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KERI 칼럼]BBQ(Big, Bold and Quick)와 신뢰

어떤 정책이든 구호든 간에 간단명료하여 알아듣기 쉬워야 한다. 게다가 정책이나 구호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말로 그치지 않고 실제 생활이나 노력으로 살아나고 눈에 보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잘 살아보세,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는 군더더기 하나 없이 잘 만든 구호이자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지지리도 못 살던 우리 국민에게 말 그대로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의욕을 불태우게 만들었다.

더욱이 1960~70년대 당시 정부는 해외차관을 들여와서라도 공장을 지어 국민에게 일자리를 찾아주었다. 그야말로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면 당대에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기였다.

구호대로 잘 살기 시작한 국민과 정부는 서로를 신뢰하면서 고성장 시대를 열어갈 수 있었다. 물론 대내외적 여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우리보다 잘 살던 나라들이 수두룩한 가운데 우리 경제가 발군의 성장세를 보였다는 것은 뭔가 남 다른 데가 있었다고 봐야 할 부분이다.

지난 2월 10일 미국의 다우지수가 382포인트, 4.6%나 폭락했다. 당일 미 상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내놓은 8,380억 달러의 경기부양법안을 통과시켰을 뿐만 아니라 미 재무부는 최대 2조 달러에 달하는 2차 구제금융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구제금융안에 부실자산 및 신용경색 해소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면서 주식을 투매에 가까울 정도로 내다 팔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의 정책에 기대를 걸었던 미국인들이 실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사태가 불거지기 시작한 2008년 초부터 신용경색 해소와 경기부양을 위해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지금까지 미 재무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이 투입했거나 투입할 예정인 자금규모는 무려 7조8,000억 달러에 달한다.

작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14조3,000억 달러의 절반을 넘고 있다. 게다가 FRB는 2007년 9월부터 정책금리를 낮추기 시작, 작년 12월까지 10번에 걸쳐 제로금리 수준까지 끌어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신용경색도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유럽계 은행의 대규모 손실과 영국과 러시아·아일랜드의 위기설 등 제2의 글로벌 금융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 

국내로 시선을 돌려보자. 우리 정부와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글로벌 금융위기와 그에 따른 실물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지금까지 150조 원 안팎의 경기부양 및 유동성 지원을 발표·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150조 원은 우리나라 GDP(2008년 950조 원 추정)의 15%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은행의 금리인하도 작년 10월에 시작, 아직 그 효과가 미진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 2기 경제팀이 들어섰다. 1기 경제팀의 “올해 3% 성장과 일자리 10만 개 창출”에서 “올해 -2% 성장과 일자리 20만 개 감소”라는 좀 더 현실적인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또 “경기침체를 하루아침에 정상궤도로 올려놓는 요술방망이는 없다”면서 “정책에 대한 신뢰 회복이 시급한 과제”라는 윤 장관의 말도 가슴에 와 닿는다.

국민들은 이제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의 시행을 원한다. 그래야 정책에 신뢰가 실리면서 효과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위기가 다가온다면 그에 따른 대처도 보다 과감하고 신속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BBQ(Big, Bold and Quick)’식이어야 한다. 국민들을 대표하는 국회도 대승적으로 경제위기 극복에 동참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정부와 한국은행에 꼬리표가 달리지 않은 긴급자금을 방출할 수 있는 특별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전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서 교과서에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교과서에 없는 일도 과감하게 선제적으로 해야 한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지난 9일 취임 첫 회견에서 “오직 정부만이 경제위기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면서 “신속하고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을 경우 1990년대 일본이 겪었던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할 수도 있다”라고 말한 것이 미국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

최성환 (대한생명경제연구원 상무, sungchoi@korea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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