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취재현장] 이건희 회장 기념식 가운데 안타까운 점

1인시위 나선 직업병 피해가족·철거민 폭력진압

김동렬 기자

[재경일보 김동렬 기자] "이건희 삼성 취임 25년 행사 성황리? 삼성경비 개백정들이 이건희 눈에 띌까봐 1인시위 중인 김성환 위원장과 과천 철거민을 개 끌듯이 끌고가 쓰러뜨리고 사지를 짓밟고 입을 막고 목을 누르고 그래 이건희 25년 경영의 실체를 극적으로 보여준 날이다" (삼성일반노조 관계자)

지난 30일 오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취임 25주년 기념행사가 호암아트홀에서 언론 비공개로 진행됐다.

25년이 지난 지금 삼성의 매출은 383조원을 넘기면서 39배 늘어났다. 시가총액도 1조원에서 303조2000억원으로 303배 성장했고, 직원 수 역시 16만명에서 작년말 기준 37만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했고, 더욱 치열해지는 국제무대에서도 브랜드가치 순위가 2004년 21위(125억5000만달러)에서 올해 9위(328억9000억달러)로 급성장했다.

이정도라면 충분히 자축할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는데, 그룹 측은 경제민주화 요구라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해 조용히 기념식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그룹이 감안했을만한 문제가 생겼다. 바로 '또 하나의 가족'들이다.

이들은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과 희귀암에 걸려 사망한 직원들의 유족 및 피해가족, 삼성일반노조원 등이다. 이들이 보는 이건희 회장의 취임 25년 실적은 반도체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제보 160여명, 희귀암 직업병 피해노동자 59명 사망, 반도체공장에서만 젊은 노동자 32명 사망 등이다.

기념식 시작 한시간 반 전인 오후 2시부터 이들은 직업병 피해자들을 산업재해로 인정하고, 반도체 공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을 공개할 것 등을 요구하는 1인시위에 들어갔다.

올해 5월초 2년간의 투병끝에 여섯·여덟살 남매를 두고 뇌암으로 사망한 故 이윤정씨의 남편 정희수씨와, 7년전 갓 태어난 둘째아이의 얼굴도 못본 채 젊디젊은 아내를 두고 저세상으로 간 故 황민웅씨의 아내 정애정씨, 11년이 넘도록 재생불량성빈혈로 수혈에 의존해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유명화씨의 아버지 유영종씨 등이 호암아트홀 입구와 주변에 섰다.

1인시위에 나선 이들은 총 아홉명. 하지만 이들을 막기위해 그간 서울 서초동 삼성 본관에서의 집회를 방해했던 용역 경비원 등 삼성 측 직원들이 대거 투입됐는데, 그 수가 100명은 돼 보였다.

행사시작 시간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한 시위자가 이건희 회장이 탄 차량을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즉시 경비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변하더니 경비 대여섯명이 시위자 한명 한명을 조직적으로 에워싸며 고착시켰다. 물론 취재진들의 카메라 및 사진촬영도 제지했다.

한 참가자는 "앞뒤에서 몸을 들이대며 꼼짝 못하게 하고, 이것 놓아라 항의하면 입을 틀어막았다"고 했다.

호암아트홀 정문에서 이같은 일이 발생하자 행사 관련 차량들은 정문을 왼편으로 돌아 들어갔는데, 이곳에는 '삼성백혈병은 산업재해가 맞다'는 피켓을 들고 있던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과 '과천 철거민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피켓을 든 방준아 전국철거민연합회 과천철대위 총무가 있었다.

이건희 회장의 차량이 중앙일보정문 앞으로 들어오는 순간, 경비들은 이 두사람을 끌고가 인도에 쓰러뜨렸고 머리와 몸통, 다리 등을 짓누르며 10분 이상을 꼼짝 못하도록 제압했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살려달라며 경찰을 불러달라고 소리를 지르자 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 과정에서 방준아 총무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숨조차 쉬기 힘들어했다. 급기야 뒤늦게 신고를 받고 온 경찰과 119에 의해 명동 백병원으로 실려갔다. 이후 방씨는 병원에서 안정을 찾았는데, 처음에는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어했다. 그는 경비가 자신의 목을 조르며 시간을 재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 방준아씨가 10분여 동안 삼성 측 경비들에게 제압당한 후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
▲ 방준아씨(여·40)가 10분여 동안 삼성 측 경비들에게 제압당한 후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

이른바 '기절 놀이'(Choking game). 일정시간 목을 조르거나 가슴을 강하게 눌러 기도를 폐쇄해 저산소증을 유도, 일시적으로 실신시키는 폭력·고문 행위다. 수년전부터 청소년들 사이에서 퍼졌는데, 이로인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속출하면서 사회에 파장을 일으킨바 있다. 이번에 방씨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으며 전치 3주의 상해진단을 받았다.

한편 방씨가 병원으로 이송된 직후, 김성환 위원장은 도착한 경찰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그때까지 옆에서 있던 경비를 폭행 현행범으로 고소했고, 경비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임경옥 삼성일반노조 총무는 상황을 촬영하고자 했는데, 여성 경비들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여기에 남성 경비 한명이 '이렇게 붙들면 된다'며 그의 팔을 꺾어서 붙드는 방법을 가르쳐주기까지 했다. 임 총무가 경비들을 뿌리치고 차도로 뛰어들었지만 경비들이 쫓아와 다시 고착시켰고, 경찰은 구경만 했다.

임 총무는 "삼성 폭력경비들의 방해로 코트 주머니에서 손을 뺄 수 조차 없는 상황에서 살인적인 진압을 당하는 천인공노할 장면을 촬영하지 못했다"며 "김 위원장과 방 총무가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차량통행로 입구에서 당한 폭행장면도 촬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다른 노조 관계자는 "손에 들고 있는건 단지 남편의 영정사진, 아내의 영정사진이 담긴 삼성백혈병은 산업재해라는 몇 자의 글귀일 뿐이건만, 며칠전 변호사를 통해 대화를 하자는 제의를 한 삼성이 바로 그 대화상대인 직업병 피해자를 살의를 느낄정도의 무력으로 제압하며 반말 쌍욕으로 일관했다"며 "과연 누구를 상대로 대화를 하자는 건지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시위자들은 울분을 참으며 이날 행사가 끝날때 까지 정문과 차량출입구 앞에서 1인시위를 이어갔다. 이건희 회장 취임 25주년 기념행사는 대부분 언론 보도와는 달리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절규와 이에 대한 폭행으로 안타까움이 남는 일정이 덧붙었다. 글로벌 최고 기업으로 삼성이 도약해 나가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운을 위해서도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지만, 과정 가운데 수고하고 상처입은 대한민국 국민이자 삼성의 가족이었던 이들을 보듬어 가는 더 큰 행보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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