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로운 유럽은 사라졌다.
지난해 12월 31일 밤(이하 현지시간) 독일 쾰른 중앙역 광장 주변은 그날 밤 여느 대도시 공공장소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험천만하게까지 보이는 독일 특유의 악명 높은 새해맞이 폭죽 터뜨리기 등 일종의 '허가된 일탈'을 즐기려는 이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었다.' 밤 9시께 500명에서 두 시간 뒤에는 1천 명으로까지 불어난 이들 대부분이 북아프리카 또는 아랍계 이민자 배경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그들은 신년 첫날로 넘어가는 밤새 경찰 200여 명의 허술한 공권력을 비웃으며 여성들을 철저하게 유린했다. 이들은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갖가지 성폭력을 가하고 강·절도 행각을 벌였다. 지금껏 경찰에 들어온 피해신고 500여 건 중에는 성폭행 사례도 2건이 있다.
당시 경찰은 시민들이 매를 맞으며 2열 사이를 지나가야 하는 무서운 상황이었다고 비유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통제 불능의 혼돈 그 자체였다고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파문은 커져만 갔다. 인구 100만의 독일의 네 번째 대도시, 옛 서독 수도 본·뒤셀도르프·도르트문트·에센을 품은 인구 1천700만의 독일 최대주(州)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난민, 성범죄,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난민환대 정책이라는 키워드는 극적으로 충격을 배가하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이번 사건은 일단 메르켈 총리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있는 '난민 환대'의 입지를 좁혔다. 토마스 데메지에르 내무, 하이코 마스 법무 장관 등 담당 각료들이 난민 일반에 혐의를 둬서는 안 된다고 전제하면서도 추방요건 완화와 계획범죄 추정 같은 언급에 초점을 두며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메르켈 총리 자신도 최근 마인츠에서 열린 기독민주당(CDU) 연례 정책협의회에서 "단호한 대응이 요구되는 범죄"라고 이 사건에 대한 시각을 밝힌 바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고도 표현하며 분노를 내비쳤다. 특히, 작년 말 전당대회 연설과 신년사 발표 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해 낸다", "독일은 강한 나라다", "난민 유입은 기회다"라는 메시지로 난민 환대를 외쳤지만 그 즈음과 동시에, 그리고 올해 들어선 "난민 유입을 현저하게 줄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 맥락에서 쾰른 사건은 이미 방향이 잡힌 난민 유입 제어와 통제 정책을 가속하는 계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슈피겔온라인은 메르켈 총리가 CDU 정책협의회에서 "하루 1만 명까지 하던 난민 유입이 3천 명으로 감소한 것은 좋은 신호"라고 말했다고 보도하며, 쾰른 사건이 독일의 난민 논쟁을 변화시켰다는 데 CDU 수뇌들이 의견 일치를 봤지만 메르켈 총리는 자신의 정책노선을 변경하지 않은 채 시간을 요구한다고 진단했으며, 메르켈 총리가 속한 CDU의 자매 보수당인 기독사회당(CSU)의 호르스트 제호퍼 당수가 올해 난민신청자를 20만으로 제한해야 한다며 줄기차게 난민상한제를 주장하지만, 메르켈 총리가 계속 거부하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그의 정책태도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난민 상한제 도입은 실현될 수 있을까?
독일은 당초 자국으로 유입될 난민 수치를 30만 명으로 연초에 전망했다가 이후 45만 명, 최고 80만 명으로까지 늘렸다. 이처럼 선도적으로 관용을 베풀려 했던 배경엔 독일 인구 구조의 변화가 있다. 실업률이 6.4%로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라 인력 확충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와 독일 재계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인구 노령화와 저출산으로 줄어든 숙련 노동쳑을 충원하려면 난민 등 외부 인력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난민상한제는 같은 CSU 소속 게르트 뮐러 개발부 장관으로부터도 최근 들어 부정적으로 평가받을만큼 현실성과 실효성에 관해 논란이 많이 따른다. 메르켈 총리는 난민 수의 대폭 감축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앞세워 유럽연합(EU) 차원의 책임 분담과 터키 등 EU 밖 국경통제 협조를 구하는 노력을 배가하고 국내에선 독일-오스트리아간 국경 통제와 부적합 난민 신속 송환, 범죄 난민 추방 같은 정책 노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정책으로 난민 유입을 확연하게 줄일 수 있겠느냐는 의문에 더해, 커지고 있는 난민 반대 정서 및 이를 활용한 우파 정치세력의 득세 가능성이다.
