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세계 車산업 대전환”‥소비자 중심 시대 열리나

완성차 업체 성장전략, 경쟁방식 근본적 변화 전망

세계 車산업 대전환”‥소비자 중심 시대 열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자동차 업계가 공급자 중심의 과점적 시장구조에서 소비자 중심의 수평적 시스템으로, 근본부터 갈아엎는 대전환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당장 미국 시장 에 거는 기대치가 높은 현대·기아차 등 국내 업체들도 이 같은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26일 내놓은 ‘미국자동차산업의 대전환-푸시(Push)에서 풀(Pull) 시스템으로’라는 보고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자동차업계에서는 푸시에서 풀 시스템으로 경영체제 ‘대전환(Great Transformation)’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며 “이러한 전환을 위한 시도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금융위기 이후 빅3 CEO들은 푸시 시스템(공급자 중심 생산·판매) 대신 소비자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차를 수요에 맞게 만들어 파는 풀 시스템(사용자 중심 생산·판매) 전환에 강한 의지를 표시하고 있다. 당연히 고객 관리의 중요성도 커질 전망이다.

프리츠 핸더슨 GM 전 CEO는 지난해 10월 “완성차업체들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유산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과잉생산을 해왔다”며 수요에 기반을 둔 풀 시스템으로 전환하겠다고 언급했다. 현 CEO인 에드워드 휘테커도 “자동차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으며 과잉생산, 과다 인센티브를 지양하겠다”고 밝혔다.

앨런 멀랠리 포드 CEO도 부임 때부터 시장의 실질적인 수요에 맞춰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포드는 2005~2009년까지 수요 감소와 비슷한 수준으로 북미 생산을 줄였다.

피아트 출신인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크라이슬러 CEO도 지난해 6월 언론과의 미팅에서 “수요 변화에 신속히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단계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며 “적정 재고 일수도 45일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며 푸시 전략에 의한 가격 인하 관행을 버리겠다고 공표했다.

◇빅3 CEO들 풀 시스템 전환 강한 의지

보고서는 이 같은 변화의 조짐 이유로 독과점 붕괴에 따른 위기대처능력 저하를 꼽았다. 실제로 80여 년간 전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GM과 크라이슬러, 포드 등 ‘빅3’가 몰락하게 된 근본 원인이 일방적 생산·판매로 대표되는 푸시 시스템이라는 반성이 대두됐다.

또 석유파동 위기 이후 시장 성장이 둔화되고 일본 업체들이 진출하면서 과점체제가 약해져 푸시 시스템의 선순환 구조가 유지될 수 없는 환경이 도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시장이 확대됐지만, 빅3는 적자가 계속되어 한계를 드러냈고, 금융위기로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면서 전환을 고려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금융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생산능력과 유산비용(의료보험과 연금비용) 등 고정비가 크게 줄어들면서 과거처럼 고정비 보전을 목적으로 푸시 시스템을 무리하게 유지할 필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자동차 시장 침체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시행된 폐차 인센티브제도가 재고를 대폭 줄여줘 ‘대전환’이 가능한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경쟁 과열로 인한 과도한 인센티브로 허덕이다 재고비용이 줄고 수익성이 개선되면서 ‘대전환’ 필요성을 체감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제 변혁적인 ‘대전환’이 이뤄질 경우 미국 시장구조 변화 및 완성차업체들의 성장전략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 주도 시장으로 車산업 전환 가능성

보고서는 “장기적으로는 주문생산 및 판매, 가격에서 가치 중심 경쟁으로의 전환 등 명실상부한 소비자 주도시장으로 구조 전환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단언했다. 바꿔 말하면 더 이상 물량을 쏟아 붓는 방식의 생산 판매 구조로는 미래 시장 확보를 단언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미국 시장 영향을 많이 받는 국내 업체 역시 이 같은 생산·판매방식 변화를 감지하고 사전 작업을 벌여야 할 상황인 것이다.

결국 완성차 업체들은 수익성 중심의 경영과 생산 유연성을 제고해 시장변동 영향을 최소화해 ‘지속가능한’ 성장방식을 추구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이를 위해 ‘생산유연성 제고→수요 대응 생산→재고 감소→인센티브 축소→중고차 및 신차가격 유지→소비자 신뢰 및 브랜드 이미지 제고→안정적인 판매증대→생산 확대’의 선순환 성장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여기에 딜러들도 수익성과 고객과의 장기적인 관계를 중시하는 새로운 리테일 모델을 구축할 것으로 예상했다.

