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독재자 대통령 범죄 비자금은 스위스 은행계좌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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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베른에서 마이클 로버 검찰총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2018년, 2022년 월드컵 본선 유치전에 대한 수사에서 53건의 자금세탁 정황을 포착했음을 밝히고 있다.

 

스위스 베른에서 마이클 로버 검찰총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2018년, 2022년 월드컵 본선 유치전에 대한 수사에서 53건의 자금세탁 정황을 포착했음을 밝히고 있다.
스위스 베른에서 마이클 로버 검찰총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2018년, 2022년 월드컵 본선 유치전에 대한 수사에서 53건의 자금세탁 정황을 포착했음을 밝히고 있다.

"쉿, 이 돈은 스위스 은행 계좌에 넣어둬."

옛 첩보 영화에서 흔히 나오던 대사다. 스위스 금융계는 이 클리셰에 반발해  자국 금융 시스템이 돈세탁에 이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해 왔으나, 그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1986년 필리핀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재산이 적발된 이후 세계 독재자들이 숨겨둔 비자금이 속속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범죄 비자금 스캔들은 스위스 정부와 은행의 명예를 훼손해왔다.

비자금 목록에 들어간 독재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콩고 민주공화국의 모부투 대통령, 나이지리아의 고 아바차 장군, 멕시코의 살리나스 전 대통령, 아이티 뒤 발리에 전 대통령, 코트디부아르 바구보 전 대통령, 튀니지 벤 알리 전 대통령, 리비아 카다피 대통령, 이집드 무바라크 전 대통령 등등... 이 같은 숨겨진 자산은 자국민을 강탈해 모은 돈이며, 세계 곳곳에 빈곤을 창출하는 결과를 낳았다. 스위스 은행 역시 범죄의 공범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많은 스위스 사람들이 독재자의 숨겨진 자산이 과거에나 있었던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점차 강해지는 투명성 요구로 스위스 은행도 더 이상 비밀주의를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민주당 의원 '잭 네이링크'는 "스위스는 물건을 은닉하는 국민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스위스 은행 역시 도덕적 양심을 갖고 있다. 금융계는 그저 스위스 프랑이 정치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스위스의 성장에 충분하다 생각하고 있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숨겨진 자산이 또다시 발각됐다. 지난 '아랍의 봄'에서 수많은 독재자가 축출당하자 그들이 스위스 계좌에 숨겨둔 자산이 드러난 것이다. 브라질 국영 석유 회사 페트로브라스를 둘러싼 정계 비리 사건이나,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친인척 비자금 세탁 의혹도 밝혀져, 스위스 은행이 보유 중인 스위스 프랑 수천 억 가량이 연방 검찰에 의해 동결됐다. 검찰은 "범죄를 통해 형성된 자금과 단순 외국인 정치인 자금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만, 적어도 50억 프랑(약 6조525억 원)을 동결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한다."라고 지적했다.

9월 초엔 말레이시아 나집 라락 총리가 경영자로 있는 '원 말레이시아 개발(1MDB)'가 나집 총리의 비자금을 스위스 은행에 보관하고 있다는 의혹이 부상하기도 했다. 스위스 주간지에 따르면 에리트레아 정부 역시 천만 프랑에 달하는 비자금을 제네바와 취리히에 있는 은행 계좌에 송금했다고 한다.

익명을 조건으로 인터뷰에 응한 한 대형 은행 관리자는 "어떤 은행도 부정한 돈의 유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이 교묘하게 비자금을 숨기기 때문이다. 범죄로 획득한 돈은 먼저 은행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이곳에선 미술품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아 적발이 더 어렵다."라고 말했다. 뇌물과 비자금 등의 범죄를 다루는 바젤 통치 연구소 (BIG)의 '구레타 펜나'는 "특히 규모가 작은 프라이빗 뱅크는 은행 비자금을 조사하는 자금이 없어 가장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이외에 스위스 정부나 국제기구가 '범죄자'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대한 문제도 모호하다. 합법적 자산으로 간주한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뇌물에 관련된 부정 자산으로 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펜나는 "가령 스위스 정부에겐 평범한 정치인인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범죄자로 취급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물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계와 금융계가 완벽히 나눠져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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