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달 1일부터 시행하는 노동시간 단축은 이른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지만, 전망이 그리 낙관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일부 노동자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감소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높다. 다수 기업은 당장 신규 고용보다는 기존 인력의 생산성 향상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정부가 노동시간 단축의 안착 방안으로 권장하는 유연근로제는 노사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어 노동시간 단축이 현장에 뿌리내리고 성과를 내도록 하려면 정부의 세심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다음 달 1일부터 주 최대 노동시간 52시간 적용 대상인 상시 노동자 300인 이상 기업에 다니는 A 씨는 노동시간 단축을 준비하는 회사의 움직임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주 최대 노동시간인 68시간에 가까운 노동을 해온 A 씨는 당장 다음 달부터 연장근로와 휴일근로 시간이 대폭 줄고 그만큼 수당도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월급이 50만 원 가량 줄면 자녀 학원비 부담이 커질 것 같아 걱정이다.
연간 노동시간이 2천52시간(2016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천707시간)을 크게 웃돌아 '과로 사회'라는 오명을 쓴 한국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다수 노동자에게 반가운 소식이지만, A 씨와 같은 걱정을 하는 노동자도 적지 않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최근 건설 현장에 노동시간 단축을 적용할 경우 기업의 임금 삭감 조치로 관리직과 기능직 노동자 임금이 각각 13.0%, 8.8%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분 보전을 위해 '일자리 함께하기' 사업 등 대책을 시행 중이지만, 지원 범위 등에 한계가 있다. 또, 노동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줄면 퇴직금도 감소할 수 있다. 퇴직금은 퇴직 당시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노동자의 손실을 막기 위해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퇴직금 감소를 퇴직금 중간정산 사유에 포함했고 퇴직연금제도를 임금 감소의 영향을 받는 '확정급여형'에서 '확정 기여형'으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사용자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자의 퇴직금이 줄어들 경우 예방 조치를 할 의무가 부여된다.
정부는 노동시간이 노동자의 '휴식 있는 삶'을 보장할 뿐 아니라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신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다음 달 1일부터 노동시간 단축이 적용되는 300인 이상 사업장 3천700여 곳 중 2천730곳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조사결과(지난 8일 기준), 인력 충원을 준비하는 사업장은 594곳, 21.8%에 그친다.
노동부는 고무적인 결과로 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건비 부담 때문에 많은 기업이 인력 충원보다는 일단 기존 인력의 생산성 향상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600대 기업 중 다음 달부터 노동시간 단축 적용 대상 372곳을 대상으로 수행한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기업의 대응 계획으로 '생산성 향상 대책 추진'(74.1%)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신규 인력 채용'(27.7%), '일부 업무 외주화'(12.5%), '해외 공장 이전 검토'(1.8%) 등이 뒤를 이었다.
노동시간 단축이 적용되는 사업장에서 추진하는 생산성 향상 대책으로 대표적인 게 유연근로제다. 유연근로제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노동시간과 장소 등을 선택·조정함으로써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제도다.
기업이 유연근로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할 경우 노동강도 강화에 반대하는 노동자 측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노동시간을 줄이고 인력 채용에 나서는 기업을 재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인건비 부담을 덜어주고 노동시간 단축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다음 달부터 노동시간을 대폭 줄여야 하는 기업은 유연근로제를 십분 활용함으로써 생산성 향상을 꾀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유연근로제로 꼽히는 게 탄력근로제다. 집중노동이 필요한 사업장에서 특정 근로일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대신 다른 근로일의 노동시간을 줄여 일정 기간(2주 또는 3개월) 주 평균 노동시간을 52시간 이내로 맞추는 것을 가리킨다.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을 앞두고 탄력근로제 활용을 높이는 추세다.
300인 이상 사업장 2천730곳에 대한 노동부 조사결과에 따르면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사업장은 397곳(지난 8일 현재)으로, 14.5%에 달했다. 1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지난해 기준으로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곳은 3.4%에 불과했다. 노동부는 노동시간 단축이 적용되는 기업을 중심으로 탄력근로제가 점진적으로 확산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선택근로제를 도입한 사업장도 251곳(9.2%)이었다. 선택근로제는 주 최대 노동시간 범위 안에서 노동자가 출·퇴근 시간을 선택하는 등의 방식으로 1일 노동시간을 자율적으로 조정하는 제도다.
기업은 탄력근로제 실효성을 높이려면 단위 기간을 1년 정도로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는 단위 기간을 확대하면 장시간 노동이 일상화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앞으로 탄력근로제를 포함한 유연근로제가 산업 현장에서 노사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업이 유연근로제를 도입하려면 노사간 새로운 근로계약 체결, 취업규칙 변경, 서면 합의 등이 필요하다.
한편, 노동 시간 단축 정착을 위해선 과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노동시간 산정을 위해서는 노동자의 특정 활동이 노동시간에 해당하는지 가려야 하는데 그 기준이 불분명하다.
산업 현장에서는 노동자의 근무 중 커피 타임, 부서 저녁 회식, 출장으로 인한 이동 등이 노동시간에 포함되는지를 두고 논란이 가라앉지 않는다.
노동부는 지난 11일 판례와 행정해석 등을 토대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을 내놓을 수 없다는 노동부 입장도 일리는 있다. 사업장마다 구체적인 노동 환경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이 지나치게 구체적이면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개별 사업장 환경에 맞게 노사 합의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게 바람직하며 이견이 생기면 노동 당국에 문의하라는 입장이다. 결국, 사업장별로 노동시간의 기준이 세워지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 한동안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 현장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포괄임금제도 문제다. 포괄임금제는 노동시간을 명확하게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연장·휴일근로 수당을 미리 정하고 급여에 포함해 일괄적으로 지급하는 제도로, 초과근무를 일상화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판례상 포괄임금제는 꼭 필요한 경우 제한적으로 활용해야 하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오·남용 사례가 많다. 이에 따라 노동시간 단축 실효성을 높이려면 포괄임금제를 대폭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노동부는 당초 이달 중으로 포괄임금제 오·남용 방지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현장 실태조사 등에 시간이 걸려 다음 달에도 발표할 수 있을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포괄임금제를 급격히 제한할 경우 중소기업 등의 비용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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