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건설사와 중소 조선사에 대한 1차 옥석 가리기 시한을 설 이전으로 정함에 따라 채권금융기관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은행들은 시간이 촉박한데다 부실기업을 골라내는 평가 기준이 일부 모호하고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어 구조조정 작업에 진통이 예상된다.
게다가 올 하반기 이후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가 퍼지면서 은행들이 선별의 적정성과 사후 책임 논란에 휩싸일 수 있는 기업 퇴출에 적극적으로 총대를 메고 나설지도 의문이다.
전문가들은 경제 체질을 강화하고 부실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 111개 건설.조선사 설 전 생사 판가름
금융감독원이 은행들에 92개 건설사와 19개 중소 조선사들 중에서 늦어도 23일까지 구조조정 대상을 결정하도록 한 것은 경기침체의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부실을 털어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 부실이 커지면서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나빠지고 금융과 실물경제의 불안이 가중된다는 것이다. 이를 우려해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금융 불안과 실물 위축의 악순환 고리를 조기에 끊기 위해서는 신속한 구조조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건설.조선사의 신용위험평가 기준을 만든 작업반(TF)이 제시한 평가 대상은 금융권의 신용공여액 500억 원 이상이거나 주채권은행의 신용공여액 50억 원 이상인 300여 개 건설사와 50여 개 조선사다.
이중 건설사는 시공능력 상위 기업이, 조선사는 작년에 생겨 당장 생사를 결정짓기 어려운 신생 조선사를 제외한 중소형사가 1차 심사 대상으로 선정됐다.
부동산경기 부진의 장기화로 건설업계 전체가 어려운 만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중대형 건설사가 구조조정 무대에 먼저 오른 것이다. 조선업계의 경우 상위사는 아직 별문제가 없지만 중소형사는 심각한 경영.자금난을 겪고 있다.
이들 회사에 먼저 메스를 들이대 부실 확산을 막고 건실하거나 회생 가능한 기업에 자금이 제대로 돌도록 해야 경기 회복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 20여개 업체 워크아웃.퇴출 가능성
이에 따라 상당수 건설.조선사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거나 퇴출당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증권업계는 건설사의 경우 20개 내외의 업체들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고 최종 퇴출 대상은 2~3개 정도로 추정했다.
조선사의 경우는 비상장사가 대다수여서 심사 자체도 쉽지 않지만 상당수가 구조조정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우리투자증권은 재무항목만 평가했을 때 100대 건설사 중에서 36%가 C나 D등급을 받을 것으로 나타났으나 반영비율이 60%인 비재무항목평가를 추가하면 구조조정 대상 업체수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이왕상 우리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재무항목 평가에서 시공능력 순위 10위 안팎의 업체들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며 "다만 주관적인 판단이 작용하는 비재무항목 평가에서 채권단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일부 대기업 계열 중견 건설사들은 구조조정 대상에서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시장에서도 신속한 구조조정을 바라고 있다"며 "1월 중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등 구조조정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 평가기준 논란..구조조정 순탄할까
은행들은 금감원의 지침에 따라 구조조정 기업의 선별에 착수했지만 이달 안에 111개에 이르는 중소.조선사에 대한 평가를 모두 마무리 짓기에는 물리적으로 힘들지 않으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무제표와 경영현황, 영업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채권단 내의 이견을 조율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기업 생사를 성급히 결정했다가 경기가 회복하면 "그때 자금 지원만 해줬으면 살 수 있었다"는 퇴출 기업의 반발과 책임 논란에도 휩싸일 수 있는 점도 은행들은 우려하고 있다.
기업 평가기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은행들은 상장사의 경우 2008 회계연도 3분기 말 기준 사업보고서를 갖고 재무 상황을 평가하지만 비상장사는 내부 임시 결산자료와 매달 자금 입출내역 등을 활용한다.
대다수 조선사는 비상장사이고 건설사의 상당수도 상장돼 있지 않아 외부감사를 받지 않은 자료를 보고 생사를 판가름하는 점수를 매겨야 하기 때문에 객관성과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경영진의 평판과 소유.지배구조 등 경영 현황을 판단하는 데는 주채권은행의 주관적 판단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주채권은행이 살릴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선별해도 다른 채권금융기관의 협조를 얻어야 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C&중공업에 대한 자금 지원과 대우일렉트로닉스의 매각이 채권단 내의 이견으로 진통을 거듭하는 데서 보듯이 쉽지 않은 작업이다.
금감원은 이런 채권단의 이견을 조정하기 위해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를 확대하고 위원장을 새로 선임하기로 했지만 아직 소식이 없다.
삼성경제연구소 전효찬 수석연구원은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부실기업이 계속 남아있게 되면서 건실한 기업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신속한 옥석 가리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 연구기관 관계자는 "구조조정은 은행 판단에 맡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은행 판단에 오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기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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