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3 (월)

재경일보

식물원이 열어주는 세계의 역사<9>-일본 아사히가와 견본림

나무신문 기자

가구라 견본림의 스트로브스 소나무에 둘러싸인 미우라 아야꼬 기념 문학관.
가구라 견본림의 스트로브스 소나무에 둘러싸인 미우라 아야꼬 기념 문학관.
홋카이도를 여행하다보면 주민들은 우리와 같은 동양인이지만 주위에 펼쳐진 경치를 보면서 문득,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분주한 도쿄나 오사카와는 달리 이곳은 넓고 한가하고 아름다운 목초지와 야산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도시인 삿포로(札幌)는 한겨울에 펼쳐지는 눈축제로 유명한 곳이다.

 

도심에서 동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에는 신치도세(新千歲) 공항이 있다. 필자가 탄 대한항공의 에어버스 A330-300 여객기가 공항상공에 도달하였을 때는 구름이 낮게 깔린 흐린 날씨였다.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며 활주로에 접근하는데 비행기 창문으로 보니 민간용 활주로 옆에 있는 군용 활주로에서 일본 항공자위대의 최신예 F15 전투기 세대가 연이어 이륙 하는 것이 보인다. 흐린 날씨에 일부러 훈련을 하는 것으로 짐작되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공항버스로 약 1시간이 걸린다. 필자는 기차역 옆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홋카이도 제2의 도시인 아사히가와(旭川)로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필자가 아사히가와를 방문한 목적은 아사히가와 출신으로서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여류문학가 미우라 아야꼬(三浦綾子)여사의 기념관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아사히가와는  그녀의 고향으로서 그녀는 고향에서만 문필활동을 하다가 1999년에 직장암에 걸려 7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필자는 ‘빙점(氷点)’, ‘북국일기(北國日記)’, ‘길은 여기에’, ‘이 질그릇에도’. ‘빛이 있는 동안에’ 등 그녀의 문학집을 오래전에 읽었고 그녀가 직장암으로 투병하고 있을 때인 1980년도초에 그녀와 편지를 주고 받은 일도 있었으므로,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녀의 책 속에 자주 언급된 아사히가와의 견본림(見本林)을 방문하고 싶었었다.

 

그러던중 그녀의 기념관이 견본림안에 세워졌다는 소식을 듣고, 시간을 내어서 아사히가와를 방문한 것이다. 삿포로에서 아사히가와까지는 고속버스로 2시간이 소요된다. 아사히가와 시내 중심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그녀의 기념관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도중에  육상자위대 병력을 태운 군용 트럭들과 장갑차를 실은 대형 군용트레일러가 시내를 지나간다. 아사히가와는 러시아와 국경이 가까우므로 육상자위대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우라 아야꼬 기념 문학관은 울창한 숲속에 들어서 있다. 필자는 그녀의 책 속에서 그녀가 자주 언급한 남편인 미우라미쓰요(三浦光世)씨의 넓고 소박한 마음씨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막연하게나마 이미 고인이 된 미우라 여사 대신 남편이라도 한번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기념관 문을 들어가자마자 단정하게 옷을 입고 미소를 짓고 있는 키가 작은 한 노인이 방문객을 기다리며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먼저 필자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혹시나 싶어 미우라 여사의 남편이냐고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이렇게 뜻밖에, 필자는 글속에서만 보았던  미우라 여사의 남편을 만났다. 여사의 글속에 자주 등장하는 삼림속에 여사를 존경하는 사람들이 모금을 하여 몇해전에 아사히가와 남쪽 교외인 이곳에 그녀의 기념 문학관을 세운 것이다.

 

 ‘가구라(神樂)견본림’이라고 부르는 이 삼림은 110여년전인 1898년(명치 31년)에  일본 정부가 외국에서 여러 수종을 도입하여 시험용으로 만든 것이다. 면적은 18.42ha(약6만평)으로서 홋카이도에서 가장 오래된 외국수종(침엽수)을 식재한 인공림(人工林)이다. 이곳에서 생육 시험을 거친 나무의 씨앗과 묘목을 홋카이도 전역에 심은 것이다. 이곳은 미우라 여사의 첫 소설 ‘빙점’의 무대가 되는 바람에 일본안에서 유명해진 견본림이다. 바로 옆을 흐르는 비에이가와(美瑛川)의 뚝을 따라서 만들어진 견본림에는 미국 북부와 캐나다 동남부에서 가져와서 1898년에 식재한 스트로브스 소나무(Pinaceae Pinus strobus)와 1902년에 유럽에서 가져와서 식재한 가문비나무(Pinaceae picea spp.)를 비롯한 여러 수종의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오늘날 이 견본림은 아사히가와 영림국이 관리하고 있는데, 미우라 여사의 남편도 1944년부터 1966년까지 이곳 영림서에서 근무하였다. 삼림속에는 산책로도 있으므로 아사히가와 시민들도 자주 이곳을 찾는다. 인구 50만명의 아사히가와는 1972년에 일본최초로 시내중심 1km에 보행자만 다닐 수 있는 보행자거리를 만들어, 아이들이 마음놓고 뛰놀고 보행자가 자유롭게 걸으며 편히 쇼핑을 할 수 있는 가이모노공원(買物公園)거리를 만들어 놓았다.


필자는 비에이가와의 제방을 따라서 견본림 속을 느긋하게 걸어 보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온갖 새들과 곤충의 소리가 들린다.  산책로 양쪽에는, 일직선으로 자라서 흉고 직경(지상에서 1.2m지점)이 30~40cm 되는 스트로브스 소나무들이 늦은 봄의 햇살을 막아주고 있었다. 견본림 속에 있는 기념 문학관에서 나와서 입구를 나오면 멀지 않은 곳에 단층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여사의 첫 소설 ‘빙점’은 견본림의 스트로브스 소나무 숲과 이 주택들에서 시작된다. 이 주택 가운데 하나가 소설속의 주인공인 의사  쓰지구치 게이조와 그의 아내 나쓰에(夏枝)가 살던 곳이다.

 

그들의 외동딸 ‘루리꼬’가 죽은 비에이가와, 입양한 딸 ‘요꼬(陽子)’가 아사히가와 시내로 나갈 때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 요꼬가 다니던 초등학교, 그리고 미우라 여사가 남편과 함께 다니던 ‘로쿠조(六條) 교회 등, 미우라 여사의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모든 장소들이 견본림과 시내 중심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 사이에 거의 모두 들어서 있다. 필자는 견본림을 방문한 뒤에 견본림에서 시외버스 터미널까지를 4시간 동안 걸으면서 문학 작품속의 장소를 거의 모두 찾아보았다. 이글을 쓰다보니 오늘의 식물원 기사는 ‘문학 작품속의 식물원’이라고 쓰는 것이 더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스쳐간다. 독자 여러분들이 양해해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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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혁. 서울대 농대 임산가공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 이건산업에 입사해 이건산업(솔로몬사업부문) 사장을 역임했다. 파푸아뉴기니 열대 산림대학을 수료했으며, 대규모 조림에 대한 공로로 솔로몬군도 십자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권주혁의 실용 수입목재 가이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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