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10대 재벌사 새 사외이사 38%가 장관·검찰총장·의원 등 권력출신

이호영 기자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10대 재벌 그룹 상장계열사가 지난 1년간 새로 선임한 사외이사의 38%가 차관, 검찰, 기획재정부, 국세청, 공정위 등 소위 권력기관 출신인 것으로 나타났다.

권력기관에서 고위직을 지냈던 사람들이 10대 재벌사의 사외이사로 대거 자리를 옮긴 것.

나머지 절반은 대부분 대학교수로 채워져 사외이사를 거수기나 로비용으로 이용하려는 행태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물론 이들이 기업 경영에 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갖췄다면 기업 경영에 대한 감시와 견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재벌들의 `바람막이용' 역할을 하거나 `거수기' 기능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10일 재벌닷컴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0대 그룹 소속 93개 상장계열사의 사외이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올해 6월말 현재 10대 그룹의 사외이사는 모두 330명(중복 포함)으로 지난해 같은 시점(337명)보다 7명 감소했다.

하지만 검찰 출신 사외이사는 22명에서 27명으로 5명 늘었고, 공정거래위 출신은 8명에서 10명으로, 행정공무원 출신은 18명에서 20명으로 각각 증가했다. 1명이었던 관세청 출신은 2명이 됐다.

반면 장관급은 2명이, 금감원 출신과 감사원 출신은 각각 3명과 1명이 줄었다.

국회의원 출신 사외이사와 국세청, 경찰, 판사 출신 등은 숫자에 변동이 없었다.

10대 그룹의 사외이사 전체에서 장·차관 등 고위관료와 국회의원, 판검사, 금감원, 공정위 등 권력기관 출신 인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36.7%(121명)로 나타났다.

또 두 개 이상 회사에서 사외이사를 겸직한 인물은 총 9명으로 작년(8명)보다 1명 늘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직군인 `대학교수'는 작년보다 4명 많은 131명(39.6%)으로 집계됐다.

변호사(13명)와 사회단체(0명), 언론인(5명), 외교관(0명) 출신 사외이사는 작년보다 1∼4명씩 감소했다.

특히 경영인 출신은 48명으로 작년보다 2명이, 금융인 출신은 18명으로 5명이 각각 줄었다.

10대 재벌사에는 권력출신 인사들이 수두룩하다.

장관 출신으로는 이건춘 전 건설부 장관이 GS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으며 이환균 전 건설교통부장관(SK C&C), 김대환 전 노동부장관(LG),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장관(대한항공), 김종민 전 문화부장관(한화증권)도 재벌기업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박봉흠 전 기획예산처장관은 삼성생명과 SK가스 사외이사로 동시에 이름을 올리는 등 2개 기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하는 사례도 있었다.

법제처장을 역임한 남기명(LG화학), 한영석(SK C&C) 전 처장도 사외이사로 일하고 있다.

국회의원 출신 사외이사로는 윤건영(두산중공업), 정의용(한화증권), 이만우(GS홈쇼핑), 김영주(SK이노베이션) 전 의원이 있다.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현정택, 이윤재 전 수석은 각각 대한항공과 LG의 사외이사 명단에 포함됐다.

이재훈 전 지식경제부 2차관(두산인프라코어), 권태신 전 재정경제부 차관(SK케미칼), 김상희 전 법무부 차관(LG전자) 등 차관 출신 사외이사는 10명이었다.

법조계 고위층 출신 인사들도 대거 재벌기업 사외이사로 포진했다.

검찰총장 출신으로는 정구영 전 총장이 두산엔진, 이종남 전 총장이 삼성생명, 송광수 전 총장은 GS리테일 사외이사로 각각 일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장 출신인 이태운(현대모비스), 오세빈(현대자동차) 전 원장과 서울중앙지법원장 출신 변동걸(삼성정밀화학) 전 원장 등도 법조계 고위직을 지낸 뒤 사외이사가 됐다.

고검·지검장을 역임한 문효남 전 부산고검장(삼성화재), 김진환 전 서울지검장(GS), 신종대 전 대구지검장(롯데칠성), 박상옥 전 서울북부지검장(현대건설), 이훈규 전 인천지검장(SK이노베이션) 등 5명도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이밖에 각 지방국세청장 출신이 10명이나 사외이사 명단에 포함되는 등 세무 관련 고위 공무원의 사외이사 진출도 두드러졌다.

