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는 미국과 유럽에서 태어났다. 서방 선진국을 제외하면 세계적 인지도가 있는 자동차 브랜드를 가진 국가는 한국과 일본밖에 없다. 그리고 아시아산(産) 자동차는 여전히 '신생' 브랜드에 불과하다. 전통과 명성을 따지는 자동차 시장에서 현대와 기아가 발을 붙인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현대는 도요타의 세계시장 진출 전략을 상당 부분 벤치마킹했다.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로엔드(Low-end) 파괴, 즉 파괴적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파괴적 혁신과 '로엔드' 전략
기업에 성능이 우수하면서 성능 대비 낮은 가격을 요구하는 것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고객의 니즈다. 사격이 싸고 성능이 좋은 물건은 경쟁 상품에 비해 잘 팔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동시에 경쟁사 고객의 충성도를 흔들어 수익과의 상관관계를 낮추는 기능도 한다. 도요타는 값싼 소형차를 수출하며 기존 미국,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고객 충성도를 흔들었고, 틈이 보이자마자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를 출시해 로엔드를 파괴했다. 덕분이 '장난감 차'란 오명에서 벗어나 훌륭한 브랜드 가치를 가질 수 있었다.
한국 완성차 업체의 미국 진출 역시 상기 도요타 사례와 비슷하다. 현대자동차는 1980년대 한국의 높은 노동 생산성 기반의 저가 소형차로 미국 시장에 진입하는 로앤드 파괴 전략을 채택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의 엑셀은 초기 미국시장에서 품질 결함과 열악한 AS 서비스로 실패에 직면하게 된다.
여기서 현대자동차는 로앤드 파괴 전략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마케팅 전략, '10년 10만 마일 워런티(Warranty 10 year / 100,000 miles)'를 시장에 선 보이며 국면 전환을 한다. 이는 미국 소비자들의 신뢰성을 상승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으며 판매 실적으로 이어졌다. 처음 워런티 프로그램을 들고 나왔을 때 자동차 전문가들은 '엄청난 보증수리비용을 뒷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비판이 무성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의 이 프로그램은 미국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우수한 소비자 프로그램(Americas Best Warranty Program)으로 선정되며 미국 시장에서의 성장 기반이 되었다.
신뢰도를 확보한 다음엔 렉서스와 마찬가지로 고급 라인 '에쿠스', '제네시스'등을 론칭해 브랜드 고급화를 꾀했으며, 그동안 공백상태에 있었던 '슈퍼카' 기술력을 인정받기 위해 2017년까지 'N시리즈'라 불리는 고성능 라인도 선보일 예정이다. 현대가 BMW AG에서 영입한 자동차 개발 전문가 '알버트 비어만'은 비어만은 "N브랜드 자체는 틈새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며 개발된 기술력은 현대의 다른 차량에도 적용될 것이다."라며, "현대 차량이 고성능 자동차 경주 트랙에서 안정적이면서도 강력한 성능을 보인다면 고객들은 기꺼이 우리 차량을 사게 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룰'을 정하는 건 중국?.. 현대, 도요타와는 또 다르다
하지만 현대차의 앞길엔 여전히 장애물이 많다. 이번엔 도요타, 현대를 벤치마킹해 추월 기회를 엿보는 중국 자동차 기업 탓이다. 현재 세계는 중국의 경쟁력이 전 산업 영역에서 고도 상승하고 있는 장면을 목도하고 있다. 10억 인구의 거대 시장, 낮은 임금, 강력한 정부의 산업 지원 그리고 국제 사회의 정치- 군사 외교력으로 중국은 전통적인 산업 강국들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중국의 자동차 업계 역시 일본과 한국의 완성차 기업들이 구사했던 로앤드 파괴 전략으로 세계 자동차 시장을 공략할 참이다.
중국의 대표 자동차 기업인 상하이차는 저가 자동차 생산 전략으로 자국 시장에서 엄청난 실적을 올리며, 피아트와 스즈키를 추월하는 등 2009년 판매 기준으로 이미 세계 9위에 올랐으며, 중국 길리자동차는 이미 동남아와 동유럽까지 진출해 저가차 생산에 들어갔고, 기서자동차는 70여 개국에 저가차 수출을 하며 해외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 2011년 KPMG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86%가 2015년 중국은 세계 최대 자동차 판매 및 생산국 지위에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의 로엔드 파괴 전략 방향은 도요타나 현대와는 또 다를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친환경 자동차 시장 선점을 위해 연간 50만대의 하이브리드자동차와 전기자동차를 양산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당국이 나서서 세계 전기자동차 생산대국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에 3년간 100억 위안(약 1조 7,100억원)을 보조금으로 지원하고 공공서비스 부분 전기자동차 구매에 대해서도 보조금을 1대당 6만 위안(약 1,026만원)까지 지급하는 등 투자 규모도 상당하다.
중국의 무서운 점은 세계 시장의 거대한 한 축으로서 산업의 방향을 좌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미래 동력원 지위를 확보한 기술은 없다. 자동차 한 분야만 해도 대세는 전기 배터리지만, 수소 기술력이 시장을 점유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특히 일본은 '수소'를 미래 동력원으로 제시해 수소연료전지 자동차(FCV)와 관련 인프라 정비에 중점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미 혼다 등 기업에 의해 시제품도 나온 상태다. 그러나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선, 중국이 짜놓는 '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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