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이르면 내년부터 재벌 총수·대기업 CEO 개별 연봉 공개

연봉 5억 이상 등기이사·감사 대상… 200여곳 600여명 적용 예상

이호영 기자
[재경일보 이호영 기자] 연봉 5억원 이상의 재벌 총수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의 개별 연봉이 이르면 내년부터 공개된다.

대기업 200여곳 600여명이 적용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대형 증권사들의 투자은행(IB) 업무가 허용되고, 한국거래소와 경쟁하는 대체거래소인 다자간매매체결회사(ATS) 설립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9일 오후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연봉 5억 원 이상인 등기임원과 감사의 연봉을 사업보고서에 공개하는 내용 등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민주통합당 이목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으로 기존의 등기임원 보수 공시 대상을 전체 평균이 아닌 개별적으로 공개하는 것이다. 사업보고서에 임원별 보수와 구체적 산정기준 및 방법을 반드시 기재해야 한다.

현행 등기이사의 보수 공개제도는 총액 기준이지만 개별 기준으로 바꾸는 것으로, 임원 보수 총액만 공개하는 현행 사업보고서는 지난 2005년 3월 증권거래법으로 규정된 것이다.

대상은 연봉 5억원 이상인 '등기이사'와 '감사'로 제한되며 기업 200여곳의 임원 600여명에 적용된다.

이렇게 되면 등기임원 연봉 평균이 3억인 A기업의 임원 중에서 누구는 1억원을 받고 누구는 50억을 받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대기업 등기임원으로 돼있는 주요 그룹 총수의 연봉도 액면 그대로 보고서에 적시된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의 개별 연봉이 공개될 것으로 보이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전자의 미등기임원이어서 제외된다.

일본은 1억엔 이상을 받는 임원이 개별 보수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고 싱가포르, 인도, 중국 등 아시아 지역 국가들도 임원 보수 공개에 동참하고 있다.

박민식 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은 "임원 보수에 대한 주주의 통제권 강화와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 주주의 감시ㆍ통제를 통해 임원의 경영성과에 따른 정확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룹 오너 등 대주주의 임원 보수에 대한 개입을 막아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임원의 책임을 제고함으로써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신용도를 높이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지나친 규제 같아 유감"이라며 "일본도 공개 대상이 연봉 1억엔(12억원) 정도인데 5억원은 낮은 만큼 금액 상향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도 '아킬레스건'과도 같은 등기임원의 개별 보수를 공개하는 법안이 현실화하자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고액 연봉을 받는 대기업 경영자의 연봉을 공개함으로써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뿐 아니라 반기업 정서 등 위화감이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상대적으로 높은 임원의 보수를 빌미로 노동계에서 비정상적인 임금 인상과 경영성과의 배분을 요구해 노사 분규가 발생하고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경영의 투명성 차원에서 개별 임원의 보수를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은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왔다.

기업분석 기관인 한국 CXO연구소 오일선 소장은 "국내 상장 기업들은 지배구조 분야에서 선진국 이상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임원별 보수 공개는 글로벌 흐름에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매출액 등을 고려할 때 기대치 이상 보수가 높게 책정된 이유에 대해 주주에게 이해할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는 것이 경제민주화를 지지하는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는 임원 보수를 결정할 단계에서부터 이미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기 때문에 외국의 입법례에 없는 주주통제권이 법적으로 이미 확보돼있다고 설명했다.

이왕 공개된다면 세금을 상대적으로 많이 내는 고액 연봉자를 위화감을 조성하는 '배부른 사람'으로 몰아세우는 정서도 앞으로는 완화될 필요가 있다는 항변도 재계 일각에서 나온다.

한국CXO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1000대 기업 등기임원의 2011년 평균 보수는 3억7670만원이다.

기업별로 삼성전자 등기임원의 평균 보수가 109억원으로 단연 최고를 차지했고, SK이노베이션은 46억4000만원으로 2위, 삼성SDI가 35억3000만원으로 3위, SK텔레콤은 34억7000만원, SK는 33억1000만원, SK C&C는 32억8000만원으로 4∼6위를 차지했다. SK그룹의 4개 계열사가 톱10에 포함됐다.

CJ그룹의 주력인 CJ제일제당이 28억9000만원으로 7위를 차지해 식품기업 중 유일하게 톱10에 든 반면 재계 2위인 현대차그룹 임원들의 평균 보수는 21억원으로 15위였다.

소위는 또 이날 IB 활성화, ATS 도입, 조건부자본증권 도입 등의 내용을 담은 정부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금융위는 자기자본금 3조원 이상의 자격을 갖춘 증권사를 IB로 지정하고 기업대출 등의 신규업무를 허용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정부의 신성장 동력산업과 대규모 해외 프로젝트를 지원하게 된다.

미국의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IB를 육성한다는 계획으로 이미 삼성증권, 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현대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개정안 통과를 염두에 두고 자기자본금을 3조원 이상으로 늘린 상태다.

또 거래소 독점 체제의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거래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ATS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미 전 세계에 정규 거래소와 경쟁하는 증권거래시스템이 230여개 존재한다.

이 밖에도 개정안에는 기업 자금조달 수단 다양화를 위해 조건부자본증권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과 주주총회 활성화를 위해 2015년까지 '섀도우 보팅'(Shadow Voting)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섀도우 보팅은 일종의 의결권 대리행사 제도로 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참석하지 않은 주주들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야당은 대형 증권사에만 신규 IB 업무를 허용하는 것은 경제민주화 추세에 역행하고 형평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반대해 지난 정부에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이제 큰 고비를 넘겼다"며 "내일 정무위 전체회의에 상정되면 이변이 없는 한 통과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정무위 전체회의와 법사위, 국회 본회의 등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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