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이 27일 새벽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다.
신 회장은 1930년에 태어났으며 5남 5녀 중 셋째 아들이었다. 신 회장은 한국의 매운 맛으로 세계를 울린 '라면 거인'이었다.
그는 일본에서 성공한 고 신격호 회장을 도와 제과 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신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신 회장이 가지고 있던 브랜드 철학은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하며, 제품의 이름은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적인 맛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하곤 했다.
신 회장은 '짜파게티', '새우깡'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다. 특히 신 회장의 역작은 '신라면'이다. 전세계 100여개국에 수출 돼 한국 식품의 외교관으로 인정받고 있는 이 제품은,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이름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으로 돼 있었고,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 시장을 석권하는 국민 라면으로 등극했고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첨병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신 회장은 해외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신라면은 월마트 등 미국 주요유통 채널에서는 물론이고, 주요 정부시설에 라면 최초로 입점 돼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신 회장은 2018년 중국의 인민일보가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을 때 그리고 지난 해 미국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신라면 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했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고 전해진다.
그의 노력을 발판삼은 농심은 끊임없는 도전의 역사로 한국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그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신 회장은 3남 2녀를 두고 있으면 농심 신동원 부회장은 신 회장의 뒤를 이어 2세 경영을 시작했다.
신 회장의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며 발인은 오는 30일 오전 5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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