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한은-정부 갈등인 ‘자본 확충펀드’ 조용히 사라진다

이겨례 기자
한은

한국은행 반발 속에 출범한 국책은행 자본 확충펀드가 한 차례도 사용되지 않고 올해 말로 조용히 종료된다. 한은은 28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자본 확충펀드 시한 연장 안건을 논의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자본 확충펀드 관련 자금지원은 당초 예정대로 연말에 종료된다.

자본 확충펀드는 조선·해운 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 자본을 확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년 7월 설립됐다.

펀드는 자산관리공사가 만들고, 재원은 한은이 10조 원을 기업은행에 대출하고 여기에 기업은행이 자산관리공사 후순위대출 1조 원을 보태서 마련하는 구조다. 자본 확충펀드는 설립 과정에 심한 진통이 있었다.

정부는 '한국판 양적완화'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발권력을 동원해 기업 구조조정을 직접 지원하라고 몰아 세웠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직접 지시에도 한은은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버텼다.

이주열 총재가 "직을 걸고 막는다"고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조조정 과정에 국책은행 자본 확충은 재정으로 국회 동의를 거쳐서 할 일이라는 것이 한은의 입장이었다. 수개월에 걸친 갈등 끝에 결국 한은이 직접 출자 대신 대출 방식을 제안하며 자본 확충펀드가 만들어졌다.

한은 금통위는 자본 확충펀드를 승인하면서도 국책은행 자본부족으로 금융시스템 불안 확산 가능성에 대비한 비상계획 차원에서 보완적, 한시적으로 하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부실기업 지원이 아니라 '금융안정' 목표를 위한 조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해 징벌적 금리를 적용하는 등 대출 실행을 엄격히 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렇게 자본 확충펀드는 단 1원도 사용되지 않은 채 1년 반 만에 소멸된다.

한은 관계자는 "이후 정부가 계속해서 출자를 하고 국책은행 자본건전성이 상당 폭 개선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결정한 사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을 국책은행이 아닌 시장중심으로 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도 자본 확충펀드를 유지할 필요를 줄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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