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에버랜드 CB 패소… 삼성, 경영권 불법승계 '도덕성 타격'
대구고법, "형사 무죄지만 민사상 배임… 이건희 배상책임 있다" 판결
형사 재판부는 에버랜드의 기존 주주가 스스로 CB를 인수하지 않았다고 본 반면, 민사 재판부는 이 회장 또는 비서실 지시로 제일모직 등의 주주가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과 이 회장은 경영권 불법승계와 관련해 도덕성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이 회장은 에버랜드 CB를 적정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으로 발행, 이재용씨 등 자녀가 최대지분을 확보하도록 해 회사에 970억여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기소됐지만 지난 2009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에버랜드 CB 발행은 주주배정 방식이 분명하고 기존 주주가 스스로 CB의 인수청약을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CB 저가 발행으로 에버랜드가 손해를 입은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구고법 제3민사부(홍승면 부장판사)는 22일 정하성 고려대 교수 등 제일모직 소액주주 3명이 이 회장 등을 상대로 '제일모직의 에버랜드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도록 해 제일모직에 손해를 끼쳤다'며 낸 항소심에서 "피고는 제일모직에 130억여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 이건희 등이 직접 또는 비서실을 통해 제일모직에 전환사채 인수를 포기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에버랜드 CB는 피고 이건희의 장남 등에게 조세를 회피하면서 에버랜드의 지배권을 넘겨주기 위해 이건희 등의 주도로 이뤄졌고,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제일모직에 CB 인수를 포기하도록 한 것은 업무상 배임에 해당돼 배상책임이 있다"고 피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어 "상법 399조에 따라 이사의 책임을 묻는 경우에는 구체적 사정을 참작해 감액할 수 있지만 피고 이건희의 경우에는 감액할 사정이 없어 감액하지 않고, 불이익 변경의 원칙에 따라 피고들에게 불리하게 판결을 변경할 수 없어 1심 선고 금액인 130억원의 배상을 명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전환사채 발행 전 에버랜드 주식가치액이 1주당 22만3659원이었음에도 전환사채의 발행가액이 7700원으로 실질가치가 크게 낮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제일모직 등 법인주주들이 CB 인수를 포기한 상태에서 이 회장 자녀들이 이를 인수, 경영권을 넘겨받은 것으로 봤다.
대구고법 이상오 기획법관은 이번 판결에 대해 "이번 판결은 대기업 회장 및 그 비서실 등의 주도로 기업지배권을 2세에게 이전하는 과정에서 기존 주주회사에 손해를 끼친 회사경영진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무죄선고는) 주주배정방식에 의한 전환사채 발행의 경우 에버랜드에 대해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민사상 배상책임은 각 주주법인이 실권을 할 때 그 임원들에 대해 주주법인에 대한 배임이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이번 민사 판결은 종전에 확정된 판결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모순되거나 판단을 달리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한편,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관련 형사 사건 기록은 증거기록만 1만6000여 쪽에 이르지만 형사 사건을 담당했던 대법원과 서울고법, 서울중앙지검 등이 이 회장과 관련한 형사재판 기록의 송부와 열람을 잇따라 거부하는 바람에 소송을 제기한지 4년10개월만인 지난해 2월에서야 1심 선고가 이뤄졌었고 사건 기록 가운데 극히 일부(46쪽)을 민사 재판부에 송부했으나, 이는 이건희 회장 측이 "공개해도 괜찮다"고 의견서에서 밝힌 범위 안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이건희 회장 눈치를 보며 진행하는 재판'이라는 비난이 일기도 했었다.
* 전환사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붙은 사채로, 회사가 채권을 발행하고 일정기간이 지나 주가가 상승하면 채권을 주식으로 바꿔 수익을 실현하고 주가가 상승하지 않았거나 하락하면 일정 수익률을 약속받은 채권으로 만기에 원리금을 상환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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