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페루 나스카 식물원

서범석 기자

나스카 식물원. 시멘트 바닥에 새겨진 나스카 도형의 축소 그림이 보인다.
나스카 식물원. 시멘트 바닥에 새겨진 나스카 도형의 축소 그림이 보인다.

● 연재/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50>

 


칠레 북부와의 국경 지역에 있는 페루의 남부 도시인 탁나(Tacna)를 오후 7시30분에 야간 버스를 타고 출발하여 밤새 사막을 가로 질러서 오전 10시 50분에 나스카(Nasca)고원 사막 한가운데 있는 나스카 시에 도착하였다. 나스카에 오는 도중에 아침이 밝아오자 버스의 차창으로 높은 계곡 아래 사막을 통해 흐르는 큰 강이 보였다, 강 옆에는 원주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밭이 띄엄 띄엄 내려다 보인다. 이렇게 큰 강은 페루를 여행하면서 처음 보는 강이었다. 몇 시간 뒤에 나스카에 도착하자 마자 필자는 우선 하룻밤 머물 값싼 숙소를 찾았다. 버스 터미날 근처에는 이런 숙소가 제법 있으므로, 어렵지 않게 배낭 여행객이 묵는 값싸고 허름한 숙소(화장실과 사워실은 공동 사용)를 발견하여 무거운 배낭을 풀어 놓고 시내로 나왔다.


페루의 동부지역은 삼림이 넓게 전개되어 있고 지역의 절반은 아마존 평야로서 이 평야에는 큰 배가 항해할 수 있는 강들이 많다. 물론 이 강들은 아마존 강의 상류지대에 있는 강들로서 아마존 강이 시작하는 곳이다. 중부 지역은 산악 지대가 40% 이상 점유하고 있고 해발 6천m에 이르는 산들도 있다. 한편 태평양에 면해 있는 남부 지역은 사막이며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짧은 강들이 많고 바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해안 가까운 지역에는 안개가 자주 낀다. 앞서 나온 도시 나스카는 중부 고원의 사막지역에 있는 도시로서 평평한 지상(地上)에 거대한 도형(圖形)이 있는 곳으로서 유명하다. 이 기괴한 모양의 도형들은 1930년대말, 안데스 산맥의 나스카 고원 상공을 비행하던 조종사에 의해 발견된 뒤, 수많은 고고학자들이 지상에 엄청나게 크게 그려져 있는 수많은 도형, 즉 180 m 길이의 도마뱀, 80m 의 긴 꼬리를 갖고 있는 원숭이, 물고기, 거대한 독수리, 620m 나 되는 사람의 모습 등을 연구하였으나, 사막 위에 만들어진 이러한 도형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는지 아직까지 아무도 모르고 수수께끼의 하나로서 남아있다. 이들 도형들은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모양이 보이나 바로 앞에 가서 보면 무슨 형상인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주민 여러 명에게 이곳에 식물원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있다고 한다. 그들이 가리켜 준대로 시청을 지나서 도로가 끝날 때까지 걸어가니 도로 끝에 높은 담으로 둘러 싸인 건물이 보인다. 막상 가까이 가보니 식물원이라는 간판은 없고 대신 Museo Didactito Antonini이라는 글자가 써진 박물관이다.


고대(古代)에 중앙 안데스 지역에는 3대 문명, 즉 모치카(Mochica), 나스카, 티아와나코(Tiahwanaco) 문명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인 나스카 문명에 대한 물품(도기, 옷감, 미이라 등)이 전시되고 있는 이 박물관은 사립 박물관으로서 이태리의 한 연구기관이 연구와 자금을 지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박물관 이름 뒤에 Antonini라는 이태리식 이름이 적혀있는 것 같다. 박물관 직원에게 식물원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니 박물관 안에 있다고 한다.


큰 철문을 열고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열대식물들이 빽빽하게 서있는 아담한 정원이 방문객을 맞아준다. 일년 내내 비가 거의 안 오는 사막에서 여러 종류의 싱싱한 열대 식물들을 이렇게 만나게 된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무거운 배낭을 등에 메고 황량한 사막을 여행하면서 마음과 몸이 피곤한 상태로 식물원을 찾은 필자는 이들 신선한 수목과 화초를 보는 순간 식물 특유의 푸르름이 그 동안 쌓였던 여독을 풀어주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박물관 건물 바깥에는 이 지역에 생육하는 식물(나무, 화초)을 모아 놓았는데 수고(樹高)가 높은 Ficus(Moraceae Ficusspp.) 나무도 보인다. 콩 과(科)의 Albizia와 비슷하게 생긴 Carob 나무(Fabaceae Ceratonia siliqua)도 있다. Carob 나무는 원래 남부 스페인에 많이 생육하고 있는 상록수(常綠樹)로서 건조 지역에서도 잘 자라므로 스페인들이 페루를 식민 통치할 때 옮겨다 심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페루에서는 이 나무를 Huarango 또는 Algarrobo라고 부른다.


식물원을 돌아 보다가, 언뜻 보면 선인장 같은 데, 자세히 보면 선인장이 아니고 Candelabro라고 하는 식물을 이 식물원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된 것은 필자에게는 이번 여행이 가져다 준 보너스 가운데 하나이다. 식물원 중간에는 바닥에 도랑을 파놓고 고대 잉카 제국의 건설 방식으로 돌로 도랑벽을 만들어 놓은 것이 보인다. 알고 보니 고대 나스카 인들이 그 당시에 만들어 놓은 관개 시설을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그 도랑 위에는 시멘트 바닥을 사용하여 나스카 사막에 있는 수수께끼 도형들을 축적만 작게 하여 모두 그려 놓았다. 이 식물원은 가로, 세로 약 50m 밖에 안 되는 작은 규모이지만, 비가 오지 않는 사막 한 가운데 이런 식물원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다.
참고로 나스카 도형은 나스카 시내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져 있다.

 


권주혁. 

 

동원산업 상임고문·강원대 산림환경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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