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재경칼럼]국가의 경쟁정책 동향과 한국의 대응방안

세계적으로 WTO, FTA 등 다자간, 양자간 협상을 통해 무역장벽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 EU는 이미 50년 전부터 자유로운 무역의 단계를 넘어선 경제적, 정치적 통합을 추진하여  유로라는 단일통화를 만들고, 정치적으로는 EU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리스본 조약의 비준이 마무리에 들어가고 있다. 아시아에서도 한국, 중국, 일본 간 FTA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미국, EU, 인도 등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마무리 절차에 들어가 있다. 이와 같이 국제적인 보호무역의 퇴조와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 추세는 반대로 미국, EU 등 선진국 뿐만 아니라 중국 등 브릭스 국가들도 경쟁정책의 강화를 꾀하고 있다. 이러한 경쟁정책의 강화는 소위 카르텔로 대표되는 기업의 불법적이며 부도덕한 행위를 처벌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으나, 점차 보호무역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전통적인 무역정책으로는 자국산업을 보호하는 것이 더 이상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칫 외교분쟁과 국제적으로 국가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기 때문에 경쟁법 집행의 강화를 통해 부도덕한 카르텔을 응징하는 명분과 외국기업의 국내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여 국내산업을 보호하는 실리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매우 높은 수출주도형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기업이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주요 수출국의 경쟁정책 동향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부시행정부가 경쟁법을 느슨하게 집행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해 왔다. 대통령 취임후 미국반독점연구소(American Antitrust Institute)에서 행한 연설에서 소비자를 해치기 위해 공모하는 기업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처벌할 것이라고 선언했고 취임 후 부시행정부의 소극적인 경쟁정책을 비판해오던 Jon Leibowitz를 미국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 Chistine Varneyf를 법무부 독점금지 차관보로 임명하였다. 미국의 경쟁정책 중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경쟁법의 역외적용 강화이다. 경쟁법 역외적용이란 미국영토가 아닌 외국에서 발생한 담합에 대해서 미국 경쟁법을 적용하여 처벌하는 것이다. 2000년 이후 경쟁법 역외적용이 매우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며, 우리나라 기업도 미국에서 경쟁법 위반으로 거액의 벌금을 부과 받은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08년 LG 디스플레이가 4억달러, 07년 대한항공 3억달러, 05년 삼성전자 3억달러, 하이닉스 1억 8,000만 달러 등 최근 우리기업이 거액의 벌금을 부과 받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EU도 지속적으로 경쟁정책 강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04년 취임한 EU 경쟁당국의 수장인 Neelie Kroes는 EU의회에서 가진 취임연설에서 유럽경제에 가장 해악을 끼치는 반경쟁적 행위를 척결하는 것이 EU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06년에는 카르텔에 대한 과징금 고시를 개정하여 이전보다 카르텔에 대한 제재를 대폭 강화하였다. 최근 EU 집행위원회가 부과한 과징금 액수를 살펴보면 90~94년 동안 카르텔을 이유로 부과한 과징금 규모가 총 3억 4,000만 유로에 불과했으나 05~09년 6월까지 부과한 과징금 규모가 94억 3,000만 유로에 달해 15년간 31배 증가하였다. 연도별로는 04년 카르텔을 이유로 부과한 과징금 액수는 3억9,000만 유로에 불과했으나 06년 18억 6,400만 유로, 07년에는 33억 3,800만 유로에 달하는 등 급격하게 과징금 부과액이 증가하고 있다. 경쟁정책 집행이 강화되면서 국제카르텔 관련 사건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03년 1건에 불과하던 국제카르텔 사건이 07년에는 5건으로 증가하였으며 과징금 액수도 같은 기간 1억 3,800만 유로에서 20억 유로로 대폭 증가하였다. 우리나라 기업도 02년 핵산 조미료 담합사건에 연루되어 CJ와 대상이 각각 274만 유로, 228만 유로의 과징금을 부과 받았다.


과징금 부과액이 급격하게 인상되는 한편, 카르텔 참여 사업자에게 경쟁법 위반사실을 자백할 수 있게 하는 리니언시 제도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리니언시제도는 카르텔에 참여한 사업자가 참여사실을 자진해서 신고하면 과징금을 전부 또는 일부 면제하는 것이다. 05년 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포함된 반도체 사건에서 미국업체인 마이크론사는 리니언시 제도를 이용하여 담합사실을 자진신고하고 과징금과 임원의 형사처벌을 면제받은 경우가 있다. 


중국의 경우도 08년 반독점법을 시행하여 법률 미비로 집행이 어려웠던 카르텔 사건에 대한 처벌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우리 기업과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교과서적인 이야기일 수 있으나 카르텔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기업과 업계 차원에서 국제적인 수준의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적극 실천하여 카르텔로 오해받을 수 있는 소지를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만일 한 국가에서 카르텔 혐의로 적발될 경우에는 카르텔과 관련된 국가의 경쟁당국에 동시다발적으로 리니언시를 신청해야 한다. 한 국가에서 과징금을 면제받았다고 해서 다른 국가에서 면죄부를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각국의 경쟁정책 동향을 파악하여 기업에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특히 정권교체기나 경쟁당국의 수장이 교체되는 경우 그 성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는 외국에서 경쟁법 위반으로 제재를 받는 것이 주로 대기업이지만 경쟁정책이 강화되면 중소기업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해외 경쟁당국의 조사에 대응할 만한 인력과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수출위주의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방안도 생각해야할 시기가 온 것이다. 앞으로 외국 선진국뿐만 아니라 브릭스 국가, 우리나라 경쟁당국도 경쟁법 집행을 강화할 것이다. 이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우리기업이 불측의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는 관련 국가의 법제도와 경쟁정책 동향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유정주 /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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