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사망했다. 향년 84세.
그는 삼성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의 첫째 아들이며, 이건희 현 삼성 그룹 회장의 맏형이다. 장남임에도 불구하고 삼남에 밀려 기업 지휘권을 잡지 못한 탓에 호사가들 사이에선 흔히 '양녕대군'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단순히 '비운의 황태자'라 그의 인생을 표현하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그는 자전적 에세이, '묻어둔 이야기'에서 당시 심경은 풀어놨다. 이맹희와 이건희 두 형제는 같은 아버지를 두었지만 성장 환경은 매우 달랐다. 이맹희가 창업 1세대로서 젊은 시절부터 이병철 회장을 도와 경영 일선에서 종횡무진 했던 것과 달리, 이건희는 일본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마치고 미국에서 MBA 과정을 수료하는 해외 유학 생활을 20대 중반까지 누렸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 처음 맡은 회사도 동양방송과 중앙일보 등 그룹 등 언론 기업이었다. 그룹 핵심에서 다소 벗어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불과 12년 후 이건희는 삼성물산 부회장직을 맡으며 유력한 후계자가 되었다. 반면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경영일선에서 벗어난 이병철 회장 대신, 삼성 그룹 총수 역할까지 했던 이맹희는 결국 후계자로 선택받지 못했다.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에서 맹희∙창희∙건희 세 아들에 대한 평가를 남기며, 이맹희에 대해 "그룹 일부 경영을 맡겨보았으나 6개월도 채 못돼 기업체는 물론 그룹 전체가 혼란에 빠졌다. 본인이 자청하여 물러났다."라는 혹평을 남겼다. 반면 이건희에 대해선 "삼남 자신도 통합경영에 뜻을 두고 성의껏 노력하고 있어 삼성의 경영을 계승시키기로 했다."라며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결정의 배경엔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 사건'과 '대통령 밀고 사건'이란 굵직한 배경이 있었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해 이병철과 맹희, 창희 두 아들 간 갈등이 본격화되었고, 그 결과 후계에서 서 장남과 차남이 밀려나는 결과가 찾아왔다. 이맹희는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를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이 적극 개입한 대규모 조직적 밀수였다고 고백했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일본 미쓰이 기업이 한국비료 건설 과정에서 4200만 달러 상당의 기계설비와 리베이트 100만 달러를 지급했고, 이병철 회장은 이를 박정희 대통령에게 알렸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정치자금 확보를 위해 밀수로 자금을 부풀리려 했고 사카린은 원료는 그 품목 중 하나였다. 이외에도 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스테인레스 패널 등이 밀수 예정 품목이었다고 한다. 이맹희는 이 계획에서 밀수 현장 지휘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언론에 의해 밀수 사건이 적발되자 정부는 자신의 책임을 은폐하고 삼성 죽이기에 나섰다. 이병철 회장은 18개월 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고, 이후 차남 이창희는 부정을 저지른 이병철 회장이 경영일선에 다시 복귀하면 안된다는 내용의 투서를 대통령에게 보냈고, 이맹희도 협조 및 공모를 했다는 의혹을 샀다.
이 투서엔 외화도피와 제일모직, 제일제당 탈세 등 이병철 회장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사항이 기술돼 있었다. 이맹희는 자신이 완전 결백함을 주장했지만 이병철 회장의 분노를 막을 수 없었다.
이후 그는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좌천되었다. 17개 계열사 임직원 자리에서 대부분 해임되었고, 1987년 이건희가 삼성그룹 회장이 되자 그나마 유지하던 직책에서도 물러나 사실장 무직자가 되었다. 제일비료를 창업해 대표직을 유지했지만 큰 사업성과를 얻지 못했다. 제일비료는 이후 CJ의 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이건희와의 갈등은 계속되었다. 이병철 회장 재산상속을 둔 소송전을 삼성그룹과 CJ그룹 간 경쟁으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삼성물산 직원이 이맹희의 아들 이재현(현 CJ 그룹 회장)을 미행한 정황이 포착되고, 2012년 이병철 회장 추모식 땐 삼성이 CJ 관계자 방문을 불허하는 등 감정의 골은 더 깊어졌다. 더 이상 이맹희와 이건희를 형제지간으로 보기 힘들 지경이었다. 결국 2014 이건희가 소송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하며 이맹희는 상고를 완전히 포기했다.
이맹희는 아버지 이병철에 대해 '냉철하면서도 권위를 굳건히 지키려는 인물'이란 평을 남겼다. 부자지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서전에서 이병철은 따뜻하고 자상한 이미지로 그려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왕자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반평생을 저항으로 보내야 했고. 아버지로부터, 정권과 정치인으로부터, 동생으로부터 배신당하며 야망을 이루지 못했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기를 이끌었던 삼성 그룹, 하지만 이맹희의 삶에서 본 재벌 가문의 면면은 평범한 서민에겐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아들, 형제가 경영권 다툼으로 정적이 될 수밖에 없는 냉혹한 모습은, 부(富)를 쌓느라 앞만 보며 달려왔던 우리 사회의 부정적 단면이 아닐까 하는 슬픈 감상을 남긴다.
그래서 장남인데다 집안 어른입에도 불구하고 끝내 인정받지 못하고 멸시 받은 이맹희의 죽음은, 더 깊은 안타까움을 남기는 것 같다.
현재 삼성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중이다. 이재용은 병상에 머문지 오래인 이건희 대신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고, 삼성 그룹도 지배구조를 개편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다. 다행히 이재용은 독남인 덕에 아버지세대와 같은 가족간 경영권 분쟁을 경험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기업이 이윤창출 집단이 아닌 지배구조 형성 도구가 된 점은 변하지 않았다.
삼성이 정상 기업으로 거듭나지 않는다면 이재용의 삼성 역시 언젠가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재벌가의 '오너 리스크'는 한국 경제가 더이상 성장을 하지 못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사회문제가 되었다. 부디 한국 경제사에 같은 비극이 재연되지 않길 바라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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