◇오랜 관행과 몸에 익은 관성 극복이 과제

하지만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천황’격의 이 같은 변화는 기존 틀을 유지하려는 관성과 맞닥뜨리게 되면 반발을 부르게 된다. 당장 ‘대전환’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고, 경영문화의 변화도 필요해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푸시 시스템은 조직에 DNA화 되어 있어 이를 극복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이미 지난 80년대 말~90년대 초 토요타의 린(lean) 생산방식(작업 공정 혁신을 통해 비용은 줄이고 생산성은 높이는 것) 도입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 토요타 리콜 사태로 촉발된 인센티브 판촉에 GM과 포드가 가세한 것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또 하나 문제는 풀 시스템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완성차업체-딜러-소비자’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는 점이다. 오랜 관행을 바꾸는 것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변화에 대한 알레르기도 있지만, 긍정적 전망을 점치는 시각도 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미 생산능력 축소, 유산비용 및 고정비 감소, 경영진 교체 등으로 시스템 전환을 위한 밑 작업은 끝난 셈이기 때문이다.

◇완성차 업계, 상황 예의주시‥대처방안 마련 필요

이미 구조조정으로 북미지역 생산능력은 2005년 1891만대에서 올해 1591대로 줄어든다. GM이 공장 20곳 중 7곳을, 크라이슬러가 9곳 중 3곳을 폐쇄해 설비관련 고정비를 대폭 줄였다. 포드는 북미 생산능력을 40% 이상 감축, 지난해 이후 재고수준이 그 이전보다 낮게 유지되고 있다. 시작단계지만 생산 유연성 제고 노력도 나타나고 있다.

고정비 감소 효과도 있다. 이미 빅3는 브랜드 폐쇄·감원·복지비 축소 등으로 고정비 지출을 줄였다. GM의 경우 2003년 57억 달러(차량 한 대당 1200달러)였던 막대한 유산비용이 올해 8억 달러(대당 400달러), 2013년 100달러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재고와 인센티브 감소도 주요 효과다. 푸시 시스템 하에서는 물건을 쌓아놓고 손님을 기다렸지만, 풀 시스템으로 전환하게 되면 시장 수요에 맞춰 다품종 소량생산을 하기 때문에 여기에 드는 비용이 줄어든다.

실제로 워즈오토 조사에 따르면 2008년 12월~2009년 1월 미국 시장 평균 재고일수는 업체들이 푸시 시스템을 지속함에 따라 102일까지 상승했었다. 그러다 업체들의 개선 노력과 정부의 신차구입 지원정책 덕에 3분기에는 44일로 줄었다.

이 같은 과잉 재고 해소는 인센티브가 대폭 축소되는 연쇄 반응을 불러왔다. 최근에는 여유가 생긴 업체들이 예전의 인센티브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자사 차량의 소비자를 특정하고 그에 맞는 마케팅을 펴는 타깃 마케팅도 강화됐다. 기존의 일방적, 불특정 다수를 향하던 스팸에 가까운 광고 대신 확인된 고객을 중심으로 전환해 광고 효과를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국내에서도 최근 들어 확산 추세다.

80~90년대 도입을 실패한 린 시스템도 다시 등장할 것으로 점쳐졌다. 린 딜러점이 그것이다. 보고서는 “재고수준이 대폭 줄면 이에 맞물려 비용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소형매장을 선호할 것”이라며 “낭비 요소를 줄인 린(lean) 딜러점이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대전환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아직까지 불확실 하다. 확정적인 것도 아니지만, 결국 그것을 도입하고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미 이 같은 논의가 ‘자동차 왕국’ 미국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김정경 자동차산업연구소 주임연구원은 “‘대전환’은 미국 자동차시장 구조변화와 완성차 업체들의 성장전략이나 경쟁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소비자들의 구매방식과 업체 간 경쟁방식 변화도 불기피할 것”이라며 “소비자 주도 시장의 성숙이 가속화할 것인 만큼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과 영향을 면밀하게 파악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선진자동차 시장인 미국 시장이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며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타 완성차 메이커들도 이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며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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