 호응으로 삼성 계열사간 연대를 뚫는건 무리였다.

2. 삼성 약점 찌른 엘리엇, 영웅의 탈을 쓰다.

엘리엇이 등장한 이후 한 언론사는 '로빈훗의 등장인가?'라는 헤드라인을 쓰기도 했다, 엘리엇 사태의 빌미가 삼성에 있음을 내포한 거다.

삼성은 국가의 묵인 아래 초법적 체제를 쌓아왔고 그 결과 순환출자 고리란 경영형태가 나타났다. 덕분에 삼성 일가는 보유 주식이 소량임에도 불구하고수많을 계열사를 지휘할 수 있었다. 물론 비정상적 경영행위지만 정부는 이를 제재하지 않았다. 국내 순생산의 20%를 차지하는 기업을 쉽게 건드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합병 목적 역시 기업 가치 향상이 아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있어 1:0.35로 제일모직에 비해 손해를 봐야 하는 삼성물산 주주로선 환영할 수만은 없는 처사였다. 엘리엇은 이 약점을 노려 칼을 꽃았고, 그덕에'시체를 뜯어먹는 독수리'에서 '소액 주주 이익 대변하는 영웅'으로 가면을 바꿔 쓸 수 있었다.

3. 국민연금 찬성표, 당연하지만 기분 나쁜 결과.

예상대로 국민연금은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지난 10일 내부 인사만 참가하는 투자 위원회에서 이미 합병건에 찬성하기로 결정했는데,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주식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국민연금이 위원회에 판단을 맡기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운용본부 측은 고심 끝에 전문위원회에 판단을 요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해명했다. 민감할 수 있는 사항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바로 민감한 반응이 돌아왔다. 국민 세금으로 형성된 재단이 손해 볼 것이 확실한 합병 안에 찬성한 건 옳지 못한 처사라는 지적이었다. 이후 합병안이 통과되자 국민들 연금 모아 재벌에 몰아주는 게 경제 정의냐는 원색적 비난까지 등장했다.

조용히 끝날 수 있었던 합병은 엘리엇 사태로 인해 대기업 삼성과 국민간 갈등 구도로 비화됐다. 오랜 기간 쌓여온 기업 대한 불신과 정경유착의 폐단은 합병 자체에 '편법 증여'란 주홍글씨를 메다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민이 보기에 합병 안은 부자의 '돈 놓고 돈 먹기'에 지나기 않았으며 그 자금은 삼성이 주주에 손해를 강요해 만들어낸 것으로 비춰졌다. 엘리엇에 승리한 삼성은 면전이 상처로 덮였으나, 삼성에 패배한 엘리엇은 실상 잃은 것이 없다.

4. 독수리는 시체가 썩기를 끈질기게 기다린다.

엘리엇에 '벌쳐(독수리)'란 별명이 붙은 이유가 있다. 독수리는 살아있는 먹이를 집어삼키지 않는다.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사냥감이 있어도 숨이 완전히 끊어지길 끈질기게 기다린다. 엘리엇이 지금까지 집어삼킨 국가와 기업은 대부분 빈사상태였다. 아르헨티나는 국가 부도에, GM과 크라이슬러는 파산 위기에 몰려있었다. 이들에게 회생의 기회를 미끼로 던져 함정에 빠뜨리는 게 벌쳐 펀드의 수법이다.

삼성은 아직 쌩쌩히 살아있는 기업이다. 엘리엇이 당장 결정타를 날리는 섣부른 수를 쓰진 않을 거로 보인다. 하지만 조짐은 있다. 최근 삼성의 실적은 눈에 띄게 하락하고 있으며 여기엔 삼성에 대한 국민의 불신도 큰 영향을 끼쳤을 거로 보인다. 국제조사 전문기관인 Globla Scan이 실시한 대기업 인식 설문조사에서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의 책임감을 강조한 응답자는 82%에 달했으나, 신뢰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44%에 불과했다. 국제 평균값이 53%라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이 사회적으로 국민의 요구하는 역할에 부응하고 있다고 보긴 힘들다.

삼성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엘리엇이 노리는 결정적 약점이 될 거다. 엘리엇은 앞으로도 투자자로서 권리를 행사하며 삼성을 압박할 거다. 그것이 한두 번의 소송, 혹은 1, 2년의 싸움이 아닌 긴 기다림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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