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임금체불 외국인 체류의무 면제…노동인권 보호 전환점 되나

김영 기자

불법체류 외국인도 권리 구제 가능…노동현장 구조 개선 기대

정부가 임금체불 피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불법체류 통보 의무를 면제하면서 노동인권 정책이 전환점을 맞았다. 그간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였던 불법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이 임금 미지급 피해를 신고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다.

법무부는 5일부터 임금체불 피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출입국관리법상 불법체류 통보 의무를 면제하는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피해자가 임금 미지급을 신고하면 곧바로 출입국 통보가 이뤄져 강제 출국을 우려한 외국인들이 신고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번 개정으로 외국인 노동자도 체류자격과 관계없이 노동인권 보호의 최소한을 보장받게 됐다.

법무부 청사
▲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 위로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연합뉴스 제공]

◆ 제도 시행 배경과 법무부 개정 취지

현행 출입국관리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직무 수행 중 외국인의 불법체류 사실을 알게 되면 즉시 지방출입국·외국인관서에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임금체불 피해자의 경우 이러한 통보 의무가 외국인 근로자의 권리 구제 절차를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법무부는 이번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임금체불 피해 외국인에 한해 근로감독관의 통보 의무를 면제하도록 했다. 기존 면제 대상에는 초·중·고 재학생, 공공보건의료기관 환자, 아동복지시설 아동, 범죄피해자 등이 포함돼 있었다. 여기에 ‘임금체불 피해자’가 새롭게 추가된 것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이번 제도 시행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이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며 “근로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외국인 근로자 보호를 강화하려는 정부의 사회통합 정책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노동시장 내 불법체류자 이슈를 처벌 중심에서 권익 보호 중심으로 바꾸는 계기”라고 평가한다. 그간 ‘통보 의무’가 불법체류자의 고용관계 불이익을 고착화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 노동계 “노동인권 보호의 최소한 장치”

노동계와 인권단체는 이번 조치를 노동현장 개선의 신호탄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체류 신분과 관계없이 노동권은 보장돼야 한다”며 “이번 개정은 피해자 보호의 최소한 장치”라고 밝혔다. 전국이주노동조합은 “임금체불로 고통받던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신고를 꺼리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마련됐다”고 환영했다.

고용노동부는 이번 조치와 함께 외국인 근로자 대상 권리보호 교육을 강화하고, 체불신고 사건 처리 기간을 단축할 방침이다. 고용노동부가 2024년 12월 발표한 근로감독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 체불 신고 건수는 3,800건을 넘었으며 실제 체불금 규모는 약 320억 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40% 이상이 불법체류 상태에서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노동현장에서는 이번 제도가 ‘신고포기율’을 낮추는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 이주노동자센터의 2023년 조사에서는 임금체불 피해를 당하고도 신고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가 전체의 56%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시행 이후 신고율이 상승한다면 불법체류자의 노동착취 구조를 개선하는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노동계는 이번 면제가 임금체불로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보호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산업재해, 폭행, 부당해고 등으로 피해를 본 불법체류 노동자들도 동일하게 권리구제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 악용 방지 위한 단속 병행

정부는 제도 악용을 막기 위한 보완책도 함께 추진한다. 임금체불 제도를 악용해 체류 연장을 노리는 사례를 차단하기 위해 근로감독과 출입국 단속을 병행할 계획이다.

법무부와 고용노동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임금체불 피해 외국인 보호·점검 지침’을 마련 중이며, 이를 통해 사업장 불시점검과 피해자 보호 절차를 명확히 구분할 예정이다. 제도 남용이 확인될 경우 체류자격 심사 단계에서 별도 검증 절차를 거치게 된다.

또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도 병행된다. 고용노동부가 2023년 발표한 임금체불 사건 처리 통계에 따르면, 해당 해 임금체불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업주는 1,400여 명에 달했다. 정부는 이번 제도 시행을 계기로 체불 근절을 위한 행정·형사적 대응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법무부는 불법체류자 단속과 피해자 보호를 명확히 구분하는 ‘투트랙(two-track) 접근’을 제시하며, 사회통합과 공정노동의 균형을 강조했다. 이를 통해 불법체류자를 무조건 추방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도 악용을 막으면서도 권리보호를 병행하는 정책적 틀을 확립한다는 것이다.

◆ 외국인 노동자 보호정책의 확장 과제

이번 조치는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단속의 대상’에서 ‘보호의 대상’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변화를 상징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임금체불 피해자 외에도 산업재해, 부당해고 등 다양한 노동피해 사례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24년 10월 발표한 ‘이주노동자 인권보호 정책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임금체불 외에도 불법체류자에 대한 폭행·안전사고 신고율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신고자 보호범위를 단계적으로 넓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23년 보고서에서 “체류 신분과 무관한 근로자의 보편적 권리 보장은 국제 기준”이라며, 회원국의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OECD가 2023년 발간한 ‘이주노동시장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외국인 근로자 임금보호제도는 개선 여지가 있는 분야로 평가됐다.

향후 정부는 고용허가제와 연계한 외국인 노동자 보호체계 개편을 검토 중이다. 법무부는 내년 상반기까지 관련 지침을 구체화하고, 외국인 근로자 권리보호 전담 부서를 신설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 요약:
 임금체불 피해 외국인에 대한 불법체류 통보 의무 면제는 불법체류자 보호의 새로운 기준을 세운 조치다. 노동계는 실질적 권리보호의 첫걸음으로 평가하며, 정부는 악용 방지를 위한 점검과 병행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선 향후 산업재해·부당해고 등으로 보호범위를 확대하는 후속 개정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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