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대통령 임기도 가을에 들어.. 4대 개혁 모종 유신벼로 자라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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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박' 대통령 부녀의 입추 

농경사회를 기준으로 하는 24절기는 현대사회에선 큰 의미가 없지만, 개중 '입추'는 더위가 곧 물러갈 거란 기대를 주는 반가운 이름이다.

물론 입추라고 당장 더위가 끝나는 건 아니다. 24절기가 중국 화북 지방 날씨에 맞춰져 있는 것이라 한국에선 보름 뒤인 '처서'가 와야 슬슬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한다.

입추는 벼농사 짓는 농업인에게 김매기를 끝내고 농한기에 들어서는 중요한 시기다. 이름처럼 한 숨 놓는 때는 아니다. 이때부터 병충해를 막기 위해 총력을 다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풍과 장마 후엔 벼멸구 피해가 심해지고, 고온이 지속되면 벼멸구가 번식해 활개를 친다. 이때 한 눈을 팔면 잘 지은 농사를 다 망칠 수 있다.

70년대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병충해에 대한 경각심이 매우 높았다. 통일벼 때문이다.

60년대는 농가 인구가 1470만 명이나 되었지만, 쌀밥을 배불리 먹지 못하는 가난한 시절이었다. 쌀이 부족해 막걸리 제조도 금지됐고, 쌀을 먹지 않는 무미일도 제정됐다. 혼식과 분식 등 밀가루 음식이 밥상을 점령한 건 이미 오래된 일이었다. 해방 이후 인구가 크게 늘어나며 쌀  부족 문제가 심각해진 거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쌀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대학교 생물학 교수진에 생산량을 높일 수 있는 벼 품종 개발을 지시했다. 이들이 개발한 '희농 1호'는 기존의 뱌보다 30% 이상이나 수확량이 높았지만 전형적인 자포니카 품종이라 한국 기후에 적응하지 못했다. 1967년 일반 농사에 보급되었으나 수확엔 실패했다.

1970년, 결국 미국 기업 포드와 카네기사로부터 풀자를 받고 필리핀 '국제 벼 농업 연구소'와 협력해 통일벼를 완성했다. 통일벼는 인디카와 자포니카 혼종으로 국내 기후에서 잘 자랐을 뿐만 아니라 생산량도 기존 품종에 비해 40%나 높았다.

 

통일벼 모종
통일벼 모종

정부는 1973년부터 쌀 계약 증산제도를 시행해, 목표를 달성한 마을엔 30만 원부터 1백만 원까지 시상금을 주고 증산왕이란 타이틀도 붙여줬다. 공무원들은 일일이 들판을 누비며 벼 알단위로 단위 면적당 소출량을 파악했다. 통일벼 행정도 강화해 공무원들이 통일벼를 심으라 강요하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다만 흔히 안남미라 부르는 인디카 품종과 맛이 비슷해 농민들은 통일벼를 싫어했다. 이미 희농 1호의 실패를 보고 정부 정책에 불신을 품어 통일벼 도임을 꺼리는 농가도 많았다. 그러자 정부와 농민 간 힘겨루기가 시작됐다.

'유신벼'란 말이 생길 정도로 국가의 간섭은 농가가 치를 떨 정도로 심각했다. 통일벼로 생산해도 맛이 없는 탓에 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자 농민은 정부의 지시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중앙정부의 압력을 받은 면서기들은 동네별로 돌아다니며 아끼바리나 밀양 15호 같은 일반 품종 볍씨를 훼손하는 등 만행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78년엔 통일벼 품종 중 하나인 '노풍'이 대규모 병충해 피해를 입으로 농가가 궤멸되는 상황에 처했다. 통일벼는 유달리 병충해에 약한 품종이었고, 한 번 병충해가 크게 발생하자 겉잡을 수 없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농민 대부분은 정부의 강요로 통일벼를 심었던 탓에 피해 규모가 상당했다.

이후 정국은 농민에 대한 정부의 피해보상대책 문제로 시끄러웠다. 농민은 실효성 있는 보상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했고, 일부 지방에선 공무원이 피해농가 지원용 식량을 빼돌렸다는 사실이 적발돼 정부에 대한 불신은 날로 높아졌다. 정부 실패에 야당이던 신민당이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뒀을 정도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모종, 유신벼가 되지 않으려면?

2015년, 우리 국민은 더 이상 배를 곪지는 않는다. 국민 대부분이 농사를 짓지도 않는다. 국민을 먹여 살리는 건 산업은 70년대에 비교하면 훨씬 다양화됐고 직업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삶은 여전히 팍팍하고 경제 주체간 이권 다툼도 치열하다.

박 대통령은 6일 노동개혁의 고질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이례적으로 대기업과 고임금∙정규직 근로자에게도 양보와 타협을 요구하기도 했다. 실업급여는 50%에서 60%로 늘리고 지급 기간도 30일 연장하겠다고 약속했다. 4대 개혁 사항을 모두 합치면 공약만 열 몇 가지가 된다.

대통령은 스스로가 절박한 심정이라 말했다. 경제주체와 국민 협력을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했으나, 노동 개혁을 몇 달째 표류시키고 있는 노동계와 재계가 대통령의 부탁에 자발적으로 양보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행정부가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현대 한국 경제 구도를 보면 박정희 대통령의 벼 품종 개발 사업은 매우 단순한 일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통일벼 사업은 결국엔 성공해 국민이 쌀 막걸리와 쌀밥을 배불리 먹도록 했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을 가르치고 교정하려 들수록 정권에 대한 신뢰는 하락하기만 했다. 국민과의 소통과 합의가 없었던 탓이다.

대통령 임기를 한 계절로 본다면, 박근혜 대통령 역시 가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그녀는 권위적 리더라는 악평을 들어왔고, 몇 번의 정책 실패로 큰 비난을 들어왔다. 앞으로도 패권적 태도를 고수한다면 그녀의 진심이 국민에게 전해지긴 더 힘들어질 거다. '결실'이라 볼 수 있는 4대 개혁을 성공하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유연할 필요가 있다.

민족 번영과 통일을 염원하며 개발한 '통일벼'도 한 번의 실패로 '유신벼'란 오명을 갖게 됐다. 4대 개혁이란 모종 역시 병충해를 거치면 언제 독재 개혁이란 악명을 들을지 모른다.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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