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정책 톺아보기] 2035 온실가스 감축목표 53∼61%…산업계 현실 반영 관건

김동렬 기자

정책 의지 강조 속 산업계 부담 가중 우려

정부와 여당이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방안을 확정하면서 산업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감축 의지를 강화한 것은 국제사회 기후 공조를 위한 신호로 평가되지만, 현실적 이행 수단과 지원 체계가 뒤따르지 않으면 정책 실효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병기 원내대표 맞이하는 김민석 총리
▲ 김민석 국무총리(오른쪽 두번째)가 9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김병기 원내대표(왼쪽 첫번째)를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감축 목표 상향, 정책 의지와 산업 부담의 갈림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9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50∼60%’ 또는 ‘53∼60%’ 안보다 하한과 상한 모두 상향된 수준이다. 2050 탄소중립을 향한 중간 단계로서 국제기후변화협약(IPCC) 권고치를 일부 반영했지만, 산업계는 “현실적 달성이 어렵다”며 반발하고 있다.

당정은 강력한 감축 의지를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제조업 중심 산업 구조를 고려해 부문별 감축 부담 완화 방안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KGX 녹색전환전략’을 수립해 산업 전환을 지원하고 기존 산업과 지역사회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구상도 내놨다. 이러한 정책은 기후변화 대응과 산업 생태계 전환이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탄소 감축을 위한 기술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책 목표를 높인 것이 ‘의지 과잉’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한국경제연구원과 대한상의 등 주요 경제단체는 “탄소 감축 설비 투자 확대가 경기 침체기에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가 향후 보조금·세제 지원 등 실질적 완화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정책의 정당성이 오히려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 산업계 반발 확산…철강·車·시멘트 등 “고용 충격 불가피”

철강·자동차·시멘트 등 탄소 다배출 업종은 감축목표 상향 이후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수소환원제철 기술의 상용화 시점을 2037년 이후로 예상하고 있으며, 단기간 내 대규모 감축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자동차업계 역시 내연기관차 판매 비중이 여전히 높아, 2035년 무공해차 비중 30∼35% 목표 달성을 현실적으로 어렵게 보고 있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와 금속노련 등은 무공해차 확대 정책이 부품산업 구조조정과 고용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체 자동차 부품기업의 95%가 중소·중견기업으로, 미래차 매출 비중이 30% 미만인 업체가 80% 이상이라는 점에서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시멘트업계 역시 공정 특성상 화석연료 사용이 불가피해 탄소 감축 여지가 제한적이다. 석유화학업계는 탄소포집·활용(CCUS) 기술을 적용하더라도 감축률이 낮고, 설비 투자비용이 매출의 5~10%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산업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탄소중립 산업전환 대응전략’에 따르면, 산업부문 감축비용의 70% 이상이 철강·화학·시멘트 업종에 집중되어 있어 중소기업 지원체계 없이는 달성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결국 산업계의 주장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현실적 이행수단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목표 설정은 필요하지만, 업종별로 기술격차와 투자여건을 고려한 세분화된 감축 로드맵이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 EU는 지원 병행, 한국은 제도 개선 과제 남아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과 함께 산업 전환 보조금, 기술개발 펀드 등 다층적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유럽집행위원회(EC)는 2024년 기준 ‘그린딜 산업계행동계획’에 연간 700억 유로 이상을 투입하며, 저탄소 전환 기술 상용화를 지원한다. 이는 기업의 규제 순응을 유도하면서 동시에 경쟁력 약화를 방지하는 구조다.

독일과 프랑스는 수소산업 및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을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기후보호기금(Klima- und Transformationsfonds)’을 통해 2030년까지 총 1,770억 유로를 투입하기로 했으며, 프랑스 역시 2025년까지 녹색산업 보조금 규모를 GDP의 1% 수준으로 확대했다. 이처럼 감축 목표와 산업 지원을 병행하는 구조가 시장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반면 한국은 지원보다는 규제 중심의 정책 비중이 여전히 크다. 정부는 2025년 예산안에 ‘그린산업 펀드’ 신설을 검토하고 있으나, 예산 규모가 연간 3조 원 내외로 제한되어 산업계가 체감하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다. OECD 2024년 ‘기후중립산업전환 보고서’는 “한국의 산업정책은 목표와 실행 수단 간 괴리가 크며, ETS 제도의 탄력적 운영과 기술투자 인센티브 강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결국 EU가 산업계 지원을 통해 ‘정책 신뢰’를 구축하는 반면, 한국은 감축목표 중심의 선언적 접근에 머물러 있다. 감축을 이끌어내려면 제도 개선뿐 아니라 사회적 보상 구조가 함께 설계되어야 하며, 산업계의 자발적 전환을 유도할 ‘예측 가능한 지원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 실현력 확보 위한 제도 개편과 기술 투자가 핵심

정부는 NDC 실현을 위해 배출권거래제(ETS) 개선과 녹색산업 지원 확대를 추진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ETS 할당 구조를 재조정하고, 중소기업에 배출권 무상할당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 2025년 1월 ‘기후리스크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제조업의 연간 탄소 감축 투자비용은 8조 원 수준으로 추산돼 재정 여력의 한계가 크다.

기술 혁신은 실질적 감축의 핵심이다. 수소환원제철, 전기화학 환원, 탄소포집·활용(CCUS) 기술의 상용화가 필요하며, 정부의 연구개발(R&D) 투자 확대가 요구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24년 ‘산업 탈탄소 기술 로드맵’에서 “2030년대 중반 목표 달성을 위해 현재보다 20% 이상 R&D 투자가 확대돼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기후금융을 활용한 민간투자 활성화를 강조한다. 녹색채권·전환채권 등 지속가능금융시장을 확대해 기업이 탄소중립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기후금융 로드맵’을 공개할 예정이며, ESG 공시 의무화 확대도 병행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에너지 구조 전환도 필수 과제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5년 32~33%로 확대하고, 원전 비중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정부 계획은 기술·인프라 병목을 해소해야 가능하다. 전력시장 개편, 송전망 확충, 에너지저장시스템(ESS) 투자 확대 등이 병행돼야 지속가능한 감축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

◆ 지속가능한 감축 로드맵,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돼야

2035년 NDC 상향은 국제사회에 기후 리더십을 보여주는 정책 신호지만, 실질적 이행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산업 경쟁력 약화와 고용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감축 목표가 ‘상향된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산업계·노동계·정부 간 사회적 합의와 실행 가능한 이행계획이 필요하다.

정부는 탄소중립위원회를 중심으로 부문별 감축량과 지원 규모를 구체화할 예정이지만, 중소기업·지역산업의 참여와 인력 재교육까지 포함한 종합 로드맵이 병행돼야 한다. 기후정책이 국민경제 전반의 구조 전환으로 이어지려면 정책의 연속성과 신뢰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국 NDC는 목표 수치보다 “이행력”이 성패를 가른다. 감축 의지와 현실 간 간극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합의, 기술혁신, 제도 개편이 동시에 작동할 때 비로소 지속가능한 탄소중립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번 결정은 새로운 정책 시험대가 되고 있다.

☑️ 요약:
 정부의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53∼61%) 상향은 국제사회에 기후 대응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지만, 산업계는 기술·비용 부담으로 실현 가능성에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EU처럼 감축과 지원을 병행하는 구조적 접근이 요구되며, 한국은 제도 개선과 기술투자·사회적 합의의 3박자를 갖춰야 정책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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