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전투기의 자국 전폭기 격추 사건 이후 강력한 대응을 천명했던 러시아가 터키에 대한 경제 ·외교·국방 및 인적 교류 분야 제재 조치 마련에 본격 착수했다. 다만 터키와의 군사적 대결이나 전면적 경제협력 중단 등의 심각한 수준에 까진 이르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전폭기 격추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인 터키의 러시아에 대한 침략 행위"라고 규정하고 "이 범죄 행위에 대한 군사·외교적 대응 조치가 이미 취해졌고 앞으로도 더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터키 상품 수입, 러시아 내 터키 기업 활동, 터키와의 공동 프로젝트 등이 제재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란 설명이다.
IS에 총부리를 겨누던 러시아가 왜 갑자기 터키로 총구를 돌린 걸까? 전폭기 피폭이 발단이 되었지만, 러시아의 속내는 더 깊은 곳에 있다. 애초가 러시아가 평화를 위해 IS격퇴에 나섰다고 보긴 힘들기 때문이다.
중동 장악해 미국 견제 벗어나려는 러시아
2010년 초반 '아랍의 봄' 이전만 해도 러시아는 아랍국가와의 관계에서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미 미국이 중동 지역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장기적인 중동 전략을 수행해온 데다, 이미 대규모 에너지 자원을 보유한 러시아는 자국 자원 개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적극적인 중동 정책을 추진할 유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냉전 시기 동맹관계였던 시리아, 리비아,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정도를 제외하면, 러시아의 중동 여행력은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의 대외 에너지 정책이 변화하며 외교 대상으로서 중동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러시아는 에너지 사업이 전체 세수의 50%, 총 수출의 70%, 국가 경제 전체에서 30%를 차지할 정도로 자원 의존도가 높은 국가다.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2000년 전후엔 연간 6% 이상의 고도성장을 지속했으나, 2010년 중반에 들어 세계경제 불황과, 미국의 셰일가스 및 오일 생산의 본격화,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미국 및 서유럽의 경제 제재 등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특히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자, S&P등 신용평가사는 러시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에 돌입할 것을 예상하며, 국가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중동 국가 지도부의 입지에 타격을 입힌 '아랍의 봄'은,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미국, 유럽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중동산 에너지 자원은 러시아와 수출 경쟁하는 관계라 볼 수도 있지만, 에너지 대국인 러시아나 중동 국가가 상대방의 에너지 자원을 굳이 내수용으로 수입할 가능성은 없다. 중동 지역과의 친선은 미국 및 유럽과 유리한 협상을 하기 위한 카드인 셈이다.
러시아, 터키 압박해 세계적 위세 과시한다
터키는 시리아나 리비아처럼 러시아의 '전진기지'까지는 아니었으나,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접국으로써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2013년엔 러시아 수입량 중 터키가 차지하는 비중이 기존 7.6%에서 11.2%로 증가(115억 900만 달러)하며 가장 중요한 교역국이 되었고, 터키에 방문하는 러시아인 수도 연간 350만 명이 넘어 독일 다음으로 비중이 높았다. 두 국가는 원자력 발전소 건립과 석유 공급 등 에너지 분야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기도 했으며, 2014년엔 서비스와 투자 부문 무역 자유화가 논의되기도 했다. 앞으로 전면적 자유무역지대 (FTA)가 체결될 가능성도 매우 높다.
터키는 지난 2014년 기준으로 연 약 8천만 달러(약 920억원) 상당의 자동차 부품을 러시아로 수출했으며 포도, 토마토, 귤, 해바라기씨 등 식품도 대량으로 공급해 왔다. 터키산 농산품은 러시아 전체 농산품 수입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터키는 러시아의 다섯 번째 교역 상대국으로 2014년 기준 양국 교역량은 310억 달러였으며 올해 들어 지난 9개월 동안 교역량은 180억 달러였다.
특히 터키의 대러 의존도가 높은 분야는 '에너지'다. 국가규모에 비해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터키는 상당한 양의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다. 2014년엔 러시아-터키 간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가 추진되기도 했다. 육로를 통해 이어지는 이 가스관은 터키를 거쳐 그리스 등 유럽 타 지역 국가까지 자원 공급이 가능한 것으로, 건설이 완료되면 터키는 러시아 가스 판매 시장에서 독일 다음으로 규모가 큰 국가가 된다.
터키에 대한 경제 제재는 양국 모두에게 경제적 타격을 주지만, 러시아가 터키산 농산물을 이란이나, 이스라엘, 모로코 등 인접국 제품으로 충당할 수 있는 반면, 터키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가 된다. 이번 경제 제재로 인해 러시아는 친미 성향 국가인 터키에 압박을 줄 수 있으며, 중동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그 위세를 과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진단] 미 증시, 지정학 완화·빅테크 반등에 상승](https://images.jkn.co.kr/data/images/full/982892/image.jpg?w=288&h=168&l=50&t=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