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사거리부터 삼성역을 지나 삼성교까지 약 4km 구간을 테헤란로라고 부른다. 이전엔 선릉 때문에 삼릉로라 불리다가 1977년 이란 수도 테헤란시와 자매결연 기념으로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됐다.
1990년대 중반에는 IT열풍이 불면서 테헤란로는 ‘한국의 실리콘밸리’란 또 하나의 이름을 얻는다. 이후 IT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주요 업체들이 포이동 등으로 이동하자 대신 대기업 본사와 금융사들이 자리를 메웠다. 그나마 엔씨소프트, 넥슨, 네오위즈, 그라비티 등 대형 게임개발사들이 옛 명성을 이어가는 정도다.
테헤란로를 생각하면 오래 전 읽은 신문 칼럼제목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테헤란로,인문학만 없다’는 한 언론인이 쓴 공간미학에 관한 칼럼이다. 제목과 내용이 부합하진 않았지만 제목 자체만으로 공감이 갔다. 테헤란로를 오가며 느꼈던 삭막함을 제대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테헤란로에 땅거미가 내리는 퇴근 무렵이 되면 지하도는 거대한 블랙홀로 변한다. 퇴근길을 재촉하는 무표정한 발걸음이 끝없이 빨려 들어간다. 일부는 지하도에 빨려 들기 전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트럭을 개조한 분식차 앞에 개미처럼 달라붙어 있다. 그 무렵 길가에 세워 놓은 차량에는 온갖 야릇한 문구가 적힌 명함크기 광고지로 도배가 된다.
이면 도로 미장원이 바빠지는 것도 이 시간이다. 테헤란로 이면도로에는 미장원이 유난히 많다. 낮에는 한가하기 그지없던 미장원이 밤이 되면 불야성을 이룬다. 한 원장에게 조심스레 이유를 물었더니 그것도 모르냐는 한심스런 눈치로 짧게 한마디 한다. “이 시간부터 일하니까 그렇죠!”
낮엔 사각의 콘크리트 틀 안에 갇혀 있던 테헤란로가 밤이 되자 기지개를 켠다. 향락과 소비의 홍등이 켜지고 2·30대 직장인들을 유혹한다. 블랙홀로 빨려들기를 거부하는 일련의 직장인들은 무리지어 또 다른 세상으로 빨려들어 간다. 테헤란로엔 인문학만 없다는 칼럼에 100% 공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얼마 전 테헤란로에 사무실을 둔 한 지인에게 의미 있는 생각을 전해 들었다. 테헤란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좌를 열어 보겠단다. ‘소통과 사랑의 린문학(隣文學) 강좌‘란 이름으로. 타인으로 대표되는 ’이웃(隣)과의 생각 나눔‘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하기 때문에 준비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말 테헤란로 입주 기업 몇 곳을 접촉했지만 모두 장소제공에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표면적인 이유는 신종플루와 기업보안이었지만 기업 담당자가 인문학 강좌 필요성에 대해 한 결같이 시큰둥했다고 한다.
지인의 생각을 들었을 때 무릎을 쳤다. 강남 한 복판에서 린문학(隣文學)이라니! ‘나’만이 아닌 ‘우리 이웃’을 연결하는 인문학 강좌를 테헤란로에서 열 생각을 하다니. 참으로 멋진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발상의 진원지는 행동과학 전문가이자 정신과 전문의 이상일 박사다.
그의 계획은 단순하다. 국내 최고의 강사진이 참여하는 최상의 강좌를 통해 테헤란로에 인문학의 숨을 불어 넣겠다는 것이다. 이 사회는 나와 네가 아닌 우리가 사는 곳이란 것을 알려주겠다는 생각이다. 지금처럼 소통과 사랑 없이는 인생이 자꾸 블랙홀로 빠지게 될 것이란 경고와 함께.
대한민국의 심장이 서울이라면 테헤란로는 우심방 같은 곳이다. 피가 잘 돌아야 사람이 건강하듯 테헤란로 역시 흐름이 중요한 곳이다. 그러나 지금 이 우심방이 앓고 있다. 보완과 보충 없이 소비와 소진만 하고 있다. 지금 테헤란로에 필요한 것은 치유와 소통의 인문학이다.
유성호(문화비평 칼럼니스트)
※사외(社外)필자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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