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1993년, 대통령이었던 그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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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취임 후 카퍼레이드를 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
1993년, 취임 후 카퍼레이드를 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
1993년, 취임 후 카퍼레이드를 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추모 행렬이 끝이 보이질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에서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까지 수많은 거물 정치인과 경제인이 그의 빈소를 찾았으며, 각종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까지 그의 죽음과 삶을 알렸다. 그만큼 그는 대한민국의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경제에서만큼은 여전히 그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그가 대통령이 되었던 1993년의 한국의 모습이 세계 각지에서 그 모습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대표적인 국가는 '중국'이다.

KB투자증권의 김정호 연구원은 "2010~2015년 중국의 소득ㆍ소비ㆍ산업구조 등은 1988~1993년 한국 성장 모습과 매우 닮아 있다"며 "2016~2020년 사이 중국의 변화상을 전망하는 것도 1998년 이후 한국을 보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중국 경제가 현재 '루이스 전환점' 위에 있다는 것이다.

루이스 전환점이란 경제성장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 중 하나로, 저임금 노동력이 줄어들며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성장 초기엔 시장이 팽창하며 노동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 임금이 낮은 수준에 형성되며, 낮은 투입비용 덕에 신흥국 대다수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경제규모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노동 수요와 공급이 역전되는 순간이 찾아오며, 이후 임금이 상승하면 노동력만으론 이전과 같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루이스 전환점을 맞이한 국가는 타 신흥국에 비해 가격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선진국에 비해선 기술력과 품질이 뒤쳐지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단지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단지

그렇다면 1993년의 한국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문민정부는 해답을 '산업고도화'와 '규제 철폐'에서 찾았다. 이전 정권인 신군부까지만 해도, 한국의 주력 산업은 자동차와 조선, 철강 등 중공업이었다. 특히 한국 조선업은 세계 수주량 1위를 차지하는 등 전성기를 누리며 경제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신흥국의 추격과 일본 등 선진국의 시장 점유를 극복할 방법은 없었던 탓에, 문민정부는 한국 경제를 이끌어나갈 신사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해답을 '반도체'에서 찾았다.

1994년, 김 전 대통령은 세계 최초로 256MB램 개발에 성공한 삼성전자 연구진을 초청해 격려했다. 1986년 1MD, 1988년에 4MD를 개발할 때만 해도, 한국과 일본 사이엔 2~4년의 격차가 있었다. 그러나 1990년 16MD를 개발할땐 격차가 수 개월로 좁혀졌고, 1992년 64MD를 개발할 땐 이미 일본과 우위를 가리기 힘들 정도로 한국 반도체 산업 기술력이 성장해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연구진에 "다시는 일본에 지지 말그래이"라는 특유의 사투리 섞인 말투로 격려를 건넸다.

그 덕인지 몰라도 일본 반도체 업체는 이후 하향 일로를 걷게 됐다.  1998년 2월 미쓰비시전기와 오키전기가 D램 사업 투자를 중단하기로 결정했고, 그해 9월에는 히타치가 도쿄(東京)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이듬해 1월에는 후지쓰가, 3월에는 마쓰시타전기가 D램 사업에서 철수를 선언했으며, 12월에는 NEC와 히타치가 D램 사업을 분리해 엘피다라는 합작회사를 세운다. 유일하게 남은 일본의 D램 업체인 엘피다는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 2009년 300억 엔(약 3000억 원)에 이르는 공적자금을 수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2012년 2월 경영파탄 상태에 이르게 됐다.

또한 김 전 대통령은 "변화와 개혁을 살리겠다."라는 구호를 내세우며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를 도입해 부패 차단을 시도했으며, 고도화되는 산업 구조에 맞지 않는 과도한 정부 규제가 민간부문의 발목을 잡는다는 인식하에 규제개혁에도 힘을 썼다. 그 결과 기업 창업과 공장입지, 자금조달, 시장 진입 등 관련 행정 절차가 크게 간소화됐다.

대외적으로는 임기 전반기 빠른 경제 성장과 적극적 시장개방을 바탕으로 1996년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점도 업적으로 꼽힌다. 비록 '시기 상조'라는 말도 나왔으나, 선진국 문턱에 발을 걸쳤다는 점에 국민들의 자부심은 한껏 높아졌다.

 

열벙식을 하는 중국 군인
중국 군대의 열병식

2015년의 중국, '시한 폭탄'

앞서 말했든, 현재 중국의 모습은 당시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저임금 제조업 대신 신형 평판 디스플레이와 노성능 반도체, 생물의약과 신에너지, 친환경 자동차, 항공우주 장비 등 첨단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아직 제한적인 수준이지만 금융 개혁에도 힘을 쏟고 있다. 그탓에  2차 산업물과 중간재를 주로  한국의 수출량이 감소하기도 했다.

다만, 문민정부의 부정적인 모습까지 닮아가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중국의 부채 총량은 2014년 기준 국내총생산(GDP)대비 205%다. 김 연구원은 "부채 수준이 일본(382%) 등 선진국에 비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금융시스템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지나치게 기업부채(157%)에 몰려 있는 것이 문제"라며 "그림자 금융, 부동산 뇌관이 터져 자산시장의 버블 붕괴가 발생하면 한국이 과잉 투자와 부채로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었던 것처럼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역시 중국의 경제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는 끝없이 돌고 되풀이된다. 비록 김 전 대통령은 타계했지만, 우리는 그 시대가 남긴 교훈을 통해 세상을 봐야 한다.  그가 한국 정계와 재계에 뿌린 수많은 씨앗이, 그의 유지를 받아 앞으로 대한민국에 찾아올지 모르는 시련을 현명하게 대처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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