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기자수첩] '국민연금' 인가 '재벌연금' 인가

김동렬 기자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그간 의결권 행사지침에 의거해 의결권을 행사해왔던 국민연금이 돌연 하이닉스반도체 임시주총에서 최태원 SK 회장 등 사내이사 선임 건에 대해 유래가 없던 '중립' 결정을 내리며 도마위에 올랐다.

얼마전 하이닉스 임시주총을 위해 개최한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이하 의결위)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선임 안건에 대한 이견 차가 상당했는데, 어느 한쪽으로 과반수가 모아지지 않아 결론을 내리지 못하다가 결국 '쉐도우 보팅'(shadow voting)을 하기로 했다. 이는 주주총회에서 결정된 찬반의 비율에 따라 의결권을 불통일 행사하는 것으로, 사실상 표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제도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그동안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쉐도우 보팅을 행사한 전례가 없다. 더구나 소액주주도 아닌 최대주주가 자신의 권리 행사를 포기한 것이라, 해석을 두고 논란이 불가피하다.

국민연금은 다른 국내 기관투자자들과는 달리 자체 의결권 행사지침에 따라 비교적 성실하게 의결권행사를 해왔다. 투자대상 회사에 대한 반대의결권 행사 비율이 비교적 높은 편이었고, 이에 대한 반대사유도 적시하고 있었다. 작년에는 최태원 회장의 SK 및 SK이노베이션 이사 선임의 건에 대해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모두 반대한 바 있다.

현재 최태원 회장은 횡령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새로 그룹에 편입되는 하이닉스 등 SK 계열사의 임원직을 맡을 경우 그로 인한 지배구조 리스크 및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은 클 수 밖에 없다.

정관변경 안에 대한 찬성도 문제였다. 개정안은 지배주주 및 대표이사의 권한을 크게 강화하는 개악된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하이닉스의 기존 정관에 따르면 이사의 보수는 이사회가 지급여부 및 금액을 정하도록 했지만, 개정된 안에서는 이를 삭제해 개별이사에 대한 보수의 지급여부 및 금액을 대표이사의 전결사항으로 조정했다.

이는 그동안 경영진의 급여 및 승진을 결정하던 인사위원회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으로, 공정한 보수의 결정이나 집행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고 사실상 지배주주 및 대표이사의 이사회 장악을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또 이사회 내 위원회로서 기존의 이사추천위원회를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로 변경했다. 이 경우 사외이사 후보추천 역할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사내이사 후보를 심사하는 역할은 사실상 폐지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국민연금의 이같은 입장에 결국 정부와 공단 추천 의결위원 2명이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재벌 봐주기가 노골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의결위에서 활동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작년 4월 미래기획위원회에서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및 지배구조 선진화' 방안 발표 이후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 방안을 두고 많은 격론이 오갔다. 재계는 물론이고 여야정치권 간에도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방안을 두고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었지만 그 간극은 좁혀지지 못했고, 이마저 작년 하반기 이후에는 논의 자체가 실종됐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지난 현재, 정부 내지 정치권에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과연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의문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국내 대부분 우량기업들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로서 그 위상에 걸맞게 보다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이번 일로 볼 때 과연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에 관심이나 있는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국민연금의 기관투자자로서의 역할은 비단 주주총회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 뿐만이 아니다. 사외이사후보 추천 등 주주제안 및 투자대상 회사에 대한 주주가치 훼손이 발생할 경우 주주대표소송 등에도 참여해 적극적으로 주주로서의 권리 행사를 해야 하지만, 그동안 의결권 행사 외에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의결권 행사에 대해서는 지침이 있지만 다른 주주권 행사에 있어서는 기본적인 지침조차 없는 실정이다. 이는 국민연금 이사장 및 그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의 명백한 직무유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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