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중대재해 발생·형사처벌 시 공시 의무화
노동 안전과 투자자 보호 접점 확대
한국거래소가 상장사의 중대재해 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규정 개정 절차에 착수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금융권에 ‘중대재해 리스크’를 반영하겠다고 밝힌 이후 후속 조치다. 기업 공시 제도에 노동·안전 요소가 본격 포함되는 첫 사례로, 공시 거버넌스 강화의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 거래소, 상장사 중대재해 공시 의무화 착수
한국거래소는 3일 유가증권시장·코스닥·코넥스 시장 공시 규정 개정을 예고했다. 개정안은 상장사가 중대재해를 일으키거나 관련 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경우, 이를 투자자에게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형사처벌은 1심부터 최종심까지 모든 판결 단계에서 공시된다. 지주사 자회사나 지배회사의 국내 종속회사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도 공시 대상에 포함된다. 거래소 관계자는 “사회적 관심이 높은 만큼 기업이 재해 발생 사실과 대응 조치를 즉각 알리면 투자자 판단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이미 ‘기업지배구조 보고서’를 통해 안전·환경 사고 발생 여부를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지속가능성 공시 지침(CSRD)을 통해 안전·산재 정보를 공시 항목에 포함시켰다. 한국도 국제 흐름에 맞춰 안전 관련 공시 제도를 제도화하는 단계로 나아간 셈이다.
◆ 금융위 “투자자 판단 위한 정보 제공”
앞서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19일 간담회에서 “중대재해로 주가와 채권 수익률 변동성이 확대될 수 있다”며 기업이 거래소를 통해 수시 공시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점을 공식화한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당시 “투자자가 기업의 안전 리스크를 명확히 알 수 있어야 공정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며 “재해 발생 사실과 대응 여부를 공시 의무화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노동 안전 문제가 사회적 논란을 넘어 금융권 리스크 관리 요소로 편입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조치는 금융위의 금융부문 감독정책과 직접 연결돼 실행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형 금융기관은 대출 심사와 기업 분석 과정에서 중대재해 리스크를 반영하게 되어 기업의 안전관리 수준이 곧 자본 조달 여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 노동 안전·지배구조 투명성이 ESG로 확장
중대재해 공시 의무화는 ESG의 사회(S)와 지배구조(G)를 동시에 드러내는 제도다. 노동자 안전은 사회적 책임의 핵심 항목이며, 이를 공시 체계에 편입하면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도 높아진다.
유럽연합(EU)의 CSRD는 2024년부터 대기업을 대상으로 근로자 안전지표 공시를 의무화했고, 국제회계기준재단(IFRS)의 지속가능성 공시기준(IFRS S1·S2)도 산재·안전 관리 지표를 포함하고 있다. 한국이 이번 제도를 도입하면 글로벌 ESG 공시 기준과 보조를 맞추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전문가들은 “투자자가 기업의 안전 리스크를 평가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ESG 관점에서 필수”라며 “정보 공개를 통해 기업이 단기적 비용을 지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신뢰 구축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 기업, 내부 통제와 안전 데이터 관리 과제
거래소는 오는 10일까지 의견 수렴을 거쳐 금융당국과 협의 후 시행 시기를 확정할 예정이다. 기업들은 재무성과 외에도 노동 안전과 내부 통제 수준을 공시해야 하는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
회계업계는 중대재해 공시가 기존의 재무 공시와 달리 현장 안전 데이터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부담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내부통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비재무 리스크 관리 수준을 점검하겠다”고 밝혀, 공시 제도와의 연계가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 공시는 단순 보고가 아니라 기업의 안전 관리 체계를 평가하는 기준”이라며, “현장 데이터 수집, 보고 체계 강화, 이사회 보고 절차 정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 감독 강화 없으면 제도 실효성 한계
공시 제도가 실질적 투자자 보호로 이어지려면 감독 강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형식적 보고에 그칠 경우 제도의 실효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노동계는 “기업이 최소한의 보고로 의무를 충족하려 한다면 제도의 목적이 퇴색될 수 있다”며 실질적 이행을 강조하고 있다. 학계 역시 “재해 원인과 대응 과정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세부 규정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거래소 관계자는 “중대재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만큼, 정보가 제공되면 투자에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제도의 성패는 감독당국이 공시 내용을 얼마나 철저히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 요약:
한국거래소가 상장사의 중대재해 발생·형사처벌 사실을 공시 의무화하는 규정 개정을 추진한다. 이는 금융위 정책과 연계된 조치로, 노동 안전(S)과 지배구조(G)를 공시 체계에 반영하는 ESG 흐름과 맞닿아 있다. 해외 ESG 공시 기준과도 맥을 같이하며, 기업은 안전 데이터 관리와 내부통제 강화라는 과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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