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 산업은 앞으로도 길게 살아남을 것
초단파를 사용하는 라디오 기술은 매체 신기술이 거듭 발명되며 수익성을 잃었다. 아무리 실감 나고 선명한 음질을 갖춘 라디오가 등장해도 흥미를 갖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디스플레이는 다르다. TV의 대중매체로서의 영향력이 이전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디스플레이 기술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같은 모바일 기기에서부터 하이엔드급 상영 기기까지 다방면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생생하고 선명한 화면은 1948년 최초의 영화가 상영된 이후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디스플레이 기술에 요구된 첫 번째 조건이었다. 삼성과 LG를 비롯한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은 모바일과 터치, 플렉시블 등으로 변화하는 시장의 요구에 선도적으로 대응하며 높은 기술력을 갖췄고,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모바일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최근까지 국내 디스플레이 생산 기업은 자가의 높은 기술력을 '명품'이미지로 포장한 마케팅에 주력했다. LG는 디스플레이와 세계적 명화를 결합한 고급스러운 광고로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렸으며, 모바일 기기에선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발 빠르게 신제품에 차용해 기술 선도 기업 이미지를 확보했다. 삼성 역시 자사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아몰레드 등 선명도 높은 고급 액정을 차용해 '업계 최고 사양'을 뒷받침했다. 이들 제품의 매력은 '합리적 매력'보단 '높은 성능과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있었다.
디스플레이 소비자, 기술력보단 합리적 가격에 매력 느낀다.
하지만 세계 경기가 침체에 들어서며 기술 중심 TV나 스마트폰보단 합리적 가격의 제품을 선호하는 양상이 두드러졌다. 지난 7월 샤오미가 발표한 스마트 TV 'mi TV'는 비록 삼성 전자의 디스플레이 패널을 사용하긴 했지만, 3840x2160이란 엄청난 해상도에 9.9mm의 얇은 두께,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디자인, 60프레임으로 재생되는 4k 포맷, 1.4Ghz 쿼드코어를 장착한 스마트 기능 등 뛰어난 성능과 함께 50만원 중반대 가격을 유지해 시장의 기대를 모았다. 삼성, LG의 동급 제품이 100만 원 대임을 고려하며 매우 합리적인 가격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스마트폰과 TV의 핵심 부품인 디스플레이 패널은 단가 인하 압박에 시달리게 됐으며, 삼성과 LG는 기술 차별화를 통한 수익 창출이 이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중국 패널 기업은 공격적 투자와 대규모 물량 공급을 무기 삼아 9인치 이상 대형 패널 제품군 시장 점유율을 18.8%까지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이 높아지며 이전만큼 한국 기업과의 기술격차가 크지도 않다.
LG경제연구원은 이 같은 기업 간 경쟁 방식을 '치킨 게임'에 비유했다. 치킨 게임은 두 명의 경쟁자가 차를 몰고 돌진하다 충돌 직전에 핸들을 먼저 꺾는 사람이 겁쟁이 (치킨) 취급을 받는 게임으로, 경쟁자 모두가 끝까지 버티면 결국 승자 없는 파국이 찾아온다. 최근 중국과 대만 기업이 LCD 생산 라인 확충을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중국은 글로벌 전체 시장의 25%에 달하는 내수시장을 확보해 먼저 핸들을 꺾을 모양새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국내 기업도 치킨 게임에 동참하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은 기술 개발과 판매가 절감 중 어느 쪽에 역량을 맞추는 것이 더 유리할까?
하버드 경영대 교수 크리스텐슨 교수는 파국적 소모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제시했다. 파괴적 혁신이란 현재 시장의 대표적 제품의 성능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을 도입해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가련 디스플레이에서 후발 기술인 LCD는 기존 강자인 CRT와 PDP보다 화질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공간 활용과 휴대성, 값싼 가격 등 종합적 경쟁력을 갖춰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기술이 되었다.
지나치게 성숙한 디스플레이 시장, 파괴적 혁신에 성공하려면?
하지만 이렇게 성장한 LCD 역시 새로운 시장 창출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기술이 성숙해버렸다. 더 이상 화질을 개선해봤자 시장이 '과도한 품질(Overspec)'으로 여겨 외면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소비자들은 당장 값비싼 프리미엄 제품을 사기보단 조금 더 기다렸다가 가격이 떨어진 후에 구매하는 경향을 보이고, 블랙프라이데이나 중국의 노동절 등 대규모 할인 행사를 통해 구매하는 비중이 늘어났다. 가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중고 거래에 대한 수요와 공급도 높아졌다. 디스플레이 업계는 지금도 HDR 기술 도입 등 기술력 향상을 도모하고 있지만, 파괴적 혁신이 없는 기술력 강화는 시장을 확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당장 가능성 있는 파괴적 혁신으론 OLED를 활용한 차세대 기술 개발을 생각할 수 있다. OLED는 기존 LCD와 달리 투명 디스플레이나 접거나 휘어지는 제품을 만들 수 있으며, 프린팅 공정 기법 도입으로 저원가 혁신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OLED의 궁극적 목표가 플렉시블 기판 위에 원하는 대로 인쇄하는 것이기 때문에 공정과 소재의 대규모 변화가 불가피하다. 기술 개발을 위한 투자 비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디스플레이가 향후 제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사물인터넷과 3D 프린팅, 클라우드 컴퓨팅에 기반을 두고 생산될 것이기에 제조업 신기술과 연관된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전처럼 디스플레이 기술에만 집중하다간 새로운 트렌드인 유연생산시스템(Flexible Manufacturing System)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유연 생산 시스템이란 위 기술을 기반으로 원재료와 설비, 모듈과 완제품에 이르기까지 실시간으로 연결돼 고객의 요구나 시장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는 공정을 말한다.
이런 변화가 당장 도래하진 않겠지만, 시장 환경 변화와 중국 기업의 거센 추격은 근본적 제조 혁신 없이 이겨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래 제조업 패러다임 변화에 대한 가능성에 주목하고 국내 기업의 입지를 설정해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다.




![[금융진단] 미 증시, 지정학 완화·빅테크 반등에 상승](https://images.jkn.co.kr/data/images/full/982892/image.jpg?w=288&h=168&l=50&t=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