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동국제강, 3대에 걸친 후판 '뚝심경영'

당진 기자
국내 최초로 후판 생산에 돌입한 동국제강이 3세대에 걸친 '뚝심경영'을 통해 연산 440만톤의 후판 생산 체제를 구축했다.

동국제강은 12일 충남 당진에서 연산 150만톤 규모 후판 공장 준공식을 갖고 TMCP강 등 고부가 후판 제품의 본격 상업생산에 돌입했다.

이로써 동국제강은 지난 1971년 국내 최초로 부산에서 후판 생산을 시작한 이후 포항 1, 2 후판공장에 이어 당진에도 최첨단 후판 생산 기지를 가동하게 돼 연간 440만톤의 후판 생산 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는 1년에 8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315척을 건조할 수 있는 후판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다.

◇ 1세대, 국내 최초 후판 생산

지난 1971년 2월 동국제강은 당시 주력 사업장이었던 부산제강소에서 연산 15만톤의 후판공장을 준공하고 국내 최초로 후판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척박했던 한국 경제 여건 특히 중화학공업이 전무해 후판 수요를 장담하지 못했던 때였다. 그러나 동국제강 창업자 장경호 회장과 당시 일선에서 경영을 총괄하고 있던 장상태 사장의 결단이 작용했다.

향후 중화학공업의 육성이 필요하고 이에 따른 후판의 필요성이 부각될 것을 예상한 것이다. 당시 동국제강은 최초의 민간 철강사로서 전기로 제강 사업을 기반으로 고로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동국제강에 의해 국내 최초로 생산되기 시작한 후판 제품은 1972년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의 후판 사업 진출로 이어졌고 동국제강은 포스코와 함께 철강 산업의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2세대, 중화학공업 발전 초석 세워

이후 1980년대 말 동국제강은 부산의 도시 발달에 따라 불가피하게 제강소를 옮겨야 했고, 당시 장상태 회장은 조선산업 성장을 예상하고 포항에 대규모 후판 공장 건설을 결정했다.

포항으로의 공장 이전은 당시 비용으로 최소 1조원 이상이 소요돼 내부 반대가 심했다. 또 포항 이전 후 수요가 이러한 비용부담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느냐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상태 회장은 "아내의 반지를 팔아서라도 투자하겠다"며 포항 이전 의지를 관철시켰고 1991년 포항의 1후판 공장 건설에 성공했다. 이후 1998년에는 2후판 공장을 준공했다.

동국제강 포항 1, 2 후판 공장은 총 250만톤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는 공장이다.

실제 지난 2000년 이후 한국 조선산업은 급성장했고, 동국제강은 후판 부문을 바탕으로 1994년 매출 9000억 원 수준에서 2008년 5조6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 3세대, 글로벌 성장의 서막

당진 후판 공장의 건설은 장세주 현 동국제강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장세주 회장은 2006년 "앞으로 시장은 초대형 선박과 건축물, 해양구조물, 플랜트 등에서 창출될 것인데, 현재에 머물면 기존 업체들과 가격경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며 당진 공장 투자를 결심했다.

또 그는 "당진 후판 공장을 통해 고급, 고부가가치 시장으로 이동하는 질적 성장 전략을 본격 실행하겠다"며 "최고의 명품 제품을 만들어낸다는 각오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동국제강은 당진 후판 공장 가동으로 국내 최초로 후판 생산을 시작한 이후 포항 공장을 포함해 연간 440만톤의 후판 생산 체제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장세주 회장은 12일 당진 공장 준공식에서 동국제강의 당진 시대 개막을 계기로 브라질 고로 제철소 건설 성공 의지를 밝히며 글로벌 후판 일관생산 체제 구축이라는 도전 의지를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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