쾰른 사건 이후 지난 10일 인종청소를 암시하는 선동적 언사와 함께 쾰른 구(舊)시가지를 쓸어버리자는 주장이 나왔고, 앞서 9일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EGIDA·페기다) 등 극우 시위대 1천700여 명이 메르켈 총리의 퇴진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 와중에 파키스탄인 6명이 20명가량의 무리에 의해 공격받아 그 중 2명이 병원으로 옮겨지고, 시리아인 1명이 5명으로부터 공격받아 부상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다시 활기를 보이는 페기다 등 극우 세력의 과격 시위와 네오나치들의 발호는 정치안정을 바라고 사회불안을 경계하는 시민들의 우려를 사면서 '이 모든 것이 많은 난민 때문'이라는 논리로 발전할 소지가 있다.
한편 EU(유럽연합)은 난민이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없는 '안전국가' 명단을 작성해 송환 절차를 간소화할 방침이며, 또한 아프리카나 중동 지역 국가가 EU의 송환에 응하는 것을 확실히 하고자 원조 중단이나 비자협상 또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압력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2차대전 이후 최악의 난민 유입 사태에 직면한 EU 회원국들은 국경통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지난해 11월 파리 테러 이후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들이 난민에 섞여 들어올 가능성 때문에 난민에 대한 장벽을 높이 세우고 있다.
EU는 난민 장벽 더 높이 세워
파리 테러 이후 유럽에서 난민 수용에 가장 열린 태도를 보이던 독일과 스웨덴마저 난민 입국을 제한하는 취지의 정책을 잇달아 내놓았으며, 난민들의 1차 관문인 그리스도 EU의 압박에 국경관리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를 했다. 지난해 일찌감치 장벽을 설치한 헝가리는 마케도니아의 장벽 설치를 돕고 있다. 동유럽에서 독일로 가는 관문인 오스트리아도 국경 경비를 강화했다.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도 국경 통제를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독일 정부는 시리아인을 포함한 모든 난민 신청자들에 대해 개인면접 제도를 재도입하고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들을 본국으로 송환하기로 결정했으며, 인구당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하는 국가인 스웨덴도 발트해를 가로질러 자국 도시 말뫼와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을 잇는 외레순 다리를 비상상황 시 폐쇄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달 열린 EU 정상회의는 EU 외부 국경통제를 담당하는 공동경비대 창설 방안에 합의했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EU 외부 국경을 통제하지 못하면 EU는 정치적 단일체를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번 합의로 EU 역내 통행자유를 규정한 솅겐조약을 보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기존에도 EU는 난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했으나 그 효과는 미진한 상황이다. EU 회원국들은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 16만명을 분산 수용하기로 약속했지만 지금까지 재배치된 난민은 270여명에 불과하다. 터키에 대해서도 EU 가입협상을 재개하는 등 혜택을 부여하는 대신 터키로부터 유입되는 난민을 차단하는 등의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U와 터키는 지난해 11월 30억 유로(약 3조7천억원)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난민 대책 협력에 합의했다. EU는 터키에 난민 대책 마련에 필요한 재정을 지원하며, 터키는 자체적으로 난민을 소화해 난민의 EU 유입을 줄이는데 협력하기로 했다. 이 같은 합의 시행 이후 터키에서 그리스로 들어오는 난민이 하루 5천∼6천명에서 4천명 수준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터키의 협력이 효과를 나타낸 것이라기보다는 계절적 요인 등이 작용한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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