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레스보스 섬, 여신이 떠난 뒤 난민이 찾아왔다... 쓰레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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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보스섬에 도착한 난민들
레스보스섬에 도착한 난민들
레스보스섬에 도착한 난민들

사랑의 여신이 머무르던 섬.. 난민이 찾는 곳이 되다

"저것 봐 난민이 왔어!" 석양이 지는 시각 그리스 레스보스 섬 호텔 수영장에서 일광욕을 즐기던 관광객들이 말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누던 한 젊은 커플은 호기심이 일었는지 라운지로 달려가 해안을 내려다보기도 했다.

마침내 뭍에 닿은 난민들은 흥분해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어떤 사람은 기쁨에 취해, 또 어떤 사람은 여전히 불안해하며 에게 해의 맑은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레스보스 원주민 부부는 "또 이민자가 많이 왔네.."라고 탐탁지 않다는 듯 중얼거리며 다시 호텔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스 동부 에게해의 섬 레스보스는 여신 아프로디테와 시인 사포에 관한 신화가 남아있는 곳으로 흔히 '여자들의 섬'으로 불린다. 인구는 약 8만 명으로 온난한 지중해성 기후 덕에 올리브 농업과 관광이 발달한 조용한 섬이었다. 하지만 중동과 아프리카의 전쟁 탓에 세상과 다소 떨어져있는 것 같던 이 섬까지 난민 문제에 휘말리게 됐다.

지난 6월 이후 매일 약 2,000명의 난민이 터키 서해안에서 레스보스 섬으로 이동하고 있다. 난민의 절반 이상은 시리아 내전을 피해 독일로 이동하는 사람이고, 나머지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소말리아, 에리트레아 출신 등으로 다양하다. 뱃삯은 1,000유로(약 132만 원)로 꽤나 부담되는 가격이지만, 살기 위해 밀입국업자들에게 재산 대부분을 가져다 바친다.

 

난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
난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더미

난민이 버리고 가는 쓰레기, 섬 주민들에겐 골칫거리

유럽 대륙과 마찬가지로 레스보스 섬 주민들도 난민 유입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 자원 봉사에 지원하는 사람도 있고, 음식과 간식을 난민에게 제공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민 유입이 관광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라며 언짢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택시 운전사 '니'는 본래 그리스 수도 아테네에서 살았지만 레스보스 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여유로운 분위기에 반해 5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 왔다. 관광시즌을 맞은 여름엔 바쁘게 일하고, 관광객이 떠나는 겨울엔 가족이 사는 아테네로 돌아간다. 그에 의하면 난민 유입으로 관광객이 감소하고 있다 한다. 관광업이 절대적인 수입인 레스보스 주민들은 바, 호텔, 레스토랑을 찾는 손님 수가 줄어들자 크게 당황하고 있다.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섬이기에 분위기가 폐쇄적인 탓도 있다. '니'는 '주민들은 겨울이 되면 난민들이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한다. 이 섬 사람들은 외지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설사 같은 그리스인이라도 말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주민들이 난민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침입자로 보고 있다. 한 요리사는 식량 배급을 앞두고 서로 밀고 당기며 다투는 시리아 인들을 보며,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그리스로 넘어온 건지 모르겠다. 그들이 이곳에서 무슨 짓을 할지 불안하다. 심지어 여자나 아이는 거의 없고 남자가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불만은 난민들이 남기고 가는 쓰레기다. 난민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미틸 레네'라는 항구엔 난민이 떠나며 남기고 간 수많은 폐기물이 쌓여 있다. 쓰고 버린 구명조끼와 병부터 비스킷 포장지, 종이 기저귀, 신발, 스웨터 등 환경을 오염시키는 물질이다. 이대로 두면 관광업에 차질이 있을게 분명했다 '니'는 "지금까지 이런 혼란은 없었다. 섬의 쓰레기 청소용 트럭이 모자랄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스웨덴에서 온 관광객 '소피'는 매년 레스보스 섬을 방문했지만 섬이 이처럼 더러운 적은 없었다고 말하며, "난민들이 불쌍하긴 하지만 그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양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왜 다른 사람처럼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걸까?"라고 덧붙였다.

난민 문제는 난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편 호텔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나디네 비류'는 "모두가 같은 의견을 가질 순 없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르완다와 콩고 국경이 맞닿는 지역에서 태어나 1994년 르완다 대학살을 경험했다. 그녀가 13세에 아버지가 돌아갔고 집안은 가난에 빠졌다. 고등학교에 갈 돈이 없어 친구 집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기도 했다. 그녀는 레스보스 섬 해변을 헤매는 난민을 보며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비류는 정기적으로 여성 난민에게 차량을 제공하고 어린이에겐 물과 간식을 주고 있다. 그녀는 "전쟁이 사람들을 내밀고 있다. 그들이 가진 재산이라곤 고작 등에 짊어질 수 있는 정도의 것밖에 없다. 왜 그들을 돕지 않는 건가."라며 난민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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