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정책 톺아보기] 보이스피싱 전액 배상 추진, 금융권 반발·제도 과제 부상

김동렬 기자

피해자 보호 강화 정책, 비용 분담·예방 효과 논란 확산

정부와 여당이 금융회사의 과실 여부와 무관하게 보이스피싱 피해를 전액 배상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금융권 반발과 제도에 대한 논란이 동시에 커지고 있다. 25일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는 법적 근거 마련과 범정부 차원의 대응 체계 강화가 집중 논의됐다.

보이스피싱 통합신고대응센터 24시간·365일 가동
▲ 전기통신금융사기 통합신고대응센터가 24시간·365일 운영을 시작한 17일 서울 종로구 통합신고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전화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전액 배상 검토, 피해자 구제 속도 높인다

보이스피싱 피해가 매년 급증하는 가운데 당정은 금융사의 과실 입증 절차를 생략하고 피해액 전부 또는 일부를 금융사가 보상하도록 하는 제도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4년 보이스피싱 피해 규모는 약 7,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0% 이상 증가했다. 현행 제도에서는 피해자가 금융사의 과실을 입증해야 배상을 받을 수 있어 구제가 늦어지는 문제가 반복돼 왔다.

일부 금융사는 이미 자발적으로 배상 책임을 지고 있어 제도화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다만 피해액 전액 배상으로 전환될 경우 금융권 전반에 미치는 부담이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 금융권 비용 부담, 반발 불가피

금융권은 실질적 범죄 책임이 범죄자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액 전액을 금융사에 떠넘기는 방식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을 내비친다. 조인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적 근거를 새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은행권은 기금 조성이나 보험제도 같은 간접 지원 방식을 대안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은행 2024년 8월 금융안정보고서도 금융회사의 과도한 책임 전가가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사가 비용을 부담할 경우 중소형 금융기관의 경영 부담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는 곧 금융 서비스 가격 인상이나 소비자 부담 전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 예방 체계·수사력 강화 병행

당정은 제도 보완과 함께 범죄 차단을 위한 예방 체계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국가수사본부장을 단장으로 한 전담 태스크포스를 신설하고, 경찰 수사 인력 400명을 증원해 범죄 대응력을 높인다. 또한 이동통신사 관리 체계를 강화해 스팸 문자와 악성 앱을 차단하고, 보이스피싱 인공지능(AI) 플랫폼을 구축해 의심 정보를 공유하는 방안도 병행된다.

통신·금융 당국의 협업은 필수 과제로 꼽힌다. OECD 2023년 금융소비자 보호 보고서도 디지털 금융 범죄 대응에는 민관 협업과 실시간 정보 공유가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 해외 사례, 교훈과 한계 드러내

해외에서는 이미 유사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예방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점이 확인된다. 일본은 2008년 은행에 전액 배상 책임을 부과했지만, 이후에도 피싱 수법은 계속 진화해 피해 규모가 완전히 줄지는 않았다. 이는 제도적 보장이 반드시 범죄 억제와 직결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영국은 2019년 ‘APP 사기 피해자 보상 코드’를 도입했으나, 일부 은행만 자율적으로 참여하면서 보상 범위가 들쭉날쭉해 논란이 이어졌다.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참여 강제성과 범위 확대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IMF 2024년 금융안정 보고서도 이러한 해외 경험을 분석하며, 피해자 배상 제도가 단독으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IMF는 특히 국제적 데이터 공유와 범죄 인프라 차단 같은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이 제도를 설계할 때 해외 사례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제도 정착 위한 합의와 입법 관건

당정은 올해 안에 법률 개정을 완료한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실제 제도화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금융권의 반발은 물론 피해자 책임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지도 쟁점이다. 피해자가 금융사 주의 의무를 명백히 위반한 경우까지 전액 배상 대상에 포함할지를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여야 간 입장차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서민 피해 보호라는 명분에는 공감하지만, 금융권 부담 전가가 과도하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실질적인 합의점을 찾기 위해 보험제도, 기금 마련 등 보완책을 입법 과정에서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금융사·정부·통신사 등 이해관계자 간의 협력 체계 구축이 제도 성공의 열쇠라고 지적한다. 예방 체계 강화, 피해자 교육 확대, 가상자산 환급 시스템 마련 같은 세부 대책도 병행돼야 한다. 결국 제도의 정착 여부는 비용 분담 구조와 사회적 합의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이끌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 요약:
보이스피싱 피해 전액 배상 추진은 신속한 피해자 구제를 가능케 하지만, 금융권 비용 부담과 실효성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해외 사례에서도 예방 효과는 제한적이었고, 한국형 제도 설계에서는 예방 시스템과 비용 분담 구조를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입법 과정에서 금융사·정부·통신사 간 합의가 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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