특히 서울지방국세청장을 지낸 오대식(두산), 박찬욱(현대모비스), 전형수(현대제철), 이주석(대한항공) 윤종훈(한국공항) 전 청장 등이 사외이사로 진출했다.

▷ 새 사외이사 38% 장관·검찰총장·의원 등 권력출신

또 사외이사 330명 중 253명은 재선임된 사외이사들이고 나머지 77명은 새로 뽑혔는데,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 77명을 직업별로 보면 교수가 31명(40.3%)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검찰(10명), 행정부 공무원(9명), 국세청(4명), 공정거래위(3명), 판사(2명), 관세청(1명) 등 정부 고위 관료나 권력기관 출신이 29명으로 37.7%를 차지했다.

신규 선임된 사외이사의 10명 중 4명 가량이 권력층 출신인 셈이다.

전직 차관 또는 차관급 공무원 출신은 10명이었다.

반면 기업인 출신은 4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금융인(4명), 회계사(1명), 변호사(1명), 언론인(1명), 연예인(1명) 등이었다.

차관급에서 신규 선임된 인물은 김정관 전 지식경제부 2차관(삼성생명), 문효남 전 서울고검장(삼성화재), 노민기 전 노동부 차관(삼성SDI·롯데미도파), 서대원 전 국정원 1차장(두산), 이재훈 전 지식경제부 2차관(두산인프라코어), 김태현 전 법무연수원장(롯데쇼핑), 조근호 전 법무연수원장(롯데손해보험), 문성우 전 대검찰청 차장검사(대한생명), 이동명 전 의정부지법원장(한진해운) 등이다.

검사장급 이하 검찰 출신은 신종대 전 대구지검장(롯데칠성), 이승섭 전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SK증권), 양재택 전 서울남부지검 차장(코원에너지서비스), 이석수 전 전주지검 차장(대한생명), 윤세리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두산인프라코어·SK하이닉스) 등이었다.

기획재정부 관련 인사는 민상기 전 재경부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롯데쇼핑), 정병태 전 재경부 국장(호텔신라), 진병화 전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GS건설) 등 3명이었다.

국세청에서는 이주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대한항공), 김남문 전 대전지방국세청장(롯데칠성), 김창섭 전 국세공무원교육원장(두산건설), 석호영 전 서울지방국세청 국장(현대글로비스) 등이 이름을 올렸다.

공정위 출신은 주순식 전 상임위원(현대중공업·SK C&C)과 이동훈 전 공정위 사무처장(현대글로비스)이 있었다. 손병조 전 관세청 차장은 삼성화재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 사외이사 문제 구태 벗어나지 못해

한편,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들인 10대 그룹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의 70%를 넘어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지만 사외이사 문제에서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이기웅 간사는 "건전경영 등 사외이사제도 도입의 취지는 도외시한 채 검찰과 관계기관 등에 대한 로비 창구로 접근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상장사 사외이사 중 대학교수 비중이 가장 높은 점도 도마에 올랐다.

이 간사는 "교수 출신 사외이사가 많은 것은 거수기로 활용하기 쉽다는 점도 있지만 역시 하나의 중요한 로비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문기고 등을 통해 기업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학계의 이론적 뒷받침을 받자는 것이고, 실제로 대기업을 비판하는 교수는 연구과제 채택이나 학회 발표 기회 등에서 상당한 불이익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사외이사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사외이사 진입 요건과 추천과정의 투명성이 강화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권력층 인사가 로비용 사외이사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결격사유를 명시하고, 직장에서 퇴직한 이후 사외이사 진입까지 일정한 냉각기간을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전관예우를 막기 위해 고위 공직자의 업무 유관기업의 사외이사가 되는 것을 제한하고, 검찰 등 특정 직군 출신의 사외이사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게 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사외이사가 경영감시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기웅 간사는 "그동안 명확한 책임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사외이사들은 사실상 가만히 앉아서 혜택을 보며 로비 창구를 원하는 기업체와 `윈-윈'(win-win)을 할 수 있었다"면서 "1차적 개선을 위해서는 사외이사의 권한과 책임을 명백히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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