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김영선의 22세기 건강상식]병의 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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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만든 ‘벤허’라는 영화는 그 해 오스카상 11개 부문을 휩쓴 걸작이다. 어릴 적 보았던 영화이지만, 주인공이 어머니와 누이가 나병(한센병Hansen’s disease)에 걸려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을 보고 너무 놀라서 가슴 아파하던 장면이 기억난다. 벤허 이외의 다른 많은 영화 속에서도 나병은 천벌이나 고난을 상징하는데 사용되어 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병이 심한 경우에는 얼굴과 손발의 말초신경에 이상이 생겨 피부의 감각이 둔화되고 땀도 나지 않고 털이 빠지고 진물이 나며 근육도 위축이 된다. 결국 얼굴은 눈썹이 빠지고 표정이 변해 사자(死者)처럼 변하고 손가락이나 발가락은 썩어 떨어져 나가게 된다. 또한 눈에도 합병증이 발생되어 실명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얼굴과 손발이 모양이 심하게 변형되기 때문에, 아주 오래 전부터 나병은 유전병 또는 저주나 신의 형벌에 의해서 발생된다고 생각되어 왔고 나병 환자들은 ‘문둥이’라고 불리며 많은 학대와 차별을 받아왔다.

이러한 나병에 대한 일반인들의 왜곡된 시선은 결국 일제시대인 1916년에 나병환자들을 격리 수용하기 위한 소록도자혜의원(현 국립소록도병원)까지 만들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오해를 받아왔던 나병은 1873년 노르웨이 의사 한센(Hansen)이 나병의 원인인 나균(癩菌)을 발견함으로써 전염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후론 한센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나병을 한센병이라고 부른다.

한센병은 나균이 호흡기나 피부를 통해 감염된 후 3-5년 이상의 오랜 잠복기를 거친 후 발병되는 만성전염병이다. 그러나 나균에 접촉이 되었다고 해도 99%의 사람들은 나균에 대하여 면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센병에 걸리지 않는다. 또한 나균은 전염성이 낮기 때문에 치료받지 않는 심한 한센병 환자와 긴밀하게 오랫동안 접촉을 하지 않는다면 전염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과거에는 한센병을 불치의 병으로 여기었으나 한센병은 조기에 치료하면 합병증이 없이 완치되기 때문에 더 이상 한센병은 무서워할 병이 아니다. 그러나 아직도 한센병으로 차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들 조차 오래된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과 편견을 바꾸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최근 신문에서 흥미 있는 기사를 보았다. 그 제목은 “한센병에 걸린 남자들의 기대수명이 일반 남자들 보다 7년이나 높다”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소박한 생활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오래 살아온 그들의 생활 습관과 오랜 기간 복용한 한센병 치료제인 DDS(Diaminodiphenyl Sulphone)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DDS는 몸에 유해한 활성 산소 발생을 억제시켜 수명 연장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되고 있다. 문둥병이라고 불려 왔던 한센병의 고단한 역사를 생각해 볼 때 누구나 천형이라고 여기어 왔던 한센병을 않은 사람들이 일반인 보다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라 생각된다. 

병은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요구한다. 당뇨병은 음식물 조절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몸무게를 정상으로 유지하는 것이 권고되고 만성 신부전은 칼륨과 염분과 수분 섭취를 조절해야 한다. 암으로 인해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경우는 남아있는 생을 어떻게 의미 있게 살까를 고민하게 된다. 대부분은 이러한 경우 절망하고 두려움과 고통 속에서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러한 병이 계기가 되어 안 좋은 식생활 습관을 버리고 식생활 관리를 잘 하여 병에 걸린 이후 오히려 병이 걸리기 전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지내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또 불치의 병으로 수개월의 밖에 허락되지 않는 기간 동안 가족과 더욱 친밀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다. 그럼 과연 이들의 삶에 있어 병은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교통사고로 얼굴 전체와 몸에 심한 화상을 입고 수많은 수술을 받았던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의 저자 이지선 양이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떠오른다. “고난 자체가 가장 큰 축복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평생 가질 수 없었던 보물들이다.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지, 절망이 얼마만큼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기쁨과 감사는 얼마나 작은 것에서부터 비롯되는지..."

병은 우리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며 우리를 절망하게 만들며 생활에 많은 불편을 주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병은 재앙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병은 우리를 뒤돌아 보게 하고 그 전까지 보고도 알지 못했던 것들을 다시 보게 해 화해와 감사와 기쁨의 새로운 생활로 이끌기도 한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병은 축복이 아닐까?

글ㅣ김영선 원장(서울 속편한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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